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층이 많이 거주하는 서울 강서구 9호선 마곡나루역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모여있다. /사진=강수지 기자
“공인중개사의 평균 소득은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칩니다.”

김광호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사무총장은 지난 8월 17일 국토교통부와 국토연구원이 주최한 ‘부동산 중개보수 및 중개서비스 개선방안’ 온라인(유뷰브) 토론회에서 “11만 개업 중개사 가운데 55%가 간이과세자(연매출 8000만원 미만 개인사업자)”라며 “소득으로 보면 연 1500만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4인 가족 최저 생계비가 월 290만원, 연 3500만원인 점을 감안할 때 공인중개사들은 살 수 없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국토부가 올 2월부터 진행한 TF(태스크포스) 회의와 토론회 결과를 토대로 ‘부동산 중개보수 및 중개서비스 개선방안’을 8월 20일 확정·발표하자 중개사 단체의 항의와 반발이 빗발치고 있다. 중개보수 인하 요구는 과거 오래전부터 케케묵은 논쟁거리였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비용 증가를 주장하는 주택거래자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본격 논의가 시작됐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설문조사 결과 중개보수가 지나치게 높다는 여론이 53.0%였다.

이번 개선안은 거래 건수·비중이 급증한 매매가격 6억원 이상, 임대차가격 3억원 이상 중개보수에 대해 상한 요율을 인하하는 게 골자다. 정부는 빠르면 올 10월 이 같은 내용의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을 적용할 계획이다.
교통, 직주근접 등 이유로 신혼부부, 사회초년생 등 청년들에게 선호도가 높은 편인 서울 강서구 9호선 염창역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모여있다. /사진=강수지 기자
1건 거래에 복비 수천만원… "연 5억 버는 중개사도 있다"
매매계약은 2억원 미만 구간에서 현행 보수 상한 요율을 유지하되 6억~9억원은 0.5%에서 0.4%로 낮춘다. 9억원 이상 거래는 일률적으로 0.9%였던 상한 요율을 ▲9억~12억원 0.5% ▲12억~15억원 0.6% ▲15억원 이상 0.7% 등으로 세분화한다. 전체적으로 상한 요율이 낮아지지만 평균 집값이 오른 점을 고려해 고가주택 기준을 높게 설정했다. 임대차계약은 1억원 미만 구간만 현행 상한 요율을 유지하고 3억~6억원의 경우 0.4%에서 0.3%로 낮춘다. 6억원 이상부터 0.8%인 상한 요율을 ▲6억~12억원 0.4% ▲12억~15억원 0.5% ▲15억원 이상 0.6% 등으로 차등 적용한다.
서울의 한 부동산법인 대표 A씨는 “서울의 경우 이미 평균 아파트값이 9억원을 넘은 지 오래된 관계로 최고 보수율을 적용하는 주택 기준이 9억원에서 더 올라가더라도 중개사 소득을 보전하는 상쇄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주택 거래에서 중개보수 상한 요율이 현행대로 유지되는 6억원 미만 비중은 전체의 85.8%를 차지했다. 9억원 미만 거래까지 확대하면 94.7%에 달한다.


A씨는 협회가 주장하는 공인중개사 소득 문제에 대해 “지역차가 크고 아파트, 원·투룸 등 주로 주택만 중개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상가, 빌딩, 토지 등도 다루는 사무소가 있어 평균을 내기가 어렵다”며 “서울 강남·마포·노원 등은 거래가 늘고 가격도 상승해 연 매출 4억~5억원 가량 되는 중개업소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지 내 1층 상가에 사무소가 있는 경우 임대료가 비싸 연 1억원 이상의 비용을 지출해도 순이익 3억~4억원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주택 거래가 없을 땐 매출 자체가 임대료도 내지 못할 정도여서 폐업하는 경우도 있다”면서도 “현재와 같이 아파트값이 급등한데다 거래마저 늘어난 시기엔 표정관리하며 실제 소득을 숨기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다만 모든 공인중개사가 고소득을 올리는 건 아니라는 게 업계 주장이다. 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국 공인중개사 개업은 9302건으로 폐업은 5822건, 휴업은 421건으로 각각 집계됐다. 개업 못지 않게 문을 닫는 중개업소도 적잖은 것이다. 이처럼 연간 폐업 사무소가 1만개를 넘는 상황에서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려는 수요는 점점 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지난 8월 13일 접수 마감한 32회 공인중개사 시험에는 40만8492명이 몰려 1983년 제도 도입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인기는 고가아파트를 1년에 4~5건만 중개해도 대기업 연봉에 견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고가주택이 밀집한 강남구를 예로 들면 최근 3개월 평균 실거래가는 15억4000만원으로 현행 최고 요율(0.9%)을 적용할 경우 매도인·매수인이 각각 최대 1386만원의 수수료를 낸다. 양쪽 모두로부터 수수료를 받으면 1건의 거래로 중개사가 챙기는 보수가 2772만원에 달한다. 분기당 이 같은 거래를 한 건씩만 성사시켜도 연간 1억원이 훌쩍 넘는 수수료를 챙길 수 있는 셈이다.
젊은 층이 많이 거주하는 서울 강서구 9호선 마곡나루역 인근에 빌라들이 모여있다. /사진=강수지 기자
주택거래자 “복비 내려도 비싸다”
정부의 이 같은 중개수수료 인하 조치에도 주택거래자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최근 신혼집을 매매 계약했다는 B씨는 “중개수수료 상한 요율은 말 그대로 ‘상한’이어서 중개업소에 협의를 요청할 수 있지만 실제론 잘 받아주지 않는다”며 “낮아진 수수료가 적용되는 10월로 계약을 미뤄야 했나라는 후회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 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올 6월 처음으로 10억원을 넘어 7월 기준 10억2500만원을 기록했다. 개선안은 서울 10억원 아파트를 거래할 때 중개보수가 기존 9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반값 가까이 줄어든다.

직장인 C씨는 “500만원이란 돈이 보통 회사원 월급보다 많은 금액이기도 하지만 단지 가격의 문제를 넘어 최근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많은 정보가 공개되는 것을 감안할 때 집만 보여주는 값이 그 정도 한다는 데는 동의하기가 어렵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