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더 이상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아니 엄밀히 말해 몇번째냐는 질문이 무의미해졌다.” 다름 아닌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대책과 관련된 얘기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정부가 쏟아낸 부동산정책은 열손가락을 접어가며 셀 수 있었지만 지금은 셀 수도 없거니와 설령 세어보더라도 부동산정책으로 봐야 할지, 경기부양책으로 봐야 할지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다.


물론 부동산의 특성상 금융정책과 연계되며 경제환경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올 들어 발표한 직후 축소한 정책, 시장 상황이 바뀌었다며 돌연 연기한 정책을 봤을 때 과연 이것이 부동산정책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더 깊어진다.

더욱이 그동안 현 정권에서 발표한 부동산정책은 규제완화와 저금리 기조를 등에 업은 금융혜택을 통해 자금이 부족한 세입자에게 ‘빚 내서 집 사라’고 부추긴 정책이 대부분이었다. 서민의 주거환경 안정화를 이끌어내는 부동산정책이라기보다는 자금회전을 통한 경기부양정책에 가까웠다.

전셋값은 치솟고 전세 매물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서민들은 이제 빚을 내 집을 사든지, 매달 생돈이 나가는 월세로 살든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처지가 됐다. 


경기 성남시 수정구 기업형 민간임대주택 공사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뉴스1 민경석 기자

◆ 포장은 ‘주거안정’ 내용은 ‘경기활성’
정부가 올해 발표한 ‘기업형 주택임대사업 육성을 통한 중산층 주거혁신방안’을 보면 정부의 주택정책 목표가 서민 주거안정이 아닌 건설경기 활성화임을 알 수 있다. 이 정책의 골자는 기업형 주택임대사업을 육성해 분양주택 수준의 질 높은 8년짜리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주택이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주거의 개념으로 바뀌었고 초저금리정책으로 인해 전세보다 월세가 늘어나는 등 주택시장의 변화에 맞추면서 전월세난 등 서민들의 주거불안정을 해소하겠다는 게 당초 정부의 생각이었다.

부동산정책의 명분이 서민 주거안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책을 뜯어보면 기업형 임대사업자 육성을 위해 건설업체에 대한 규제를 풀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특혜종합세트’로 보인다.

우선 기업형 임대주택에 대해서는 초기 임대료 상한 기준과 입주자 자격제한 등 각종 규제를 폐지키로 했다. 특히 수도권의 그린벨트까지 기업형 임대주택의 택지로 공급하겠다는 게 정부의 의지다. 이와 함께 국민주택기금의 지원 한도를 올리고 임대사업자의 취득세와 재산세, 법인세 등을 50% 이상 감면해주는 내용도 정책에 포함됐다.

지금껏 정부가 세수의 축소를 우려해 각종 세금인하에 난색을 표해온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특혜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정부는 건설업체를 겨냥해 막대한 유인책을 쏟아냈지만 정작 서민을 위한 주거비 부담경감 등의 혜택은 내놓지 못했다.


은행창구에서 상담을 받고 대출 상담자. /사진=뉴스1 하석현 기자

◆ 경기 살자 유야무야 된 ‘수익공유형모기지’
정부가 올해 초 1%대 저금리로 주택대출을 실시한다고 발표한 ‘수익공유형모기지’ 역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책 중 하나다. 올해 3월 말~4월 초 실시한다고 발표한 이 주택대출은 금융위원회가 추진한 ‘안심전환대출’과 판매시기가 겹치면서 3개월 후인 6월로 연기됐지만 막상 6월이 되자 또다시 무기한 연기됐다.

국토부가 갑자기 이 상품 출시를 연기한 것은 가계대출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금융기관의 가계대출액은 765조2408억원으로 사상 처음 전달 대비 10조원 이상 증가했다.

한은이 올 들어 지난 3월과 6월 두차례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가계부채 우려는 더 커졌다. 관계부처들은 지난 3월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가계부채를 잡기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섰다. 금융위 측은 가계부채를 부추길 수 있는 수익공유형모기지 상품 도입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기획재정부 역시 이 상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미 주택시장이 정상화됐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지난 5월 주택매매거래량은 11만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40.5% 급증했고 1∼5월 누계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2% 늘었다. 이 상품의 출시목적이 ‘침체된 주택시장 살리기’인 점을 고려하면 현재 주택시장에선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다.

주택시장이 웬만큼 정상화됐고 가계부채가 심화될 수 있다는 정부의 판단 때문이지만 내 집 마련을 위해 상품출시를 애타게 기다리던 서민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다.

수익공유형모기지는 우리은행을 통해 최초 7년간 연 1%대 초저리로 대출해주고 앞으로 집값이 오르면 수익을 은행과 공유하는 것이 골자다. 연소득 제한이 없고 대출 가능한 주택범위(공시가격 9억원, 전용면적 102㎡ 이하)도 넓어 대출금리가 부담스러운 서민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야심차게 홍보한 주택상품을 시장 상황이 변했다는 이유로 보류함에 따라 불과 반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정책 일관성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발표 당시 회복기였던 주택시장이 이젠 정상화됐다고 판단했다”며 “4월 주택담보대출 증가액도 1년 전보다 4배 가까이 늘었는데 이건 금융당국이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동안 정부는 주택구입자금 대출규제를 완화해 부동산경기를 일으키려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가계부채 증가'라는 부작용을 키웠고 발표한 정책조차 시행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놓였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