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들썩이게 한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 대결이 지난 15일 제5국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세돌 9단이 완승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깨고 알파고가 4대1로 승리했다. 이에 '알파고 쇼크'가 들이닥쳤다는 표현도 등장했다. 이세돌-알파고, 세기의 대결이 한국사회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
◆ 바둑 전성기, 다시 돌아올까
1980년대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던 바둑은 2000년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일부층만 즐기는 게임으로 전락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바둑을 둘 줄 아는 성인 비율은 92년 36.5%에서 2004년 20.3%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전국 곳곳에 자리했던 기원은 눈에 띄게 줄었고 바둑교실도 찾기 힘들어졌다.
그러나 이번 인간과 AI의 바둑 대국으로 왜 구글이 바둑을 선택했는지부터 시작해 대국방식, 바둑용어 등이 전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바야흐로 '바둑의 부활'이었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 먼 미래에서나 가능할 것 같던 대결이 성사됐을 때부터 포털 실시간 검색어는 바둑관련 용어로 도배됐다.
특히 바둑 열풍이 부는 곳은 바로 온라인 바둑 게임시장이다. NHN엔터테인먼트가 서비스하는 '한게임 바둑'은 신규 이용자가 3배 이상 늘었고 네오위즈의 '피망 바둑'도 신규가입자가 7배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지난 17일 기준 구글플레이 인기게임 순위에 '은별 바둑' '최고의 바둑' '바둑의 제왕'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인간과 AI의 대결이 과학기술을 넘어 문화콘텐츠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 '한국형 AI' 생태계 구축 경각심
현대 과학기술 발전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 AI의 흥행에 우리 정부가 급해졌다. 지난 17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주재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신설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우리 사회가 이번 알파고 쇼크를 계기로 더 늦기 전에 인공지능 개발의 중요성에 대해 큰 경각심과 자극을 받은 것이 역설적으로 상당히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년 300억원 규모의 예산 반영 계획도 논의됐다.
이에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능정보산업 발전 전략'을 공개했다. 주요 골자는 민·관이 함께 국가 연구 역량과 데이터를 하나로 결집한 기업형 연구소를 설립한다는 것. 삼성전자·LG전자·KT·SK텔레콤·네이버·현대자동차 등 총 6개 기업이 30억원을 출자한다. '한국형' AI플랫폼과 AI생태계 조성이 목표다. 구글과 같은 세계적인 IT기업의 눈부신 AI기술에 비해 '답보상태'라고 평가받는 국내기업들이 뭉쳐 어떤 기술을 만들어낼지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6개 대기업이 과연 자신들이 가진 고유의 기술력을 모두 공개하겠냐고 의심한다. 현실성 있는 기술개발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다. 특히 전자분야의 라이벌인 삼성전자와 LG전자, 통신업계 경쟁사인 SK텔레콤과 KT의 협업이 이뤄질지 의문이다. 결국 뒤늦은 정부의 AI 육성 정책에 발맞춘 대기업들의 재원조달 수준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결국 인간을 대체할까, AI포비아
정부와 기업이 AI에 대한 투자계획을 연일 발표하고 있는 반면 AI의 능력에 충격을 받은 일부 사람들이 우울과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AI포비아'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회의감과 AI가 인간을 지배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감 등이 퍼지고 있는 것.
실제 AI는 현재 산업 곳곳에서 이용되고 있다. 주식투자, 회계감사 등의 금융서비스와 암 진단 등의 의료분야, 자율주행차, 심지어는 기사 작성까지 AI가 알아서 하고 있다. 알파고도 개개인에 맞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데이터를 학습 중이다. 세계정상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을 물리친 알파고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의 건강상태를 진단하고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AI는 이미 인간의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18세기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등장했다. 러다이트 운동은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벌인 기계파괴운동으로 기계의 시대 도래에 사람들의 공포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례로 꼽힌다. 세기의 바둑대결로 시작된 AI시대에 인공지능의 역습을 우려한 21세기 러다이트 운동이 벌어질지, 또 사회는 어떻게 바뀔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