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검찰 수사가 비선실세 최순실씨 측에 돈을 건넨 기업들로 확대되고 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제기된 모든 의혹을 수사한다’는 방침 하에 이미 관련된 재계 인사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소환 조사를 시작했다. 대기업에서 적잖은 돈이 최씨 측으로 건너갔고,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대기업 총수를 만나 최씨 관련 재단이나 사업에 대한 투자를 주문한 정황이 포착돼 총수까지 직·간접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권오준 회장 소환, 대기업 총수 줄소환 예고


권오준 포스코그룹 회장은 지난 11일 대기업 총수 가운데 처음으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포스코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49억원 출연 및 최씨 측근 차은택씨의 광고계열사 포레카 강탈 개입 의혹 등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권 회장 소환에 앞서 정모 포스코 전무, 최모 포스코 부사장을 먼저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지난 8~10일에는 ▲박모 현대자동차 부사장 ▲이모 LG 부사장 ▲조모 CJ 부사장 ▲신모 한화 상무 ▲박모 SK 전무 ▲김모 전 한진 전무 ▲서모 금호아시아나 사장 ▲김모 부영 사장 ▲안모 LS 전무 등도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현대차는 128억원, LG는 78억원, CJ는 13억원, 한화는 25억원, SK는 111억원, 한진은 10억원, 금호아시아나는 7억원, 부영은 3억원, LS는 16억원을 각각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했다.

이들 대부분은 검찰 조사에서 “좋은 취지로 추진하는 공익성 사업에 자발적으로 돈을 냈고 대가성 등은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대기업이 거액을 최씨 측에 건넨 것에 대한 대가성 여부 등을 규명하기 위해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등 7명의 대기업 총수에 대해서도 소환 조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 최순실씨(왼쪽)와 그의 최측근 차은택씨. /사진=뉴스1

특히 이번 게이트와 관련해 직격탄을 맞고 있는 삼성은 두 재단에 가장 많은 금액(204억원)을 지원한 것과 별도로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맞춤형 지원을 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은 최씨 모녀가 독일에 설립한 비덱스포츠에 지난해 9~10월 삼성 자금 280만유로(약 35억원)가 전해진 사실을 확인했다. 이 돈은 명목상 컨설팅 비용으로 지원됐지만 실제로는 정씨 전용 말 ‘비타나V’를 사는 등 정씨를 위해서만 사용됐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에 따라 검찰은 지난 8일 삼성 서초사옥에 있는 장충기 미래전략실 사장,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부문 사장,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 집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됐다. 장충기 사장은 삼성그룹의 바깥일을 책임지고 있고 박상진 사장과 황성수 전무는 지난해 3월부터 정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한승마협회 회장과 부회장을 맡고 있다.

◆고위 임원 발뺌에도 정황 증거 수두룩

부영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내세운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70억~80억원을 추가로 내라는 요구를 받고, 이중근 회장이 협조하는 대신 세무조사에 대한 편의를 봐달라는 취지의 대가를 요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논의는 결국 조건부 투자는 받지 말라는 최씨의 지시에 따라 실제 투자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부영 측은 “이중근 회장이 K스포츠재단 관계자를 만난 것은 맞지만 안 전 수석을 만난 사실은 없다”며 “세무조사 관련 편의를 봐달라는 제안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최근까지 총수일가의 총체적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 수사를 받은 롯데그룹도 이번 게이트에서 자유롭지 않다. 롯데는 두 재단에 총 45억원을 출연했으며 추가로 건넨 70억원은 롯데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전날 돌려받았다.

당시 K스포츠재단 관계자가 소진세 롯데그룹 정책본부 대회협력단장(사장)을 만나 추가 기금 출연을 요구했고 롯데는 돈을 전달했다가 뒤늦게 돌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정황상 검찰 수사 무마를 목적으로 롯데 측이 최순실 측에 돈을 냈는데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없게 되자 최순실 측이 돈을 돌려준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반면 CJ그룹은 최씨 측에 밉보여 피해를 본 대기업으로 거론된다. CJ그룹은 현 정권이 출범한 직후인 2013년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를 받았고, 결국 이재현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상고를 진행하던 이 회장은 올해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대기업 총수가 포함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상고를 포기했고, 실제 특사로 풀려났다.

하지만 이 회장을 대신해 경영을 이끌었던 이미경 부회장은 청와대의 압력을 받고 2014년 갑자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떠난 뒤 현재까지 복귀하지 않고 있다. 또 손경식 회장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 사퇴도 청와대를 압세운 최씨 측 작품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이와 관련 이 부회장 체제에서 CJ가 운영하거나 투자한 TV채널·영화 등 콘텐츠에서 박 대통령을 희화화 하거나 야당 측 대선주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듯한 행보를 보인 것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는 얘기가 나온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았다가 지난 5월 갑자기 해임된 조양호 한진 회장도 최씨에 얽힌 희생자 중 한명으로 꼽힌다. 최씨가 자신의 회사 더블루케이를 내세워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다양한 이권을 챙기려다 조 회장이 받아들이지 않자 실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재계 관계자는 “서슬 퍼런 최고 권력(청와대)을 앞세운 최씨의 요청을 대기업이 거부하기는 힘들다”며 “대가를 바란 지원이 아니라 거절 시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어 거액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