현재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인 이 사건의 심층적인 인과관계 규명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미국의 개인 총기 소지 허용 정책이 이번 사건의 엄청난 피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라면 당장 광범위한 총기 규제 논란으로 불길이 옮겨 붙었을텐데 미국에선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공격용 개인 화기 판매금지에 정치 인생을 바치고 있는 캐럴린 매카시 공화당 뉴욕주 하원의원 등 일부 의원이나 일부 총기 규제 지지 시민단체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총기 규제 추진을 시도하고 있지만 호응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현재 대선 레이스를 벌이고 있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트 롬니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반응이다. 롬니 후보는 법 개정을 통한 총기 규제 강화에 대해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롬니 후보는 최근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콜로라도주 총기난사 사건에 사용된 총기류는 불법구입이라 법으로 막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는 그간 총기 규제에 대해 민주당보다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고 전미총기협회(NRA)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공화당의 전통적인 입장을 반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은 '무기 휴대의 권리'를 규정하는 미 수정헌법 2조를 보호해야 한다고 믿는 동시에 현행법 아래 무기를 휴대할 권리가 없는 사람에게는 총기 소지를 허락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미국 인터넷 언론인 허핑턴포스트는 카니 대변인이 현행법 아래 무기를 휴대할 권리가 없는 사람에게 총기 소지를 불허해야 한다고 3차례나 강조한 사실을 바탕으로 미국 정부가 새로운 총기법을 제정하기보다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현 총기법의 허점을 보완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전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동성애자 결혼 허용, 불법이민 규제 완화 등 진보적인 정책을 다수 선보였던 것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 정치권, 총기규제 강화 반대여론에 맥 못춰
집권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할 것 없이 왜 미국 정치권은 총기 규제 문제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총기 규제 강화를 반대하는 여론이 더 우세하기 때문이다. 1990년 갤럽 조사에선 미국인의 약 80%가 총기 규제 강화를 주내용으로 하는 총기법 개정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2010년 조사에선 총기 규제에 대한 찬반양론이 역전돼 총기 규제 강화에 대한 지지가 44%로 줄어든 반면 총기 규제 완화 혹은 현상 유지에 대한 지지는 54%로 늘어났다.
자살한 범인 2명을 포함해 15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9년 콜럼바인고교 총기난사 사건과 32명이 사망한 2007년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 그리고 지난해 가브리엘 기포드 민주당 하원의원을 비롯해 10여명의 사상자를 낸 애리조나 총격사건 등 많은 총기사건이 발생하고 있지만 총기 규제 강화에 반대하는 여론은 점차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총기 규제 관련 여론 변화에는 NRA의 조직과 활동 강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NRA는 총기 규제 강화 목소리가 커지자 이에 맞대응해 조직을 확대했고 각종 선거에서 공화당에 표를 몰아줬다. 이에 따라 민주당에서 NRA의 영향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 대놓고 총기 규제 강화를 이슈화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NRA의 회원수는 4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데이비드 프럼 같은 보수주의 성향의 칼럼니스트는 "많은 미국인들은 주변환경이 갈수록 위험해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자기보호 차원에서 개인 화기를 구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개리 클렉 플로리다주립대 교수는 이와 관련 "살인율이 증가하게 되면 당연히 보다 많은 사람들이 총기 구입을 하게 된다"며 "하지만 현재 통계분석으로는 더 많은 총기 휴대가 좀 더 많은 살인으로 연결되는지 여부는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 변화가 총기에 대한 미국인들의 전통적인 애호, 개인주의적인 성향과 결부되면서 총기 규제 강화 주장이 갈수록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총기규제 강한 州, 총기 사망률 낮아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박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가 위험해졌기 때문에, 다시 말해 범죄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총기 휴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과연 개인 화기 소지가 범죄율 하락의 궁극적인 해답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히려 총기 규제 강화와 함께 경찰인력 보강, 순찰 강화 등 공권력 강화가 범죄율의 하락을 보다 실질적으로 견인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주마다 총기 규제 강도에서 다소 차이가 있는데 총기 소지를 더 강하게 규제하는 주, 가령 하와이주, 매사추세츠주, 뉴저지주, 뉴욕주 등은 상대적으로 총기 사망률이 다른 주에 비해 적다는 미국 연방질병예방관리센터 자료도 있다. 반면 총기 사용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앨러배마주, 알래스카주, 루이지애나주, 미시시피주 등은 총기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총기 소지 규제를 강화했을 때 총기 사망률이 낮아진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둘 사이에 전혀 관계가 없다고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최근 오바마 대통령과 미트 롬니 대통령 후보의 총기 규제 관련 발언에 대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로의 말도 좋지만 지금이야말로 미국의 두 대선 후보가 나서서 미국 전역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총기사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말해야 할 때다.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후보는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막연하고 공허한 말만 되풀이하지 말고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 두사람으로부터 실질적인 방안, 일반적이고 원칙적인 내용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개인의 총기 소지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들을 권리가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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