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에 드리운 먹구름이 짙어졌다. 수조원의 혈세를 쏟은 대우조선해양과 금호타이어, 대우건설의 회생작업에 난항을 겪고 있어서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원칙 아래 기업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하지만 갈피를 못 잡는 모양새다. 대선정국으로 정치권이 혼란한 상황에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까지 뒤섞여 산은의 정책금융이 흔들리고 있다. 창립 63주년을 맞은 산은이 구조조정의 늪에서 탈출할 해법은 무엇일까.


산업은행본점. /사진제공=산업은행

◆꼬인 구조조정, 원칙부터 세워야
산은의 위기는 자회사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친 데서 시작됐다. 산은은 2000년부터 대우조선에 세차례 공적자금을 지원했다. 이후 또다시 2조9000억원의 직접투자, 2조원대의 출자전환 등 총 5조원가량을 새로 투입할 계획이다.

현재 금융당국은 대우조선 회사채 3900억원(28.9%)을 보유한 국민연금에 채무재조정을 요청했다. 대우조선의 재무현황과 유동성 전망, 경영개선 계획, 채무 재조정의 적정성, 법률적 위험 등을 검토해 회사채 만기를 조정해달라는 취지다.


오는 17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대우조선 사채권자 집회에서 채무조정 여부를 결정한다. 국민연금이 합의할 경우 다른 기관 투자자들도 회사채 만기연장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부실기업 회생에 국민 노후자금을 사용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국민연금과 산은의 갈등이 예상된다.

금융전문가들은 한계기업 구조조정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기업구조조정의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먼저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 연합자산관리(유암코)의 기능을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2015년 부실채권(NPL)을 관리해온 유암코를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로 확대 개편했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엔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다. 기껏해야 100억~2000억원대의 중소·중견기업 구조조정에만 손을 댄 정도다.


미국처럼 재무적투자자(FI)인 사모펀드(PEF)가 기업의 선제적·사전적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방법도 대안으로 꼽힌다. 정부나 정치권이 구조조정에 개입하지 않고 PEF가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제도보완이 필요한 것이다.

다만 PEF는 기업자산 인수자금을 은행과 증권사에서 조달한다. 자칫 금융회사가 새로운 부실채권을 떠안을 수 있는 셈이다. 따라서 해외 IR(투자설명회) 등 PEF가 자산을 매각할 수 있는 해외시장으로 출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국책은행 수장의 리더십도 요구된다. 산은은 정부가 주인이므로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수장이 확고한 원칙을 세워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낙하산인사방지법이 발의된 국책은행의 인사도 독립성이 요구된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비롯해 역대 회장들은 모두 외부인사였고 대우조선 등 자회사에 퇴직임원들이 주요 관직을 꿰차고 있어서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은이 정치권의 입김에서 벗어나 부실기업을 파악하고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리더십을 먼저 구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82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