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 20% 인상, 에이스 9% 인상, 코카콜라 6.5% 인상…. 새해 벽두부터 식품업계가 주력제품의 가격을 줄줄이 인상했다. 원재료 가격이 상승했다는 이유에서다.

공공요금 역시 이 행렬에 가세했다. 한국가스공사가 1일부터 도시가스요금을 평균 5.8% 인상했고 우체국택배(소포) 요금도 다음달부터 9년 만에 가격이 오른다. 전기요금은 이미 지난해 말 평균 5.4% 올랐다. 최근 철도파업으로 홍역을 치른 철도의 경우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요금 5% 인상’을 내부 목표로 정해 추진 중이다. 바야흐로 가격인상 시즌이다.


◆원가 올려야 사는데…공정위 '눈치보여'

하지만 유독 가격인상에 더 목마른 곳이 있다. 바로 시멘트업계다. 생산 원가의 20%를 차지하는 전력요금이 지난해 2차례 인상됐고 건설경기 불황까지 겹치면서 시멘트기업들로선 가격인상이 절실해졌다. 그럼에도 이들은 선뜻 ‘인상 카드’를 꺼내들지 못하며 냉가슴을 앓고 있다. 왜일까.

지난해 초 시멘트업계는 대대적인 가격인상 방침을 밝히며 다른 업종의 가격인상 흐름에 자연스레 편승하려 했다. 시멘트 가격을 9~10% 인상하기로 하고 그해 2월부터 레미콘업체와 건설사에 인상된 가격으로 세금계산서를 보내며 구체적인 액션을 취하기도 했다. 원재료 상승의 요인도 있었지만 수년간 이어져온 적자를 만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것.


그러나 건설 및 레미콘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이들 업계는 시멘트 기업들에 인상된 가격이 아닌, 전년도 가격으로 결제해달라며 맞섰다. 두 진영간 이전투구는 계속됐고 그러는사이 그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 시멘트업계에 제동을 걸었다. 시멘트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통보한 대형 시멘트제조사를 상대로 가격 담합 여부에 대한 조사에 나선 것.

공정위의 예상치 못한 공격에 시멘트제조사들은 결국 ‘가격동결’로 백기를 들었다. 앞서 1998년과 2003년에도 가격 인상을 담합했다는 이유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은 전력이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그랬던 시멘트업계가 이제 근 1년만에 다시 '가격인상 카드'를 꺼낼 기회를 잡았다. 일부 시멘트제조사의 경우 거래관계에 있는 레미콘업체에 오는 2월부터 시멘트 단가를 올리겠다는 통보도 했다.

하지만 올해 역시 가격인상을 놓고 건설·레미콘업계와의 진통이 예상된다. 모 건설사 관계자는 “시멘트제조사와 레미콘기업들은 매번 시멘트 가격을 놓고 적지않은 마찰을 빚어왔다”며 “특히 올해는 시멘트업계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가격인상으로 인한 양측의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사진=뉴스1 최영호 기자

◆전기료 부담 올해 '400억'…철도 물류비 '더 심각'

시멘트업계가 가격인상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원가 상승’과 관련돼 있다. 전기요금과 철도 물류비 등의 상승이 대표적이다. 시멘트업계는 그러나 식품기업들이 원재료 상승 때문에 제품값을 올린다지만 세계 곡물가가 하락하고 있는 등 가격상승의 명분이 없다고 반박한다. 그에 반해 자신들의 원가상승은 현실적인 문제라는 것.

실제 전기요금 상승이 시멘트업계에 미칠 여파는 적지 않아 보인다. 전기료는 시멘트 생산 원가의 20%를 차지하는데 지난해에만 전기요금은 2차례에 걸쳐 10.8%나 인상됐다. 특히 정부가 올 들어 산업용 전기요금을 평균 6.4% 올리기로 결정함에 따라 작년 4066억원에 달하던 시멘트제조사들의 전기요금 부담이 올해는 440억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파악된다.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일부 시멘트회사들은 전기요금을 줄이기 위해 전력사용 피크타임을 피해 야간 생산을 최대화했다”며 “폐열 발전설비를 도입하거나 가동률을 올리기 위해 손해까지 감수하며 수출물량을 늘린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철도 물류비용의 증가 역시 전기료 상승 못지않게 시멘트업계의 ‘원가부담’에 한몫하고 있다.

코레일은 지난해 10월부터 일반화물 기준운임을 8%가량 인상했다. 여기에 최근 철도파업이 철회되기는 했어도 코레일이 ‘요금 5% 인상’을 내부 목표로 정해 계속 추진키로 한 만큼 시멘트업계가 느끼는 압박감은 크다. 쌍용양회나 한일시멘트 등 주요 7개 시멘트업체들의 철도운송 비중은 평균 40%로 집계되고 있으며 제천과 단양지역은 60%에 달한다.

원가부담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기업들의 만성적인 적자가 시멘트업계의 ‘가격인상’ 요구 원인으로 꼽힌다.

시멘트업계는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시작된 시멘트 수요 감소 현상으로 적자구조가 고착화됐다. 특히 최근 몇년은 건설업 부진으로 어려움의 강도가 더 컸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시멘트 출하량은 2007년 5080만톤으로 정점을 찍은 후 내리막을 걸어 2012년 4394만톤으로 5년 만에 생산량이 14%나 줄었다. 올해에도 다시 3~5%가량 생산량이 줄어들 전망이다. 기업들의 공장가동률에 있어서도 2003년 82%에서 2012년 63%, 그리고 지난해엔 59%로 급락했다.

7대 시멘트업체의 2008년 이후부터 올 상반기까지 누적 당기순손실은 1조원을 넘어섰다. 2009년에 반짝 흑자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이후부터 줄곧 평균 2000억원대의 적자를 보고 있다.

■ 시멘트 가격 얼마나 낮길래…
"10년동안 고작 6600원 올라"

한국의 시멘트 가격은 얼마나 낮을까. 현재 시멘트 가격은 2012년 9.0% 인상된 이후 톤당 7만3600원에 거래되고 있다. 10여년 전인 2003년의 6만7000원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10년간 시멘트 가격이 10% 정도밖에 상승하지 못한 셈이다. 반면 이 기간 동안 시멘트 제조의 연료인 유연탄과 경유는 각각 268.6%, 125.5%가 올랐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한국의 시멘트 가격 수준은 턱없이 낮다. 원화로 환산했을 경우 일본(11만6790원), 인도네시아(11만6328원), 미국(11만7477원), 브라질(16만7488원)뿐 아니라 심지어 대만(8만2294원)과 이집트(7만8882원)보다도 가격이 낮다.

한국의 시멘트 값이 싼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수요감소가 크다. 국내 시멘트산업은 1970~1980년대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과 1990년대 이후 건설경기 활황으로 1997년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수요가 줄기 시작했고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시멘트 업황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