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실적반등을 위한 새 전략은 M&A다. ‘수익·미래’가 보이면 투자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벌가 2·3세들의 M&A 먹성이 폭발했다. 재계 지형도를 뒤바꿀 대형 M&A 물결이 연초부터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백병전을 방불케 할 만큼 치열해진 것. 저마다 사상 최대 총알을 장착한 오너들은 모든 역량을 동원해 총력전을 펼치는 중이다. 먹잇감이 마음에 들면 경쟁기업보다 두배의 인수가격을 써내는 과감한 베팅을 펼치는가 하면 불황에도 최대규모의 투자를 단행하는 결단력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 한해 또 한번의 M&A 광풍이 몰아칠 것으로 전망한다. ‘4번 타자’는 이미 남다른 먹성을 증명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필드’는 국내에서 해외로 넓혀지는 모양새다. 신 회장뿐만이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물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도 M&A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달라진 신동빈, 소화불량 극복할까
신동빈 회장이 달라졌다. ‘깐깐’, ‘짠돌이’라는 별명답지 않게 올해 유독 몸집 불리기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M&A 투자규모도 역대 최대인 7조5000억원을 내걸었다. 우선 신 회장은 최근 국내외 세곳의 굵직굵직한 M&A를 추진 중이다.
국내에서는 렌터카 1위 업체 KT렌탈 인수를 위해 1조원 이상을 써내며 우선협상대상자로 공식 선정됐다. 해외에서는 글로벌 패션기업 베네통 계열의 세계 6위 면세점기업인 ‘월드듀티프리’(이하 WDF)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경영권 지분 50.1%를 대상으로 진행되는데 신 회장은 인수를 위해 최소 2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다.
러시아에서는 초대형 복합쇼핑몰 ‘아트리움’ 인수를 위한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루블화 폭락으로 인수비용이 내려갔음에도 업계는 수천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M&A의 특징은 기존 롯데의 주력산업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 데 있다. ‘핵심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사업에만 투자한다’는 롯데그룹의 M&A 원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실제 WDF 인수에 성공하면 롯데는 단숨에 세계 면세점시장 2위에 오른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감한 베팅이다. 신 회장은 그동안 아무리 좋은 매물이라 하더라도 가격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 딜에서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KT렌탈 인수를 지켜본 관계자들은 “신 회장의 베팅 본능을 읽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신 회장은 인수전에서 1차 본입찰 시 다른 후보들보다 낮은 입찰가를 제시해 인수경쟁에서 한발 뒤졌지만 2차 본입찰 때는 과감하게 1조원을 웃도는 최고가를 제시해 역전승을 일궈냈다.
업계에서는 신 회장이 이처럼 공격적인 M&A를 추진하는 이유로 롯데가 내놓은 ‘2018 아시아 TOP10 글로벌그룹’이라는 비전의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본다. 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 덩치를 키우고 그룹을 대폭 확장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무리하게 몸집만 불리다가는 소화불량으로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승부사 이재용, 한달에 한번 기업쇼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에도 새 바람이 불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M&A. 삼성의 미래를 M&A로 삼은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부회장은 적극적으로 M&A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10개월 동안에만 무려 8건의 M&A가 성사됐다. 한달에 한번 꼴로 기업을 인수한 셈. 이는 삼성전자가 지난 2007년부터 인수한 22개 기업의 36.3%에 달하는 수치다. 이 부회장은 비핵심사업 영역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전자·바이오·금융 등 핵심사업 역량을 배가하기 위해 관련 기업 M&A에 적극 나섰다.
지난해 방산·화학업종을 한화로 매각하고 삼성전자가 신성장동력으로 삼는 모바일·사물인터넷(IoT) 관련 기술을 가진 기업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최근 인수한 모바일 결제서비스업체 루프페이, 지난해 인수한 스마트싱스, 지난 2012년 인수한 클라우드 음악서비스업체 엠스팟 등은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에 디딤돌이 될 수 있는 경쟁력을 보유했다는 평을 받는다. 삼성 측은 이들을 중심으로 새 시장을 개척하는 전략을 펼칠 계획이다.
이 부회장이 M&A에 적극적으로 나선 데는 현재 주력사업만 믿기에는 그룹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다만 확실한 성장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한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진=머니투데이 이명근 기자
◆빅딜 달인 김승연, 고비마다 M&A 카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해 복귀와 함께 통 큰 승부수를 띄웠다. 삼성그룹과의 ‘빅딜’을 통해 새판 짜기에 나서면서 재계에 존재감을 알린 것. 한화그룹은 지난해 말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 등 삼성의 방위산업부문과 석유화학사업부문을 인수함으로써 단숨에 몸집 불리기에 성공했다.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김 회장이 푼 인수자금만 약 2조원.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인수합병이다. 이로써 한화그룹의 자산규모는 50조원대로 늘어나 재계서열 10위에서 9위로 올라섰다.
타고난 ‘승부사’인 김 회장은 M&A를 통해 회사를 키우는 정공법 경영으로 유명하다. 다만 취임 초기 기존 사업분야와 무관한 곳에도 뛰어들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핵심사업 강화를 위한 M&A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한국화약이 오늘과 같은 한화그룹으로 도약한 데는 M&A가 큰 밑거름이 됐다. 설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김 회장은 수십건의 M&A를 성공적으로 성사시켰다. 특히 위기 때마다 임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회사를 인수한 후 잡음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기업을 정상화시킨 점은 김 회장의 M&A 리더십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7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재테크 경제주간지’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