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로 눈을 가린 소녀가 냄새만 맡고 “네*치킨 스노윙치즈”라고 단번에 치킨명을 맞춰버린다. SBS 세대간 갈등 해소 예능프로그램 <동상이몽>에 출연한 일명 ‘치킨 소녀’는 총 14개 브랜드의 치킨을 눈을 가리고 후각과 미각만 이용해 모두 맞춰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치킨 소녀는 치킨에 대한 해박한 전문지식으로 대기업 치킨회사로부터 입사 제의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잘 배운 취미 하나가 직업이 되는 시대다. 치킨 소녀의 어머니가 딸이 판검사 같은 전문직종에 종사했으면 좋겠다고 하자 동상이몽 진행자인 유재석은 “따님이 이미 치킨 판검사”라고 치켜세웠다. 결코 전통적인 전문직종은 아니지만 한 분야에 이 정도 정통하면 충분히 능력자라고 인정할 만한 것이다.
◆덕후, ‘마니아’에서 ‘전문가’로
예전에는 공부 외에 다른 곳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환영받지 못했다. 먹고 살기 바빴던 부모님 세대의 젊은 시절에 취미는 사치였다. 자신에게 맞는 취미를 찾을 만한 여력이 없었고 관심사가 있더라도 접어두고 생업에 뛰어들기 바빴다.
이후 경제가 성장세를 보이던 80~90년대에는 마음만 먹으면 공장이든 회사든 어디라도 취직을 할 수 있었고 일을 하면 다들 비슷하게 먹고 살 수 있었다. 굳이 각자의 개성을 살리는 것보다 남들처럼 공부하거나 취직해서 돈 버는 것이 정도처럼 느껴졌다. 관심분야에 대한 뜻을 펼쳐보겠다고 하면 대다수 부모가 평범하게 성공하는 길을 택하라고 말리곤 했다.
하지만 성장궤도에 올라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서는 성공하기 쉽지 않다. 오히려 남들과 다른 경쟁력을 지녀야 살아남을 수 있다. 공부나 운동 등 전통적으로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알려진 분야보다 치킨, 레고, 신발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우위를 나타내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
한 분야에 대한 집요한 관심을 전문성으로 승화시켜주는 데 이바지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MBC <능력자들>이다. 능력자들은 사람들의 잠자고 있던 ‘덕심(心)’을 일깨우고 새로운 ‘덕후 문화’를 만드는 취향 존중 프로그램이다. 한마디로 취미에 빠진 덕후들을 장려하는 프로그램이다.
덕후란 일본어 오타쿠의 한국어 표현으로 하나의 콘텐츠를 매우 좋아하는 이들을 일컫는 인터넷 신조어다. 과거엔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됐다. 취미생활에 빠져서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고 사교성도 결여됐을 것이란 편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특정 분야에 대해 단순히 마니아 수준을 넘어선 전문가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발전했다.
최연소 덕후로 출연했던 16살 ‘소방서 덕후’는 전국 소방서 외관만 보고 어디인지 맞췄으며 지역마다 다른 출동 벨소리까지 흉내냈다. 관심분야인 소방서에 대한 지식을 살려 앞으로 소방관의 꿈을 꾸며 소방 관련 백과사전을 내고 싶다고 밝혔다.
◆‘금테크’보다 ‘레고테크’
취미를 직업으로 도전하기가 쉽지 않게 느껴진다면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블로그,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도 된다. 대다수 여성의 관심사인 메이크업을 개인 블로그에 취미로 올리다가 전문적인 분야를 개척한 사람도 많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포니(박혜민)는 2008년부터 뷰티블로그와 함께 유튜브 영상으로 메이크업 강의를 하며 10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기록했다. 가수 씨엘의 메이크업 변신을 시켜준 주인공으로 화장품업계에서도 눈도장을 찍더니 최근 화장품브랜드 ‘포니이펙트’(PONY EFFECT)까지 론칭했다.
단순히 관심 분야에 취직하거나 사업을 펼치는 것을 넘어 덕후의 활동방향은 무궁무진하다. 최근에는 취미생활을 재테크의 수단으로 삼는 사람도 늘고 있다. 금으로 재테크를 하는 것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올린다고 눈길을 끌었던 분야가 바로 ‘레고 재테크’다.
영국 언론사 텔레그래프는 지난 15년간 한정판 레고 블록 세트의 중고가격 상승률과 금 투자 수익률을 비교해 레고가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2000년 기준으로 은행에 저축을 하면 약 2.8%, 금 투자는 약 9.6%의 연평균 수익률을 거둔 반면 절판된 레고세트에 투자한 사람은 약 12%의 연평균 수익률을 올렸다고 밝혔다. 꽤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레고 재테크가 가능한 이유는 레고를 제작하는 덴마크 본사에서 시리즈를 한번 출시한 후 2~3년이 지나면 생산을 중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기 레고 시리즈는 단종 후 중고시장에서 가격이 크게 상승해 거래가 이뤄진다. 특히나 레고 덕후들이 세계적인 시장을 형성해 신제품 가격보다 4~5배 이상 상승하는 경우도 생긴다.
현재까지 가장 높은 금액으로 거래됐던 레고는 2007년 출시된 ‘스타워즈 밀레니엄 팰컨호’다.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두터운 마니아층과 레고 덕후의 시너지가 합쳐져 60만원대의 스타워즈 밀레니엄 펠컨호는 8배까지 가격이 상승하기도 했다.
‘금테크’보다 ‘레고테크’라는 말에 솔깃한 독자들을 위한 텔레그래프의 팁을 몇가지 전한다. 레고테크를 하려면 박스 그대로 보관을 잘 해야 거래가 잘 된다. 특히나 한정판·특별판은 중고시장에서 인기가 높으니 보기 드문 레고세트를 찾아야 한다. 기왕이면 단순한 구성으로 이뤄진 2000년 이전 제품보단 좀 더 재미있게 제작된 2000년 이후 제품에 관심을 두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