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월6일 대한민국의 가객, 김광석이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김광석이 생전에 노래를 콘서트를 하는 모습./사진=유튜브 '김광석 자료방' 갈무리(KMTV)
진정성 있고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라는 뜻의 가객이라 불린 김광석은 10여년간 음악 활동을 하며 대한민국 가요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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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연령대가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한국 가객의 탄생━
동물원 멤버들이 공연 직전 찍은 기념 사진. 왼쪽부터 최형규, 박기영, 김광석, 유준열, 박경찬, 김창기, 이성우의 모습./사진=푸른 곰팡이 제공
방황하던 그는 '라디오에서 나오던 사랑 노래들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들'에 관심을 갖게 되고 대학 연합 노래 동아리인 메아리에 가입해 첫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녹두꽃'과 '이 산하에' 등을 부르며 민중 가수로 활동했다.
동물원 1집의 재킷사진./사진=동물원 1집 갈무리
김광석은 동물원 멤버들과 2집까지 함께했지만 음악에 대한 견해 차이로 동물원에서 나와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기다려줘' '너에게'가 담긴 솔로 1집, '사랑했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날들'이 담긴 솔로 2집을 내놓으며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나의 노래'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등이 담긴 3집을 발매하면서부터 김광석은 민중가수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이후 '일어나' '서른즈음에'가 포함된 명반 4집을 마지막으로 발매하면서 한국 소시민을 대표하는 가수로 자리매김 했다.
김광석은 본인 오리지널 앨범들을 제외하고도 리메이크곡들을 담은 '다시부르기1' '다시부르기2'를 발매하기도 했다. 해당 앨범들에는 모든 국민들이 사랑하고 공감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이등병의 편지' 등의 노래들이 포함돼 있다.
매해 음반 발표와 소극장 라이브 공연을 병행한 김광석은 생전에 많은 공연을 해 '또 공연을 하느냐'는 의미로 '또 해'라는 별명이 있었다. 마침내 1995년에는 1000회 기념 공연을 열기도 했다.
김광석의 노래는 특정한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입대 전 두려운 마음을 위로하는 '이등병의 편지' 사랑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함께하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인생에 대한 고민을 노래하는 '서른즈음에' 황혼기에 접어든 노부부의 인생을 떠올리게 만드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은 김광석이 특정 세대만이 아닌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가수였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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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김광석의 마지막… 타살 의혹까지━
김광석의 마지막 방송활동 사진./사진=HBS의 '박상원의 겨울나기' 캡쳐
방송이 끝나고 집에 도착한 그는 아내와 함께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아내는 김광석이 아직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119에 신고보다 먼저 인공호흡을 실시하는 등 살리기 위해 노력한 뒤 김광석을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별다른 유서가 없고 죽을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타살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평소 조울증 증상을 보였다는 아내의 증언과 1000회 기념 공연을 마친 뒤 "음악 세계에 한계를 느낀다"며 심한 허탈감을 호소했다는 주변 동료의 진술에 따라 '우울증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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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 지난 현재까지 잊히지 않는 그 목소리━
아직까지도 사랑받는 김광석의 목소리./사진=유튜브 캡쳐
많은 후배 가수들이 김광석의 노래를 커버하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김광석의 목소리와 모습을 AI로 재현해 노래나 무대를 하는 모습을 방송에 송출되기도 했다.
AI 기술을 활용해 김광석이 최근에 나온 노래들을 커버하고 무대에 서는 영상이 유튜브 조회수 187만회가 넘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아직도 많은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그리워하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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