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부동산시장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인 서울 강남역. 초고층 업무빌딩과 상업시설, 교육과 문화가 어우러진 이곳은 하루에만 수십만명의 발길이 오간다. 부동산정보기업 FR인베스트먼트에 따르면 강남역 6번 출구가 16만5768명으로 하루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 전체출구는 98만7307명이다. 단순통계로 우리나라 국민 50명 중 1명이 하루에 한번 이상 강남역을 지나친다. 인근 집값이나 임대료는 국내 최고수준을 자랑할 수밖에 없다.
# 철도 연장과 신도시 건설로 서울 지하철이 경기도 구석구석을 누빈다. 하지만 개발을 기대하고 지은 지하철역이 때로는 실패작이 되기도 한다. 경기도 산본신도시 인근의 수리산역은 2003년 세워졌다가 2010년 ‘무배치 간이역’으로 지정됐다. 하루평균 승강인원이 10명에 못미쳐 운영비용 절감을 위해 역장과 역무원을 없앴다. 역 주변 대규모 주택단지가 지어졌음에도 수리산역 승강인원은 2004년 7209명에서 2015년 3432명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역세권은 미래가치가 뛰어나고 집값 상승률도 높다. 부동산114 조사결과 서울 9호선 삼성중앙역 앞 ‘삼성힐스테이트’는 지하철역이 생긴 이후 집값이 30%가량 뛰었다. 전용면적 85㎡ 가격이 2014년 9억8500만원대에 거래되다가 지난해 3월 삼성중앙역 개통 후 최고 12억5000만원으로 올랐다.
집값뿐만이 아니다. 서울의 강남역을 비롯해 외국인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동이나 동대문의 지하철역 주변 상가건물은 비좁은 점포의 한달 월세가 1억원을 넘기도 한다.
◆역세권 ‘10분의 법칙’
663개. 2016년 현재 수도권을 잇는 전철역 수다. 2010년 전후로 지하철 9호선과 함께 공항철도, 경의·중앙선, 경춘선, 신분당선, 수인선, 용인경전철, 의정부경전철이 새로 개통돼 이제는 강원도 춘천이나 충남 아산까지 수도권 전철을 이용해 이동이 가능해졌다. 기존 지하철 1~8호선을 포함해 19개의 노선이 수도권을 누빈다.
새로운 역이 생기면 자연히 투자가 이뤄진다.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대형마트와 문화시설이 생긴다. 이미 인근의 주택에는 집값이 뛸 것을 예상해 투자금이 몰린다. 그렇다면 역세권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얼마 전 한 포털사이트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제가 생각하는 역세권의 범위는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10분 만에 이동 가능한 곳. 10분 안쪽이면 초역세권, 10분 이상 걸리면 역 생활권·영향권’.
실제로 ‘역세권의 개발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 정의하는 역세권은 지하철역으로부터 반경 500m까지다. 성인여성의 빠른 걸음으로 10분 안팎의 거리다. 많은 아파트단지나 상가건물이 역세권임을 홍보하며 투자자를 현혹한다. 하지만 역세권이라는 분양광고를 보고 찾아갔는데 실제로는 마을버스를 타야 이동할 수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현대인의 주생활 루트가 버스보다 지하철 위주인 점은 부동산투자에서 핵심적인 요소”라며 “역세권을 볼 때 역에서 몇미터 떨어졌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유동인구 수”라고 말했다. 그는 “역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주변의 인프라를 누리는 생활권이나 영향권이 될 수 있지만 투자로서의 가치는 떨어진다”며 “강남역 역세권이 무조건 좋은 투자처가 아닌 것은 이런 이유”라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도 역세권이 집값과 상권에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손꼽히는 뉴욕과 홍콩 등지에서는 지하철역과 얼마만큼 가까운지에 따라 물가가 두배 이상 차이 나기도 한다. 호텔스닷컴에 따르면 같은 4성급을 놓고 볼 때 뉴욕 타임스스퀘어 42번가역에서 도보 5분 거리인 호텔과 10분 이상 걸리는 호텔의 하루 숙박비용은 1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실패한 역세권, 문제는 인프라
부동산시장에서 ‘길 뚫리면 돈 몰린다’는 공식은 대부분이 통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지하철역을 짓는다는 소식에 집값이 들썩였다가 이후 인프라가 늘지 않아 ‘죽은 도시’로 전락하기도 한다. 수리산역이 대표적이다.
수리산역은 산본신도시 개발과 인구유입으로 인해 산본에서 약 1.3㎞ 떨어진 곳에 지어졌다. 역 주변에 여러개의 아파트단지와 초·중·고교가 세워졌지만 종합병원, 대형마트, 영화관을 이용하려면 산본으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과 지하철 대신 마을버스 노선이 다양화되면서 인프라 건설이 멈췄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용산역세권 개발도 실패사례다. 용산역 일대를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는 사업이 무산되면서 인근 집값이 폭락했다. 용산지역 공인중개소에 따르면 전용면적 40㎡의 단독주택이 사업발표 후 최고 8억원에 거래됐으나 토지보상 문제로 사업이 중단되자 3억원대까지 내려앉았다.
박원갑 전문위원은 “역세권 개발이 장밋빛 계획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부동산시장에서 ‘3승 법칙’이라는 말이 있는데 개발 발표·착공·준공 등 3단계에 걸쳐 부동산이 상승한다는 의미다. 착공 이후 투자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또 지하철 노선이 2개 이상 지나는 더블역세권, 트리플역세권이라도 업무특화지구거나 기존의 상권으로 인해 투자가치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 여의도와 종로에 새로 지은 복합업무빌딩이다. 이 빌딩들은 초역세권임에도 공실률이 높은 편이다.
경기도 신도시의 한 공인중개소 대표는 “역세권이 절대적인 투자조건은 아니다”며 “지하철역 주변에 상권이 만들어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메인스트리트가 따로 있는 경우 가격이 정반대로 형성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3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