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세계닭집. 사진은 세계닭집의 부추마늘간장닭강정과 닭갈비볶음밥. /사진=다이어리알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은 1930년대 방직 공장이 들어서며 마을이 형성된 곳이다. 1970~1980년대에는 대표적인 철강 공업 단지로서 호황을 누렸다. 1990년대 이후 쇠퇴기를 맞아 골목을 가득 채웠던 금속 제련 소리가 잦아들고 생기를 잃었다.
그러던 중 저렴한 작업 공간을 찾아 헤매던 예술가들이 하나둘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칙칙했던 문래동의 시멘트벽은 예술가의 캔버스가 됐고 낡은 시설물은 근사한 오브제로 되살아났다. 문래동의 모습은 철공소 대규모 이전 계획을 시작으로 또 한 번 달라질 전망이다. 노동자들의 일터로서 수십년 세월의 흔적들이 머물러 있는 현재의 문래동을 기억해야 할 때다.

◆세계닭집
세계닭집의 대표 메뉴는 닭강정으로 달콤마늘양념 등 4가지 맛을 선택할 수 있다. /사진=다이어리알
문래동의 외식 상권은 문래창작촌 인근의 문래공원 사거리를 기점으로 나뉜다. 창작촌과 문래동 사거리까지를 잇는 지역은 보다 활성화된 골목 상권의 형태를 이룬다. 음식점이 즐비하고 건너편 철공소 밀집 지역 사이사이로는 음식점과 카페들이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문래동 골목엔 현재도 가동 중인 철공소의 엔지니어들이 뿜어내는 용접 불꽃이 보이고 쇠망치 소리가 들린다. 가장 큰 특징이자 볼거리는 이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고 휴식공간 역할을 하는 오래된 백반·실비집 그리고 예술가·청년 창업가가 공존하는 풍경이다.
나지막한 집들과 협소한 골목길이 오밀조밀 이어진 문래동 거리 안쪽엔 레트로풍 간판을 내건 세계닭집이 있다. 그 자리에 오랜 세월 머물러 있었을 법한 노포의 풍모가 역력하다. 매장에 들어서면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투박하게 박스테이프로 붙인 메뉴판이 있다. 주류회사 포스터들이 어지럽게 붙어있는 벽면, 골동품 상점에 있을 법한 벽시계, 구조물이 그대로 보이는 빛바랜 천장 등이 있다. 이 모든 하드웨어는 콘셉트로 구현된 것이다.


골목의 터줏대감 주인장이 이곳에 얽힌 옛날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지만 이곳을 이끌고 있는 장본인은 외식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주역들이다. 세계닭집은 핫플레이스를 점령한 버거 브랜드 다운타우너와 도넛 브랜드 노티드로 유명한 외식 기업 GFFG 출신의 세 동료가 합심해 오픈한 공간이다. 이들의 공통된 취향의 접점이었던 노포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린 공간 콘셉트와 이에 상응하는 친숙하고 내공 있는 맛, 문래동 상권을 일부러 찾아오는 젊은 고객층이 원하는 특별한 개성을 더해 일상 속에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닭강정을 주력 메뉴로 선보인다. 한국인의 소울 푸드인 치킨을 한 입 거리 음식으로 즐길 수 있으면서도 다양한 양념, 식재료의 응용이 가능한 닭강정이 지닌 경쟁력을 본 것이다. 특히 밤 문화가 발달한 문래동 특성을 고려해 다양한 종류의 치킨 요리와 안주를 부담 없이 맛볼 수 있도록 메뉴를 구성했다.

대표 메뉴인 닭강정은 4가지 맛을 선택할 수 있다. 달콤한 양념 닭강정과 크리스피 어니언을 조합한 달콤마늘양념과 크리미한 어니언 소스와 청양고추의 알싸함을 담은 청양크림어니언, 매콤달콤 중독성 있는 양념과 쪽파의 은은한 매콤함을 느낄 수 있는 매운쪽파양념, 살짝 매콤한 마늘간장 소스에 싱그러운 부추 무침을 듬뿍 올려낸 부추마늘간장은 각각의 존재감이 확실한 메뉴다. 다른 닭강정 양념과 곁들임에 한식의 요소가 충분히 가미돼 남녀노소 취향에 구애를 받지 않으면서도 다양하게 주어진 선택지는 젊은 세대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전 메뉴는 '반반' 선택이 가능해 맛을 조합해 즐길 수 있다. 닭강정과 오코노미야키를 결합한 이색 메뉴 '꼬꼬노미야끼'와 근본의 맛을 추구하는 이들을 위한 순후추 시즈닝의 후라이드, 꼬들한 식감과 바삭한 튀김옷 그리고 채소 무침과 어울리는 닭똥집 튀김 등도 닭강정에 버금가는 술친구들이다. 치킨의 영원한 파트너 맥주를 비롯해 트렌드에 부합하는 다양한 하이볼 메뉴와 양주와 맥주를 혼합한 '양맥', 증류주와 맥주를 혼합한 '증류 소맥' 등 잔술은 문래동의 밤을 붙잡는다.

◆영일분식
영일분식의 칼비빔국수. /사진=다이어리알
영일분식은 50년 넘는 세월 동안 철공소 골목을 지나는 이들의 든든한 한 끼 식사를 책임져 온 곳이다. 대표 메뉴는 칼비비빔국수로 투박하게 뽑은 칼국수 면을 새콤달콤한 비빔장과 아삭한 채소를 무친 음식이다. 평범한 듯하지만 시원한 양념 맛이 특별하다. 방송으로 유명세를 탄 이후 일부러 찾는 고객들도 상당수로 매장 한편에서 쉴 새 없이 면을 삶아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곁들임으로 내어주는 메밀 만두는 꼭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푸짐한 양과 착한 가격이 특징이다.
◆냐옹지마
냐옹지마의 코스 메뉴에 제공되는 음식. /사진=다이어리알
예약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문래동의 이자카야다. 과거 스시 오오시마로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셰프의 공간이다. 100mℓ 사케 도쿠리, 츠마미와 사시미, 구이와 튀김, 면과 디저트 등으로 구성되는 코스 메뉴는 매일 재료에 따라 변경되며 일본 오젠 스타일을 본따 개별 소반 차림 형태로 내어준다. 식당은 1부와 2부로 나누어 운영하며 저녁과 밤사이 잠깐의 브레이크 타임이 있다.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에 캐치테이블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화~토요일 예약을 할 수 있다.
◆올드문래
올드문래의 수제 맥주와 감자튀김. /사진=다이어리알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목조 공장을 리모델링해 독특한 인테리어와 높은 층고가 특징인 수제 맥주 가게다. 문래동 외식 상권이 붐을 일으키던 초창기부터 자리해 특유의 정취를 잘 간직한 공간이다. 낮에는 카페, 오후 5시 이후에는 수제 맥주 가게로 운영되며 대부분 작은 점포들이 주를 이루는 문래동에서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한다. 다양한 종류의 국내외 수제 맥주를 맛볼 수 있으며 소시지, 치킨윙, 감자튀김, 나초 등이 어우러진 플래터가 대표 안주다.
김성화 다이어리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