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머니S가 주최한 '트럼프 관세전쟁과 한국 경제 생존전략' 좌담회에서 금융·경제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과거처럼 미국 금리를 기계적으로 따라가는 방식에서 벗어나 국내 경기와 환율 리스크를 함께 고려하는 '엇박자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건영 신한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은 "지금 한국은행이 중요하게 보는 건 환율의 절대 수준이 아니라 변동성"이라며 "과거에는 환율 안정을 위해 미국 금리와의 간극을 좁히는 데 집중했지만 지금은 내수 회복을 더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가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1300원, 1400원, 1500원 등 주요 환율 구간을 넘으면 외환위기 우려가 반복되기에 금리 인하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선택이고 과거처럼 환율만 보고 기준금리를 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주요 교역국에 통화 절상을 압박하는 '제2의 플라자합의'를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과거 미국은 대규모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일본, 독일 등과의 합의를 통해 달러 약세를 유도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집권 이후 대미 무역 흑자가 큰 국가들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목하며 통화 정책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왔다.
이에 대해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플라자 합의처럼 달러 약세를 유도하려면 미국이 보유한 국채를 매각해야 하지만 지금은 국가 부채가 너무 커서 금리 급등 우려로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과거처럼 미국이 일방적으로 환율 조정을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설령 강제적 통화 절상이 추진되더라도 각국이 이를 쉽게 수용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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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경기 둔화 속 기준금리 인하 압박 커져━
김 센터장은 "1분기 GDP 역성장도 문제지만 민간소비는 최근 30개월 중 28개월이나 마이너스를 기록해 구조적 부진이 뚜렷하다"며 "5월 금통위에서 한 차례 인하가 단행될 가능성이 높고 연내 추가 인하도 점쳐진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과의 금리 차이로 인한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를 고려하면 단계적인 '신중한 인하'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정책 실효성과 금융시장 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국은행은 통화정책 결정 체계도 바꾸고 있다. 오 단장은 "최근 한국은행이 도입한 IPF(통화정책 프레임워크)는 금리 결정 기준을 물가와 성장률 중심에서 환율, 부동산, 가계부채 등까지 입체적으로 확대한 것"이라며 "결국 내수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인하해야 하지만 환율 불안을 감내해야 하는 딜레마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처럼 미국과 한국의 금리 차가 커진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는 건 매우 불편한 선택"이라면서도 "한국은행은 과거처럼 미국 금리를 추종하기보다는 내수 회복과 대내 균형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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