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게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나사는 오른쪽(시계방향)으로 돌려 체결하는 오른나사다. 나사산이 반대방향으로 형성된 왼나사는 일상생활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없다. 만약 집에 자전거가 있다면 프레임과 페달을 연결하는 바텀브래킷(BB)을 보자. 진행방향 오른쪽 베어링컵(BB 고정부품)의 나사는 왼나사다.



강한 탐구정신을 가진 엔지니어라면 왜 거기서 왼나사가 쓰였을까 혹은 그 옛날 잘못 정해진 규칙이 관례처럼 내려와 그렇게 된 건 아닌지 심각한 고민에 빠질지도 모른다.



'아는 게 병인 것'처럼 엔지니어의 고민은 선행지식 때문에 발생한다. 움직이는 기계장치를 결합하는데 사용된 체결요소(볼트나 너트)가 나사 종류라면 작동 중 진동이나 마찰로 풀리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그곳이 특히 회전부위일 경우 단순히 나사산 방향을 결정하는 것만으로도 풀림을 방지할 수 있다. 회전방향으로 잠기도록 나사선을 깎으면 되는 것이다. 즉 회전방향이 오른쪽인 곳에는 오른나사를 왼쪽인 곳에는 왼나사를 사용하면 그만이다.



바텀브래킷 나사산의 방향:국제표준규격에 따른 바텀브래킷 나사산의 방향은 크랭크축 회전방향과 반대다(반대방향으로 돌려서 잠근다). 따라서 바텀브래킷을 분해하려면 우측은 오른쪽(시계방향)으로 돌리고 좌측은 왼쪽(반시계방향)으로 돌려야 한다./이미지=신병철 객원기자
이 선행지식을 자전거에 적용해보자. 페달을 돌릴 때 바텀브래킷의 우측은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오른나사로, 좌측은 반대로 결합해야 한다. 그러나 국제표준규격(ISO)은 정반대다.



국제표준이 이렇게 결정된 데는 또 다른 과학적 이유가 있다. 바텀브래킷의 회전축인 크랭크축은 좌측과 우측이 번갈아 아래쪽으로 눌리며 회전하고, 이에 따라 회전축은 수평을 유지하지 못한 채 원뿔을 그리며 세차운동(precession)을 하게 된다. 이때 BB쉘(바텀브래킷을 넣어 결합하는 프레임 부위)과 베어링컵 사이에는 미세한 틈이 발생하고 그 틈은 크랭크축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베어링컵이 크랭크축의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데, 그 회전력은 베어링의 마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따라서 자전거 페달을 구를 때 바텀브래킷이 풀리지 않도록 하려면 페달을 돌리는 반대방향으로 나사산이 형성된 베어링컵을 사용해야 한다.



바텀브래킷의 세차운동:크랭크축에 가해지는 힘(빨간색 화살표)이 오른쪽으로 돌면 베어링컵은 왼쪽으로 돈다. 동일한 현상을 간단하게 확인하는 방법-왼손으로 휴지심을 가볍게 말아 쥐고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가운데 넣어 오른쪽으로 돌리면 휴지심이 서서히 왼쪽으로 도는 모습을 볼 수 있다./이미지=신병철 객원기자
그러나 국제표준규격을 무시하고 제작되는 자전거들도 있다. 이탈리아에서 제작되는 자전거는 바텀브래킷의 좌우가 동일하게 오른나사다. 이탈리아산 자전거들이 아무런 문제없이 잘 달리는 것을 보면 정밀도가 높은 고사양 자전거에겐 베어링 마찰이나 세차운동이 '남 얘기'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