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공채만 50번 정도 떨어진 것 같습니다. 올해는 꼭 취업하고 싶습니다."
지난 3월14일 오전 10시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C홀에서 열린 현대·기아차 협력사 채용박람회 행사장 밖에서 만난 유형석씨(29·가명)는 양손에 각종 서류와 채용 안내책자를 들고 이 같은 의지를 내비쳤다.

바로 전날까지의 강추위를 잊게 하는 따스한 햇살 아래 수많은 참가자들은 자신에게도 곧 취업 성공의 봄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행사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로 두번째를 맞은 이번 채용박람회는 현대·기아차가 1차부터 2·3차에 이르는 430여개 협력사들의 인력난과 젊은 층의 구직난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극심한 취업난을 반영하듯 구직 희망자 8000여명이 몰려들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사진_류승희 기자
◆애쓰는 기업, 망설이는 구직자


행사장 안은 학교별로 단체 참가한 고등학생들로 가득했다. 정장을 입은 성인 취업준비생은 한눈에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수원 영통에 위치한 수원하이텍고등학교(마이스터고)에서 7명의 학생을 인솔해 왔다는 현수창(48·가명) 교사는 "본격적으로 취업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2학년 학생들과 함께 왔다"며 "다른 채용박람회보다 훨씬 규모가 큰 이번 채용박람회를 통해 좋은 결과를 얻어 가고 싶다"고 전했다.

행사 초반에는 각 업체 부스보단 화장실 근처나 내부에 마련된 휴식공간 등에 사람들이 붐볐다. 약간의 눈치싸움이 벌어지는 분위기였다. 누구라도 먼저 용기 내 나서기만 하면 자신도 따라 일어서겠다는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교복을 입고 온 고등학생들은 취업타로나 지문적성검사 부스가 마련돼 있는 부대행사장에 줄을 서며 몰려 있었다. 인사 담당자들만 나란히 앉은 채 텅 빈 좌석만 바라보는 업체 부스와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가 돼서야 비로소 430여개 협력사들의 부스가 바빠지기 시작했다. 각 협력사들은 찾아온 지원자들에게 낯선 회사 이름과 직무내용을 소개하는 데 우선적으로 주력했다. 회사 소개가 담긴 영상 등 각종 시각물로 시선을 사로잡는 곳들은 준비가 소홀한 업체 부스에 비해 지원자가 많이 몰리는 현상도 볼 수 있었다. 구직자들 못지않게 협력사들도 자신들을 어필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2차 부품 협력사인 대일공업 관계자는 "그동안 실질적으로 우리 회사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 도전하는 구직자들을 만날 기회가 희박했다"며 "현대·기아차의 브랜드 파워에 따른 수혜로 인해 우수한 인력들을 대거 채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같은 목표, 다른 생각

지난해 처음 열린 행사에서는 1차 협력사들만 참가했지만 올해부터는 대상 범위가 넓어져 2·3차 협력사들도 인재 확보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올해 처음 참석하는 2차 협력사 에이테크오토모티브 관계자는 "구직자들의 고충과 마찬가지로 중소기업 입장에선 인력난이 가장 큰 문제"라며 참가 협력사 규모가 확대된 행사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업체 관계자들을 더 만나본 결과 만족감 이면에 감춰진 고민도 들을 기회가 생겼다. 한 2차 협력사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에서 마련한 자리이니 만큼 기대감을 안고 온 것이 사실"이라며 "그런데 당초 기대보다 역량이 부족한 지원자들이 많아 실망도 크다"고 말했다. 스펙도 스펙이지만 패기 넘치는 자세와 작은 기업에서도 열심히 일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구직자들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만난 고등학생들은 하나 같이 "우리들이 갈 곳이 안 보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말로는 고졸인력도 채용한다고 하지만 지원자격 등을 살펴보면 실질적으로 고등학생이 갖추기 어려운 요건들이 즐비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대학생이나 성인 구직자들은 오히려 고등학생들을 부러워했다. 수도권 4년제 대학교에서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는 한 남학생은 "최근 마이스터고 졸업생들의 취업 강세가 두드러진다"며 "기업들의 채용현황을 보면 나도 차라리 고졸이고 싶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취업과 채용의 기대를 안고 시작한 채용박람회는 행사가 끝날 무렵 아쉬움이 더 짙게 느껴졌다. 특히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들어온 취업준비생들의 표정은 오후에 들어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들의 얼굴에서 주관사가 목표한 1만명의 일자리라는 희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구직자에게 취업은 기업 규모를 떠나 여전히 높은 장벽이기 때문일까.
 

작년 채용박람회 통해 취업문 통과한 남·여의 조언
"작지만 경쟁력 있는 회사에 만족"

- 지난해 협력사 채용박람회를 통해 입사했다. 어떤 점이 좋았는지.


이상윤(사진_류승희 기자)
▶이상윤(31·아진산업 재경팀 회계업무, 이하 이)= 기존에는 알지 못했던 기업에 대해 알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우수한 기업에 지원할 수 있어 좋았다.


▶정승혜(25·희성촉매 총무팀 원가회계업무, 이하 정)= 인사 담당자와의 상담을 통해 회사 정보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고, 입사와 관련해 현재 나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었다.

정승혜(사진_류승희 기자)
- 각자의 기업을 선택한 이유는.


▶이= 대기업 못지않은 복지를 갖추고 있다. 또한 글로벌기업으로서 개인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업이라고 생각됐다.


▶정= 상담 내내 앞으로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회사란 느낌을 받았다. 직원들의 복리후생이 좋고 가족 같은 분위기란 점이 마음에 들었다.
 
- 근무해보니 어떤 점이 만족스럽나.


▶이= 전공을 살려 희망하는 부서에서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가족 같은 사내 분위기도 매우 좋다.


▶정= 다양한 동호회 활동을 통해 직원 전체의 친밀감이 높다는 점이 좋았다. 아울러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업무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우리 회사만의 큰 자랑거리라고 생각한다.
 
- 대기업을 선호해 중소기업 입사를 망설이는 지원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 중소기업은 작지만 경쟁력 있는 회사가 많고 대기업보다 취업의 폭이 넓다. 편견을 버리고 채용박람회를 통해 우수기업에 지원했으면 좋겠다.


▶정= 무엇보다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회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겉모습의 화려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내실의 탄탄함을 선택한다는 측면에서 중소기업 또한 훌륭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