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산업은 21세기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생명공학분야 대표산업이다. 글로벌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1400조원(한국제약협회 추정)으로 자동차·조선·반도체보다 크다. 특히 인류의 건강·생명·보건 향상에 필수적인 산업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 속에서 가파른 성장이 기대된다. 하지만 전문지식이 필요한 산업인 데다 의사와 약사가 주요 영업·마케팅 대상이어서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분야로 손꼽힌다.

이런 가운데 미래 제약맨을 꿈꾸는 이들에게 입문서 역할을 할 책이 최근 출간됐다.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출신으로 글로벌제약사 한국얀센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레킷벤키저를 거쳐 이니스트바이오제약에 몸담고 있는 고기현 이사가 13년간의 현장 경험을 녹여 쓴 <제약회사 핫 트렌드>를 지난해 12월 선보인 것. 통상적인 약사의 삶을 벗어난 길을 걸어온 고 이사를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기현 이니스트바이오제약 이사. /사진=허주열 기자

◆쉬운 길 마다한 도전

제약영업은 수많은 영업 관련 직종 중에서도 자동차·보험영업과 함께 가장 힘든 3대 영업직군으로 불린다. 의약품 선택권을 독점한 의사에게 공들여 영업을 하더라도 처방전에 해당 의약품을 쓰지 않았다고 항변할 수 없고, 다른 영업과 달리 영업의 대상이 영업사원보다 전문가인 독특한 분야여서다. 이처럼 쉽지 않은 길에 고 이사가 약사나 제약사 연구원이라는 비교적 편한 길을 마다하고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 재학시절 신문을 읽다 삼성전자 임원 중 절반 이상이 영업·마케팅 출신이라는 내용을 읽었어요. 앞으로 회사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사람은 현장을 잘 아는 현장전문가가 될 것이라는 게 기사의 전체 맥락이었죠. 약국을 운영하거나 제약사에 연구원으로 들어가는 통상적 길이 있었지만 그 기사를 읽고 제약업의 현장전문가가 되자는 생각을 굳혔어요.”


고 이사는 대학 졸업 후 한국얀센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8년가량 재직하며 영업과 전문의약품(ETC) 마케팅을 담당했다. 제약영업 2년차에 최고 제약영업 담당자에게 주는 ‘스타 어워드’를 받은 그는 ETC 마케팅팀으로 옮겨 3년 연속 영업사원이 뽑은 ‘올해의 마케팅 PM(프로젝트 매니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TC분야의 경험을 충분히 했다고 느낀 고 이사는 영국의 종합생활용품업체 레킷벤키저 마케팅부 헬스케어팀 매니저로 자리를 옮겨 제약업의 또 다른 축인 일반의약품(OTC)분야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ETC와 OTC 분야를 두루 경함한 뒤에는 두사업을 총괄하는 일을 하고자 다시 이직을 결심, 한창 성장하는 회사인 이니스트바이오제약에 둥지를 틀었다.

“레킷벤키저에서 이직을 결심할 당시 상위제약사로부터 러브콜이 있었지만 기존 시스템에 들어가기보다 저의 역할이 더 클 것 같은 신생기업으로 가는 게 개인적 성장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제 삶의 전환기마다 새롭고 혁신적인 것에 도전하자는 생각을 했고 저 자신을 더 높은 경지로 이끌기 위해 이니스트바이오제약을 택했죠.”


고 이사의 선택에는 작은 약품유통기업에서 시작해 원료의약품 제조, 나아가 완제의약품까지 생산하는 업체로 영역을 넓히며 꾸준히 회사를 성장시킨 김국현 대표의 경영능력과 비전도 작용했다고 한다.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이 회사는 올해 50% 이상 성장한 1500억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39세의 젊은 나이에 임원이 된 만큼 처음에는 부담감도 적지 않았다. 고 이사보다 나이가 많은 부하직원도 있고 그간 배운 것을 생생하게 평가받는 위치에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회사의 기대치를 달성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 현재의 일을 즐긴다고 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 실천

이처럼 본인의 능력을 키우는 데도 바빠 보이는 그가 제약산업 전반을 다룬 책까지 펴낸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책을 펴내기 위해 많은 업계 관계자를 만나 조언을 듣고 공부하며 대중이 쉽게 제약산업을 이해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본인에게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을 실감한 그는 앞으로도 2~3년마다 한번씩 제약산업 관련 책을 출간하는 게 목표라는 말도 덧붙였다. 

고 이사가 쓴 <제약회사 핫 트렌드>는 제약산업을 움직이는 10개의 키워드를 정리한 책이다. 그는 현재 제약산업을 움직이는 10대 트렌드로 ‘MONKEY BARS’를 꼽았다. 이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지은 <트렌드 코리아 2016>에서 인용한 단어다. 

▲M은 모바일 시대 ▲O는 환자중심시대(Over the Pill) ▲N은 신약 패러다임 변화(New Indication) ▲K는 제약브랜드 마케팅(Keeping the Brands) ▲E는 여성 주목(EVEolution, 여성+진화 합성어) ▲Y는 사업다각화(Year for Business Diversification) ▲B는 바이오 의약품과 백신이 미래 먹거리(Biomedicine&Vaccine) ▲A는 다른 제약회사와의 전략적 제휴(Associated with Other Company) ▲R은 연구개발(R&D) ▲S는 선샤인법(Sunshine Act)을 의미한다.

이 중에서도 그는 CP(Compliance Program, 공정거래 자율준수프로그램)규정 강화와 사업다각화를 최근 제약산업의 두드러진 트렌드로 꼽았다.

“이미 리베이트 쌍벌제와 투아웃제 등 강력한 불법 리베이트 금지법이 시행됐지만 최근에도 리베이트 문제로 홍역을 치르는 회사가 나오고 있어요. 처벌 일변도의 정책보다는 어차피 쓸 돈을 밝은 곳에서 사용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는데 이런 측면에서 각 제약사들이 자체적으로 CP규정을 강화하고 있죠.”

고 이사는 제약업계의 사업다각화 트렌드를 소개하며 간극이 있는 R&D(연구개발) 확대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회사의 상황에 맞는 운명적 사업포트폴리오가 있다”며 “한미약품처럼 신약 개발 강점이 뚜렷한 상위제약사는 신약 R&D 위주로 투자를 늘리는 게 맞고, 규모가 작은 회사는 R&D투자비용 마련을 위해 사업다각화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고 이사는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제약업계의 핵심 인력인 영업사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약영업은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전망이 없다”며 “기존 의사·약사 지향적 영업·마케팅에서 눈을 돌려 환자를 통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마케팅 기법을 개발하고 공유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설합본호(제472호·제47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