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에서 명일엽과 케일 농장을 운영하는 원대일 대표는 풀무원녹즙과 30년간 계약재배를 지속해온 베테랑 유기농사꾼이다. /사진=황정원 기자
"명일엽이 다른 채소에 비해 키우기가 까다롭습니다. 물을 많이 줘도, 적게 줘도 안 되고 온도에도 민감합니다. 수확도 더뎌요. 10월에 파종하면 이듬해 7월이나 돼야 출하할 수 있죠. 가격을 잘 받는 것도 아니에요. 똘똘한 농사꾼은 명일엽 농사 안 짓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왜 하냐고요? 풀무원 때문에 하지요. (30년 전) 그때 국민을 건강에 함께 이바지하자는 풀무원 이사님 말에 넘어가는 바람에…"

강원도 원주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원대일(63세) 대표는 이렇게 말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5월을 하루 앞둔 완연한 봄날, 풀무원녹즙의 주재료인 명일엽을 생산하는 계약 농장을 찾았다. 약 130동에 이르는 비닐하우스에는 명일엽과 케일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도심에서는 반소매를 입어야 할 정도로 따뜻하지만 강원도는 한낮에도 여전히 쌀쌀했다. 노지는 냉해를 우려해 아직도 파종하지 않은 곳들이 꽤 눈에 띄었다. 이 정도로 서늘해야 명일엽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한다.

원 대표는 31년째 풀무원녹즙에 유기농 명일엽과 케일을 납품하고 있다. 유기농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1990년대 초, 선진 농업을 꿈꾸며 귀농한 30대 청년은 이제 어엿한 베테랑 농장주가 됐다. 1000㎡로 시작한 농사는 비닐하우스와 노지를 합쳐 10만㎡ 규모까지 성장했다. 원주 농장에서 생산한 명일엽과 케일 대부분은 풀무원녹즙 공장으로 입고된다.
명일엽밭에서 김을 매고 있는 원대일 대표. /사진=황정원 기자
신선초라 불리는 명일엽은 항암 효과가 높아 하늘이 내린 식물로 불린다. 항산화 물질인 칼콘과 쿠마린을 함유해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 비타민 A, C, E가 풍부해 피로 회복은 물론 피부 건강에도 좋다. 간 기능을 보호하고 혈당을 낮추며 비만 억제 효과가 있다.

명일엽은 '오늘 수확해도 내일 또 자란다'는 뜻의 이름을 갖고 있을 만큼 매일 수확이 가능한 채소다. 하지만 이건 기후와 토질 등 모든 조건이 갖춰졌을 때의 얘기다. 다년초 특성상 한곳에서 계속 농사를 지으면 지력이 다해 어느 순간 성장이 더뎌진다. 온도에 민감해 여름에는 타죽고 겨울에는 얼어죽는다.


지난해 여름에는 유난히 더위가 심해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던 명일엽 대부분이 피해를 입었다. 강원도는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릴 만큼 서늘한 곳이지만 해마다 기온이 올라가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지구온난화는 성큼 가까이 와 있다.

"최근에 온도조절을 위해 수막 시설을 설치했어요. 비닐하우스를 이중으로 덮은 뒤 그 사이로 지하수를 분사하는 거죠. 지하수는 연중 물 온도가 12~16도 정도로 일정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하우스 온도를 유지해 줍니다."

설비에 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풀무원에서 일부 지원을 해준다. 계약 재배를 통해 지속해서 생산품을 매입하며 고정 수입을 보장하는 한편 때때로 비용을 지원하고 현장을 찾아 실태 점검도 한다.
힘들고 돌아가더라도 제대로 건강하게
당일 출하를 위해 수확에 한창인 케일밭의 모습. /사진=황정원 기자
유기농 재배를 하면 농지 관리나 퇴비 제작도 까다롭다. 난황유, 가래열매 우린 물 등 천연 살충제는 만들려면 품도 많이 들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퇴비는 유기축산 인증 농가에서 재료를 구해 만든다. 화학 살충제나 비료를 쓰면 농사가 훨씬 쉬워지지만 힘들고 돌아가더라도 제대로 건강하게 농사를 짓는 것이 원 대표와 풀무원의 오랜 고집이다.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지만 풀무원의 기준은 한층 더 깐깐합니다. 그 기준에 맞추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죠. 건강 먹거리에 대한 자부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건 1년 내내 끊김 없이 납품할 수 있도록 농장을 관리하는 일입니다. 명일엽이 쌀처럼 1년에 한번 수확해서 창고에 쌓아둘 수 있는 품목이 아니니까요. 농사라는 게 날씨나 계절에 따라 수확량이 달라지니 많을 땐 많아서 곤란하고 적을 땐 모자라서 애가 탑니다. 하우스별로 번호를 매긴 뒤 순차적으로 심어서 수확이 끊이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도 겨울엔 고르게 출하하기가 힘들다. 추위로 인해 생육 수준이 떨어지고 종종 냉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풀무원은 과감하게 공지를 띄운다. 가끔 홈페이지에 "명일엽 수급 문제로 인한 일부 제품 주문 제한 안내"가 올라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당일생산, 당일출고'를 원칙으로 하기에 농장에서 명일엽이 생산되지 않으면 공장을 멈추는 것이다. 풀무원 관계자는 "그만큼 신선하고 좋은 것만 소비자들께 드리려고 합니다"라며 양해를 당부했다.

원 대표는 마지막으로 오랜 세월 함께해온 풀무원에 감사의 말을 전했다.

"처음에 유기농 명일엽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남들이 미쳤다고 했지만 묵묵히 제 길을 걸어왔습니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유기농이 뭔지도 몰랐고 인증제도조차 제대로 없었죠. 이제는 사회적 인식은 많이 좋아졌어요. 30년 동안 꾸준히 거래해준 풀무원에 그저 고맙지요. 덕분에 아들딸 유학도 보내고 끼니 걱정 없이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