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던가. 두메산골 오지에 사는 농부 김칠성씨와 도시문명을 즐기며 사는 미시족 윤경아씨는 적어도 먹거리 측면에서 점점 닮아가고 있다. 이유는 이른바 ‘유기농’ 열풍 때문. 이들은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직접 재배하거나 두부 한개를 사더라도 소재와 성분을 꼼꼼히 따지는 편이다. ‘음식은 주방이 아니라 자연에서 만들어진다’는 게 이들이 가진 철학이다. 2000년대 초 전국을 강타했던 ‘웰빙’, ‘유기농 신드롬’이 3040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이제 유기농은 먹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잘 먹는 것뿐 아니라 입고, 쓰고, 바르는 등 생활 전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유기농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몸에 좋다는데 돈 아낄 수 없지”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주부 김현숙씨(44)는 매달 네식구가 먹을 유기 농산물을 사는 비용으로 30만원을 책정했다. 이전에는 야채나 과일을 사는 데 한달 평균 13만~15만원이 들었지만 친환경 먹거리로 바꾼 뒤 지출이 60%가량 늘었다.
김씨는 “처음에는 주변에서 먹으니까 따라서 한두번 사먹었는데 각종 먹거리 불안 이슈가 나오면서 지금은 돈을 더 주더라도 꼭 인증된 제품만 사먹는다”며 “식품에 표시된 유기농·무농약·저농약 등 농약·화학비료 잔류검사에 따른 등급과 가격을 꼼꼼하게 따진 뒤 구매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자주 찾는 매장은 목동에 위치한 유기농브랜드 초록마을. 이곳에서는 유기농 쌀부터 계란, 과일 등 유기농식품과 친환경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총 1500여가지의 유기농상품을 판매한다. 냉장수산물뿐 아니라 수제 베이커리 등도 입점해 아이들 간식거리까지 한번에 해결이 가능하다.
가격은 ▲무농약쌀(10kg) 3만7300원 ▲유기농 청상추(150g) 1480원 ▲무농약 양배추(500g) 2880원 ▲착한농부초록사과(4입) 8900원 ▲착한농부팩배(2입) 8900원 등으로 일반식품보다 20%가량 비싸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는 소비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초록마을 관계자는 “비싸더라도 안전한 식품을 먹어야 한다는 쪽으로 먹거리 트렌드가 변하는 것 같다”며 “안전관리시스템, 생산이력제, 배달서비스 등을 시행해 소비자 만족도를 높였다”고 말했다. 초록마을은 2002년 마포 1호점을 시작으로 2014년 연매출 1761억원을 달성한 데 힘입어 지난해 400호점을 돌파했다.
유기농 인증마크를 단 유통매장 수가 늘어난 만큼 관련 상품도 백화점·대형마트에서 대접받는다. 현재까지 녹색매장은 초록마을, 올가홀푸드, 무공이네 외에도 롯데마트, 이마트, 롯데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 생활협동조합, 나들가게 등에 전국적으로 300개 이상의 브랜드가 입점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유기농산물 선호 추세는 서울 강남이나 분당 등 중산층 밀집지역에서 더욱 두드러진다”며 “마트 내에서도 유기농산물코너 매출이 전국 점포 평균 매출보다 2배 이상 높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건강 입은 화장품·패션… 스타일은 덤
직장인 손민혁씨(35)는 얼마전 베이비페어에서 돌이 갓 지난 아들에게 입힐 유기농 면 소재 옷을 샀다. 예전이었다면 별생각 없이 합성섬유가 혼방된 제품을 골랐겠지만 아토피 증세가 있는 아이 때문에 원단에 특별히 신경 쓴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도 옥수수나 대나무 등 자연소재로 만들어진 에코백(천가방)을 추천하고 천연재료로 만든 화장품을 사용하기를 권한다. 아이 기저귀 역시 물로 빨아 쓰는 순수 면 소재의 천기저귀를 사용한다.
손씨는 “아이를 낳은 후 유기농제품에 대해 새삼 관심을 갖게 됐다”며 “생활의 작은 부분부터 실천하기 위해 친환경 소재의 옷과 화장품, 생활용품 등을 사용한다”고 전했다.
먹거리를 제외한 유기농 열풍을 선봉에서 이끄는 분야는 의류. 그간 유기농 의류는 유아복을 중심으로 간간이 선보여왔으나 최근에는 청바지, 티셔츠 등 캐주얼 의류는 물론 아웃도어 의류, 남성 정장까지 친환경제품이 쏟아진다. 소재도 유기농으로 재배된 면에서 대나무, 콩, 녹차 등으로 다양해지는 추세다.
아토피·알레르기·습진 등 피부질환에 신경 쓰는 사람이 늘면서 피부자극이 없는 의류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어서다. 이에 패션업계에서는 친환경 유기농 소재를 사용하는 오가닉 라인을 대거 출시하고 매장에 친환경제품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는 등 ‘유기농 마케팅’을 강화했다.
뷰티업계 역시 친환경제품을 속속 내놓기 시작했다. 전문유기농 화장품브랜드는 물론 기존 화장품브랜드에서도 유기농 화장품라인을 확충하는 추세다. 종류도 다양하다. 녹차, 대나무 수액, 송이버섯, 인삼, 상황 등 식물·한방성분 외에 해양심층수, 천연암반수 등 차별화된 물과 로열젤리, 스쿠알렌 등 건강기능식품 성분 등이 대표적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친환경제품은 자연과 환경에 대한 소비자의 감성을 반영할 뿐 아니라 천연이라는 소재 특성상 기능도 뛰어나다”며 “피부노화를 늦추는 자연주의 소재나 한방약재로 만든 프리미엄 화장품 및 의류시장이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기농을 찾는 소비성향은 가구 트렌드도 바꿔놓았다. 최근 출시되는 신제품들이 대부분 친환경에 초점을 맞춘 것은 물론 친환경 원목가구라는 신규영역으로 뛰어드는 가구업체가 적잖이 눈에 띈다. 온라인마켓에서는 친환경 가구를 찾는 소비자가 전년 대비 두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이제는 가구 하나를 제작하더라도 건강과 효능을 생각해야 하는 시대인 셈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