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31일 설 명절 오전, 전남 여수 낙포동 인근 주민들의 원성이 터져 나왔다. 여수 낙포동 GS칼텍스 원유2부두로 접안하던 원유운반선이 송유관과 충돌하며 원유 유출사고를 일으킨 탓이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유독성 가스 누출까지 더해지면서 인근 지역에 대규모 환경재앙이 덮쳤다. 주민과 어민들은 건강과 생계로 직결되는 문제라 절망과 분노가 가득한 상황이다.

GS칼텍스 원유2부두 원유 유출사고의 1차 책임은 사고 당시 안전속도를 무시한 원유운반선의 도선사에게 있다. 하지만 GS칼텍스의 늑장 사고신고와 원유 유출량 축소보고 등이 피해 규모를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2차 책임론이 일고 있다.


◆늑장신고·축소보고 책임론

GS칼텍스 원유2부두 원유 유출사고는 사건 당일 9시55분경 싱가포르 선적 16만톤급 원유운반선 우이산호가 원유를 싣고 접안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여수해경에 따르면 우이산호는 평소 운항속도인 2~3노트보다 빠른 7노트로 과속 접안하다 운항 부주의로 송유관 3개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원유하역배관과 잔교가 파손되면서 16만4000ℓ에 달하는 원유가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하지만 당시 GS칼텍스 현장 근무자들은 사고가 발생한지 40분 가까이 지난 후에야 신고를 하는 늑장 대응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유 송유관 밸브도 늦게 잠그면서 피해규모를 키웠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고 당일 GS칼텍스는 800ℓ의 원유가 유출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 2월3일 여수해경의 중간 수사발표에서는 유출량이 16만4000ℓ로 크게 늘었다. 유출량이 200배 넘게 차이를 보인 것. 여기에 김영록 민주당 의원은 2월5일 실제 유출량이 64만200ℓ나 된다고 발표하는 등 원유 유출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GS칼텍스의 늑장 사고신고와 원유 유출량 축소보고 등은 GS칼텍스를 2차 책임자로 몰아가고 있다. 전남 여수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GS칼텍스는 사건 축소에만 급급해 초동방제의 실패를 불러일으켜 피해를 확산시켰다”며 “이 같은 태도는 어떤 변명으로도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이 관계자는 “실제 원유 유출량은 GS칼텍스의 사고 이전 보유분과 이후 보유분의 차이가 될 것”이라며 “해경은 이 부분을 집중 수사해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반해 GS칼텍스는 사고 당시 원유 추가유출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원유운반선의 송유관 충돌사고로 전력공급이 차단되면서 밸브 자동정지 시스템이 정지됐다는 것. 때문에 근무자 전원이 투입돼 수동으로 송유관 밸브를 닫는 과정에서 신고가 늦어졌다고 밝혔다.
 
GS칼텍스 관계자는 “무엇보다 추가 유출을 막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현장 근무자들은 매뉴얼대로 밸브부터 막았다”며 “원유 유출량 축소보고는 사고 당시 관계당국과 언론의 확인요청에 현장 근무자가 소량일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견이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진=뉴스1 김태성 기자
◆GS칼텍스 소속 해무사 부재가 사고원인?

GS칼텍스 소속 해무사가 사고 당시 현장에 없었던 사실이 지난 2월6일 확인되면서 회사에 대한 2차 책임에 무게가 더해지고 있다. 해무사는 원유운반선이 부두에 안전하게 접안할 수 있도록 선박의 움직임을 파악하면서 접근속도와 조건 등을 도선사와 무선으로 협의하는 역할을 한다. 해무사 부재가 GS칼텍스 원유2부두 접안시설 관리에 대한 책임으로 이어지는 까닭이다.


여수해경은 ‘과속 접안’을 한 도선사의 과실과 GS칼텍스 해무사의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사고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GS칼텍스는 해무사 부재를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볼 수 없다고 반박한다. 해무사는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지만 이미 잔교가 부서진 상태라 육지에서 부두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는 것. 원유운반선이 통보 없이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이나 빨리 도착했기 때문에 해무사가 사고 당시 현장에 있지 못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그러나 일부 해운선사 관계자들은 GS칼텍스 측의 통보 없이 원유운반선이 일방적으로 접안을 시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GS칼텍스 관계자는 “법적으로 해무사를 의무적으로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며 “게다가 사고 지역은 강제도선지역이라 도선사에게 접안을 맡기는 부분이 크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현장에 상근 안전관리사 2명도 있었기 때문에 해무사 부재를 사고 원인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피해보상 놓고 날선 공방

이번 사고는 예상치 못했던 피해까지 불러왔다. 여수해경에 따르면 사고 당일부터 여수 만덕·공화·수정동 일원 1만여가구 주민 수만명이 악취로 인한 두통을 호소하고 있다.

여수해경 관계자는 “관로에 남아 있던 유독성 가스가 누출되면서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누출된 가스는 발암물질인 휘발성유기화합물(VOC)로 알려졌다. 또한 유출된 원유는 현재 사고현장에서 10㎞가량 떨어진 여수만성리 해수욕장과 오동도 앞바다까지 퍼져 나가면서 피해 규모를 키우고 있다.

이처럼 원유 유출사고로 인한 피해는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지만 이에 관련한 피해보상 방법은 아직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당장 건강과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주민들은 GS칼텍스의 선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GS칼텍스로 2차 책임의 무게가 실리면서 시민단체들도 가세해 압력을 넣고 있다. 1995년 같은 지역에서 일어난 씨프린스호 원유 유출사고(5000톤 유출) 당사자가 GS칼텍스였던 점도 상황 악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 2월6일 열린 ‘우이산호 기름유출 사고 수습대책협의회’ 1차 회의에서는 방제 비용·의료비 지급 뿐 아니라 어민 피해 규모가 확인되는 대로 보상 금액을 우선 지급하기로 했다. 사고수습본부는 조만간 2차 회의를 열고 GS칼텍스와 피해액수 산정을 위한 기본 계획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어민들과 GS칼텍스 간 정확한 피해 규모 산정 과정에서 어느 지역을 피해 해역으로 보고 조사할 것인지, 평상시 어획량, 관행 어업에 따른 피해액 산정 범위, 간접 피해 등을 놓고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피해 보상이 이뤄지기까지 난항이 예상되는 이유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1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