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진은 양승태 대법원장. /사진=임한별 기자
양승태 대법원장은 22일 자신의 6년 임기를 마무리하며 "정치적인 세력 등의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뤄 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 대법원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 본관 1층 대강당에서 진행된 퇴임식에서 "법관 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제도로서, 법관에게는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재판의 독립을 지켜야 할 헌법적인 의무와 책임이 있을 따름"이라며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그릇된 풍조로 인해, 재판 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다르기만 하면 극언을 마다 않는 도를 넘은 비난이 다반사로 일고 있고, 폭력에 가까운 집단적인 공격조차 빈발하고 있다"며 "모든 사람을 우리 편 아니면 상대편으로 일률적으로 줄 세워 재단하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만연하고, 자신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강변하면서 다른 쪽의 논리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진영 논리의 병폐가 사회 곳곳을 물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의 사법 체계는 사법부의 독립이 민주체제를 유지하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 것인지를 역대 헌정사를 통해 절실히 인식하고 만들어낸 역사와 경험의 산물"이라며 "법관이 헌법적 책무를 깊이 인식하고 법의 정신에 따른 슬기로운 균형 감각과 의연한 기개로써 지혜와 희생 정신을 발휘할 때 사법은 비로소 국민의 굳건한 신뢰 위에 서서 그 소중한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양 대법원장은 "국가 권력의 한 축인 사법부의 행정을 총괄하는 일은 단 하루도 마음 놓을 수 없는 가시밭길이었던 것 같다"며 "노력에 대한 국민의 따뜻한 격려가 들려오거나 가시적인 결실을 맺었을 때 뿌듯한 보람을 느끼기도 했고, 예기치 않은 일로 법원에 따가운 시선이 쏟아질 때에는 공든 탑이 무너지는 듯한 허탈감을 겪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조오현 스님의 시인 '고목 소리'(한 그루 늙은 나무도/고목 소리 들을라면//속은 으레껏 썩고/곧은 가지들은 다 부러져야//그 물론 굽은 등걸에/장돌들도 남아 알아야)를 인용하며 "제가 그저 오래된 법관에 그치지 않고 온 몸과 마음이 상처에 싸여있는 고목 같은 법관이 될 수 있다면 더 없는 영광과 행복으로 여기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양 대법원장은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1년 9월25일 취임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최초로 생중계하고, 하급심 주요 사건도 생중계가 가능하도록 규칙을 개정하는 등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과도한 사법 행정권 사용과 수직적 조직 문화로 사법부를 관료화시켰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올해 초에는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학술 활동을 간섭하고 부당한 압력을 집어넣은 이른바 '사법 행정권 남용 사태'가 불거졌다.
양 대법원장의 임기는 오는 24일까지지만 23~24일이 주말인 점을 고려해 이날 퇴임식을 진행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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