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N캡의 보행자 대상 AEB 테스트 장면. /사진= 유로N캡 홈페이지 캡처
자동차 안전도의 기준이 달라지는 추세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튼튼한 차체와 안전장치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운전자를 얼마나 지켜줄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따졌지만 최근에는 사고 자체를 방지하는 ‘첨단기술’의 도입 여부를 따진다.
사고를 방지하는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는 가운데 자동긴급제동장치(Autonomous Emergency Braking‧AEB)를 비롯한 여러 첨단기술들이 소비자에게 가까워졌다. 특히 일부 고급차종에만 적용되던 AEB 기술은 최근 기아차의 경차 ‘모닝’에 탑재되며 대중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 안전장비 인정받는 AEB
AEB는 최근에야 소비자에게 익숙해진 옵션이지만 그 역사는 이미 10년이 넘었다. 자동차 안전을 선도하는 브랜드 볼보가 2006년 개발을 완료해 2008년 XC60에 적용한 ‘시티 세이프’가 원조다.
볼보는 자동차 충돌사고의 75% 이상이 시속 30㎞ 이하 속도에서 발생하며 대부분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한 것이라는 교통사고 통계를 바탕으로 이 시스템을 개발해냈다. 초기의 시티 세이프는 15~30㎞ 구간에서 앞차와의 거리가 짧아지면 이를 인식해 브레이크 압력을 조절, 급제동이 될수 있도록 준비하고, 앞차와 충돌이 예상되는 데도 운전자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바로 브레이크 유압펌프를 작동해 차량을 자동으로 멈추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유로N캡의 성인 보행자 대상 AEB시험 개요. /사진=유로N캡 홈페이지 캡처
볼보의 시티 세이프를 시작으로 많은 자동차업체들이 AEB 연구에 몰두했고 이 기술은 현재 시속 60㎞를 상회하는 속도에서 어린이 보행자를 대상으로 성공적으로 작동할 만큼 발전을 거듭했다.
실제로 AEB가 교통사고를 줄인다는 연구결과는 수없이 발표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자동긴급제동장치(AEBS) 장착 시 사고율과 부상자수가 각각 25%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최근 5년간(2011~2015년) 삼성화재에 가입한 동일 차종 총 6만3829대에서 AEBS 장착된 차(1만1478대)와 장착되지 않은 차(5만2351대)간 사고발생률을 분석한 결과다.
하지만 이 기술이 ‘안전사양’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걸렸다. “사고 예방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렸다”는 자동차 안전에 대한 인식을 뛰어넘지 못해서다. 안전사양으로 인식돼야만 의무화의 가능성이 열리고 보험료 감면 등 경제적 인센티브의 근거가 되므로 편의사양으로 인식되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확산에 한계가 있다.
유로N캡(위)과 IIHS의 안전성 평가 기준. /사진= 각 기관 홈페이지 캡처
최근 들어 AEB는 교통사고를 경감시킨다는 여러 연구를 토대로 안전장치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추세다. 지난 2014년 유로N캡은 AEB와 같은 충돌회피장치를 기본 장착한 모델에 대해서만 최우수 등급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어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충돌예방성능을 가져야만 탑세이프티픽플러스(TSP+) 등급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 전차종 의무화 될까
여기서 더 나아가 조만간 AEB는 의무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리나라 국토교통부는 올해부터 신규 출시되는 대형 승합차(11m 이상), 대형 화물차 및 특수차(총중량 20톤 초과)에 AEB를 의무 장착하도록 했다. 내년부터는 승용차를 제외한 모든 승합차(경형 제외)와 3.5톤 초과 화물차, 특수차에도 의무장착해야 한다.
미국도 오는 2022년까지 승용차를 포함한 3.8톤 이하의 모든 차량에 AEB를 기본장착하기로 20여개 자동차 업체와 협의했다.
박원필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교통사고의 대부분은 운전자 부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만큼 실수로 인한 사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승용차까지 ‘자동긴급제동장치(AEB)’ 장착 의무화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NCAP의 사고예방안전성 평가기준에는 능동적 개입이 포함되지 않았다. /사진=KNCAP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AEB에는 다양한 기술이 복합적으로 적용되고 장치에 따른 성능차이가 큰 만큼 단순히 장착을 의무화하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AEB는 레이더와 라이다, 카메라 등 다양한 센서를 통해 장애물을 인식하는데, 각 부품의 성능에 따라 인식률이 현격히 차이나서다. 또 센서를 통해 정보를 수집, 제동장치를 작동시키는 시스템 알고리즘에서도 기술력 차이가 업체마다 천차만별인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AEB로 통칭하지만 브랜드와 세부 모델에 따라 장착 비용과 성능은 확연히 다르다”며 “단순히 의무화할 경우 자동차 업체들이 기술발전을 등한시하고 원가절감에만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기술 발전에 따른 세부적 가이드라인과 평가기준을 마련해 등급별로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정책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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