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우리사회는 비통했다. 지난 4월 수학여행을 위해 집을 나섰던 고등학생 261명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이른바 '세월호 사건'은 대한민국의 시계를 멈추게 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어느 한 분야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어여쁜 아들·딸을 잃어버린 가족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고 침몰순간을 생중계로 지켜본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한마음으로 오열했다.

하반기에도 슬픔은 계속됐다. '마왕' 신해철의 갑작스런 사망은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의료사고' 논란으로 이어져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그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머니위크>가 진행한 '2014 올해의 인물' 사회부문에서는 세월호 희생자 304명(사망자295명·실종자9명)이 압도적인 표차로 1위에 올랐다. 설문에 응한 400명(1인2표제)의 과반수를 넘는 339명(84.8%)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그들을 기억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갑작스런 사망으로 의료사고 시비가 붙은 '마왕' 신해철이 145표(36.3%)를 받아 2위에 자리했다. 이밖에 세월호 참사로 사회가 큰 비통에 빠져있을 당시 우리 곁을 찾아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119표(29.8%)를 얻어 3위, 군대 내 가혹행위와 따돌림 등 군내 인권문제를 재점화한 윤일병과 임병장이 117표(29.3%)로 4위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난방 열사’라는 칭호를 얻은 연예인 김부선이 수년간 묵혀있던 ‘우리동네 아파트 비리’를 폭로하며 76표(19%)를 획득, 5위에 자리했다.


 

/사진=임한별 기자

◆304명, 대한민국이 멈췄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어. 구명조끼 입으란 거는 침몰되고 있다는 소리 아니야?"
"아저씨, 여자애들(있는) 이 루트(길) 포기하면 안돼요. 여기 애들 있어요."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해. 길게 통화 못해 끊어."
"엄마, 아빠 아빠 아빠… 아. 내 동생 어떡하지?"
"아…. 나 진짜 죽는 거 아냐?"

대한민국이 멈췄다. 지난 4월16일 476명을 태운 배 한척이 전라남도 진도군 부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이 배의 명칭은 '세월호'. 이 사고로 아직 꽃을 피우지도 못한 단원고 2학년 학생과 교사 261명을 포함한 295명이 유명을 달리했으며 12월18일 기준으로 247일이 지난 현재까지 9명의 희생자가 차가운 바다 속에 남아 있다. 수중수색에 투입된 인원만 6304명, 유가족·실종자 가족을 돕기 위해 모인 자원봉사자는 총 6902개 단체, 5만145명으로 집계됐다. 전국에서 몰려든 구호물품도 78만2444점이다.

사건 당일에는 세월호 사건의 파장이 이처럼 커질 줄 아무도 몰랐다. 당일 오전, 언론에서는 '전원 구출'이란 오보를 냈고 학부모를 포함한 탑승자 가족들은 이를 믿었다. 전국으로 생중계된 TV화면에는 선채가 기울어진 세월호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탑승자들이 하나둘 빠져나오는 모습이 비췄다. 그래서 우리는 믿었다. 모두 구조될 것이라고.

하지만 오후가 되면서 정부의 말이 바뀌었다. 시시각각 생존자가 줄어들었다. 안산 단원고에 모였던 학부모들이 한걸음에 진도로 내려갔고 그날 이후로 며칠간, 아니 현재까지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돌아오지 않는 자신의 피붙이를 기다리고 있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8개월이 흘렀지만 생존자와 희생자 유족들, 그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시계는 아직도 4월16일에 멈춰있다. 희생자가 다수 발생한 안산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운동이 반년 이상 계속됐다. 여야는 지지부진한 협상 끝에 지난 11월에서야 사고조사를 위한 '세월호특별법'에 합의했다. 단 유족이 '타는 목마름으로' 요구해온 '진상조사위원회의 수사권·기소권 보장원칙'은 수용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유족들의 가슴을 멍울지게 한 일은 또 있다. 침몰하는 배와 승객을 버리고 홀로 탈출한 이준석 세월호 선장은 법원으로부터 징역 36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살인·특정범죄가중처벌법(도주선박) 위반 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1등 항해사와 2등 항해사 역시 살인혐의에서 무죄를 받았다. 세월호를 운영하는 청해진해운과 관련돼 검찰의 수사를 받은 유병언 일가의 경우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잠적한 후 돌연 사망함에 따라 '미완성'인 채 수사가 종결됐다.

꽃다운 목숨을 떠나보낸 대한민국은 사고 이후 죄의식에 젖어 있다. 각계각층에서 세월호 사건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이 변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국의 미온한 대처와 지지부진한 후속조치에 분노하면서도 우리사회가 '안전불감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함께 이어졌다.

광화문광장에서는 여전히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시위와 서명운동이 한창이다. 지난 6월부터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는 홍종철씨(59·남)는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가까이에서 보다가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하게 됐다”며 "단순한 사고였지만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일"이라며 "전세대가 영원히 역사적으로 기억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김종천 4·16기억저장소 사무국장은 "(단원고 희생자들이) 수학여행을 갔다 죽은 아이들로 기억되는 것이 아닌 '너희 그렇게 살래?'라고 우리사회에 경종을 울린, '세상을 바꾼 아이들'로 기억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합동분향소가 설치됐을 당시 이곳을 찾았던 이들은 높게 쌓인 영정사진에 모두 할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들이 숫자가 아닌 이름으로, 사진으로, 각자의 사연으로 한명씩 우리 앞에 다가왔을 때 대한민국은 오열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올해의 인물' 선정, 어떻게?

서울에 거주하는 남녀직장인 400명을 대상으로 이메일과 문자메시지, SNS 등을 통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기간은 지난 12월1일부터 14일까지 2주간이었으며 정치·경제·사회·문화·스포츠·세계 등 총 6개 분야에서 2명씩 '올해의 인물'에 투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1인 2표제이며 통계치는 이백분율을 기준으로 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