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신사동 소재의 회사에 다니는 김지혜씨(30). 자칭 ‘드러그스토어 마니아’인 그는 퇴근 후 거의 매일 회사 근처 ‘헬스&뷰티숍’인 드러그스토어 매장을 찾는다. 뷰티제품부터 건강식품, 생필품까지 상품군이 다양한 데다 한곳에서 여러 브랜드를 접할 수 있는 ‘원스톱 쇼핑’의 매력 때문. 김씨는 “다양한 수입 화장품을 한꺼번에 구경하고, 간식거리도 몇개 사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드러그스토어 브랜드끼리 경쟁이 심화되면서 쇼핑 폭이 더 넓어졌다. 김씨는 “주로 CJ올리브영 매장을 이용했지만, 요즘은 몇 발자국만 가도 새로운 브랜드들이 들어와 있는 것 같다”며 “제품과 할인혜택 등을 꼼꼼히 따져보고 더 마음에 드는 곳에서 물건을 구매한다”고 전했다.

지난 3월, 롯데의 드러그스토어 ‘롭스’ 13호 매장이 패션과 뷰티의 거리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입성했다. 경쟁사인 CJ의 드러그스토어 ‘CJ올리브영’을 마주하고서다. 아이러니 하게도 롭스가 들어선 신규 매장은 불과 몇달 전까지 CJ올리브영이 있던 곳. 과거 CJ올리브영이 있던 자리에 롭스가 들어서고 CJ올리브영은 터전을 옆 건물로 옮긴 셈이다.


이곳을 찾은 고객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다. 롭스 매장에서 만난 한 고객은 “몇달 만에 가로수길에 나왔는데, CJ올리브영 자리가 뒤바뀐 것을 보고 놀랐다”며 “고객 입장에선 더 많은 제품을 다양하게 볼 수 있어 좋지만, 너무 비슷한 곳만 생기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객은 “뷰티플레이스답게 매장 분위기는 더 핫(Hot)해진 것 같다”고 만족해했다.

CJ올리브영 가로수길점의 한 직원은 “본래 있던 자리에 매장을 정리하고 올 2월 쯤 이곳으로 옮겨 재오픈했다”며 “오픈한 지 얼마 안 돼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지만 같은 건물 지하에 CJ푸드빌의 제일제면소가 있고 윗층에는 투썸플레이스가 자리해 그룹 계열사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롭스의 한 직원은 “CJ올리브영이 (건물주와) 계약이 끝나면서 (적합한 신규매장 오픈 장소를 찾던) 롭스가 들어오게 된 것”이라며 “CJ는 CJ타운으로 들어간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사진=김설아 기자
◆ 자리 빼는 CJ, 그 자리엔 롯데가…


매장이 서로 마주보게 되면서 두 기업의 경쟁은 본격화됐다.

롭스 가로수길점은 우선 매장크기부터 기존 드러그스토어를 압도한다. 건물 1층만 사용하지만 해당면적이 무려 298㎡(약 90평)에 이른다. 그동안 롭스가 오픈했던 매장 가운데서도 가장 큰 크기를 자랑한다. 여기에 롭스는 병행수입과 신규 브랜드 입점 비중을 늘리고 50% 할인 등 파격 이벤트를 내걸었다. 향초와 같은 이색 아이템 판매를 비롯해 네일서비스, 남성을 위한 맨케어존 구축 등도 고객들로부터 큰 호감을 사고 있다.

CJ올리브영은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특별한 공간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팝업존에 무료 메이크업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퍼퓸존, 오가닉&내추럴존, XTM 맨즈 콜렉션존 등을 구성해 롭스와 차별화시켰다.

 

이 매장 직원은 “롭스에서 구경하던 고객이 이쪽으로 방문하기도 하고, 우리쪽에서 구경하던 고객이 곧바로 롭스로 옮겨가기도 한다”며 “아직 매출 변화까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업태인데)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상황은 강서구 화곡역 부근에서도 연출된다. 지난 5월16일 CJ올리브영 화곡점과 100여m 떨어진 곳에 롭스 화곡점이 오픈한 것이다. 롭스 측은 16번째 매장을 오픈하면서 현금 쿠폰, 사은품 증정 등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고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에 질세라 CJ올리브영 화곡점도 '1+1 이벤트', '10~30% 쿠폰' 발급 등을 내세우며 맞서고 있다.

/사진=김설아 기자
◆ "롯데, 건물주와 접촉해 CJ 매장 뺐다"

CJ올리브영은 국내 드러그스토어의 터줏대감이다. 현재 드러그스토어 시장은 CJ올리브영이 378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CJ올리브영이 지난 1999년 1호점을 오픈한 후 대박을 터뜨리자 더블유스토어, GS왓슨스, 판도라, 분스, 롭스 등 경쟁 업체들이 연이어 등장해 시장이 급속도로 커졌다.

이에 반해 롭스는 후발업체 중에서도 시장진입 1년 차, 16개 매장을 보유한 '새내기'에 속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1위인 CJ올리브영과 롭스의 상권이 지나치게 겹치는 게 우연은 아닐 것이라는 시선을 보낸다. 드러그스토어 출혈 경쟁 속에서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지 못한 롭스가 ‘CJ올리브영 자리뺏기’ 전략을 쓰고 있다는 주장이다.

CJ올리브영의 허민호 대표도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허 대표는 지난 5월2일 내부 직원들만 공유하는 CEO메시지 게시판을 통해 “롯데가 지난해까지만 해도 CJ올리브영의 매출이 높은 지점을 골라 근접 출점했지만, 출점한 매장마다 기대 수준의 매출을 얻지 못하자 CJ올리브영이 입점한 건물주들과 접촉해 아예 우리 거점 매장을 빼내는 방식을 쓰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허 대표는 “(그럼에도) 초심을 잃지 말고 열심히 하자”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 대표의 지적대로 공교롭게 롭스가 현재까지 입점한 16개 매장 (홍대점, 홍대역점, 잠실캐슬점, 성대점, 압구정점, 수유점, 왕십리역점, 상봉엔터점, 이천 아울렛점, 노원시네마점, 건대점, 신천점, 가로수길점, 부평점, 서울역점, 화곡점) 중 90% 이상이 CJ올리브영 매장의 반경 500m안에 자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드러그스토어 시장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전까지는 자리 잡기 매우 어려운 시장”이라며 “다점포화를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은 후발주자 ‘롭스’가 일단 1위인 CJ 따라하기 전략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상권에 자리하면서 매출을 올리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롭스 측은 “당연히 CJ올리브영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롭스 한 관계자는 “같은 업태다 보니 CJ가 보는 상권과 우리가 보는 상권이 동일한 경우가 많다”며 “주고객인 20~30대 여성들이 가는 곳은 정해져 있고, 이미 CJ올리브영이 웬만큼 (목이) 좋은 자리는 모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신규오픈 하는 매장은 근거리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건물주 접촉 의혹과 관련해서도 “사실이 아니다”며 “워낙 경쟁이 심하다 보니 그런 말까지 나오는 것 같다”고 일축했다.

CJ올리브영 측도 비슷한 입장을 내놨다. 이 회사 관계자는 “허 대표가 인트라넷 메일을 통해 내부직원들에게 전한 (롭스 관련) 얘기는 있었다”면서도 “롯데뿐 아니라 로드숍 대부분이 역세권이나 트래픽이 높은 상권을 잡고, 또 그렇게 모여 있다 보니 (치열한 경쟁구도로) 비춰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3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