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영 신한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과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전략은 위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사진=머니S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전 세계를 상대로 고율 관세를 부과한 배경에는 제조업 부활이라는 목표가 있다. 글로벌 기업의 미국 공장 설립을 유도해 중산층 일자리를 늘리고 경기를 살리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높은 인건비와 숙련 인력 부족 등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현실적 제약이 적지 않다. 국내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가운데 미국 시장에 무작정 '올인'하는 전략은 경계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3일 머니S가 주최한 '트럼프 관세전쟁과 한국 경제 생존전략' 좌담회에서 오건영 신한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과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전략은 위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미국 내 취약한 제조업 기반과 정치적 불확실성 등 복합적 리스크가 상존하는 만큼 기업들의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고 조언했다.
임금 높고 숙련도 낮아… 수익 창출 어려운 구조
김 센터장은 미국의 대안으로 중국과의 협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사진=머니S
트럼프 대통령이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외치면서 글로벌 가치사슬도 재편될 조짐을 보인다. 글로벌 가치사슬은 제품 설계부터 부품 조달·조립, 유통·판매까지 생산 전 과정을 세계 각지에 나눠 수행하는 국제 분업 구조다. 미국이 설계를 맡고 한국·일본 등이 핵심 부품과 소재를 공급, 중국이 최종 조립을 담당하는 애플 아이폰이 대표적이다.


김 센터장은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이 등장해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준을 만드는 것이 그동안 미국의 역할이었다"며 "미국은 수많은 실패 속에서도 하나만 성공하면 되는 시스템이지만 제조를 맡은 한국은 불량품이 나와서는 안 되는,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구조"라고 짚었다.

각자 맡아온 역할이 뚜렷하다 보니 서로 다른 영역에 진입할 때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완벽에 가까운 품질을 중시하는 제조업의 '6시그마'를 당장 미국에 기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조업이 쇠퇴하는 사이 취약해진 인프라도 문제다. 고임금 구조지만 숙련도가 떨어지는 노동자들이 많아 인력 수급의 미스매치가 발생할 수 있다.


오 단장은 "미국은 시장이 크지만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고 제조업 경험이 부족한 탓에 인력들의 손이 설다"며 "비싼 임금에 숙련되지 않은 노동력을 감수하는 이유는 관세를 통해 그나마 비용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제는 그 관세조차 일관성 없이 수시로 바뀌면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센터장도 높은 투자 비용 대비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TSMC가 피닉스에 공장을 설립했는데 운영비가 대만에 있을 때보다 2.5배 높다"며 "철강과 같은 저마진 산업은 투자비를 회수하는 데만 50년이 걸릴 정도"라고 말했다.

다만 현대자동차의 대미 투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차그룹의 새로운 생산 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는 높은 자동화율을 자랑한다. 차체 공정의 경우 전부 로봇과 기계가 수행해 자동화율이 100%에 이른다.

김 센터장은 "현대차는 이제 엔지니어링 공정을 통해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회사가 됐다"며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인 만큼 자동화 시스템을 갖춘 현대차가 미국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 중국과도 협력하는 분산 전략 필요
임금이 높고 저숙련 노동자들이 많은 미국은 높은 투자 비용 대비 수익을 내기 쉽지 않은 구조를 지니고 있다./사진=머니S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 달라지는 정책도 대미 투자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이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도입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 축소될 움직임을 보인다. 최근 공화당은 전기차 보조금과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 축소를 골자로 한 IRA 수정 법안을 발의했다.

IRA와 칩스법에 맞춰 미국 투자를 확대한 국내 기업들이 되려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 센터장은 "선제적으로 대응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그 효과가 사라졌다"며 "기업들은 냉정하게 계산할 필요가 있고 관세 때문에 무조건 미국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오 단장도 "미국이 생산 시설을 옮기라고 하지만 관세율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고정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지을 이유가 없어질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환경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전략은 오히려 위험을 키울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의 유연한 공급망 재편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김 센터장은 중국과의 협업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그는 "지난해 샤오미는 전기차를 출시했지만, 애플은 전기차 사업을 접었다"며 "샤오미가 가능했던 이유는 중국이 보유한 제조업 공급망 덕분"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대부분의 공정을 자국 내에서 소화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공급망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센터장은 "우리 기업들을 만나보면 중국 밸류체인에 참여하는 데는 거부감이 있지만 미국 밸류체인에는 별다른 우려가 없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은 비즈니스 모델을 유연하게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미국에 올인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고 중국과도 너무 척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일본 도요타가 공유차 사업에서 중국과 손잡은 것처럼 우리도 협업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