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헌 우아한형제들 부회장. /그래픽=김은옥 기자
크래프톤이 조용히 내부 진용을 정비 중이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김상헌 전 부회장을 최근 크래프톤 미등기 비상근 임원으로 영입했다. 플랫폼 업계에서 법률 업무로 잔뼈가 굵은 김 부회장을 영입해 산적한 대내외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의지다.

김상헌 부회장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한 정통 법조인 출신이다. 판사 출신(사법연수원 19기)으로 LG그룹 법무팀 부사장을 거쳐 2009년 4월 네이버 대표이사로 취임, 7년 동안 네이버를 이끌었다.


이후 2017년 우아한형제들 사외이사로서 회사 경영 전반에 걸쳐 다양한 조언과 도움을 제공해오다 2021년 초 우아한형제들 부회장으로 올라섰다. 당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에 이어 가장 높은 직책이었다. 우아한형제들의 2인자로서 규제와 대관 업무를 중심으로 회사 운영을 뒷받침해왔다.

김 전 부회장은 올해 초부터 한국신용데이터(KCD) 사외이사로도 활동 중이며 프라이머 파트너와 닥터다이어리 등 사외이사로서 자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오랜 고문 경험으로 다져진 네트워크와 정무 감각을 갖춘 법률 전문가라는 점에서 비상근 미등기 임원으로 합류했지만 단순 고문 이상의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크래프톤은 현재 넥슨과의 '다크앤다커' IP 소송, 인도 내 개인정보 유출 논란 등 법률·규제 리스크에 노출된 상태다.


크래프톤은 2023년 8월 '다크앤다커' 개발사 아이언메이스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다크앤다커 모바일'을 개발해왔다. 다크앤다커는 넥슨에서 미출시된 'P3 프로젝트'와 표절 시비에 휘말린 IP다. 아이언메이스는 넥슨과 이 때문에 법적 다툼에 돌입했고 지난 2월 민사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이후 크래프톤은 아이언메이스와 1년6개월 만에 라이선스 계약을 종료하기로 한 상황이다. 넥슨과의 소송전에서 발을 뺐려 했다는 해석이 나오지만 향후 결과에 따라 법적 리스크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시각이 많다.

여기에 크래프톤 인도법인은 고위임원 4명이 2021년 사용자 데이터를 불법으로 공유하고 이를 수익화했다는 이유로 현지에서 고발당했다. 인도 시장은 크래프톤에게 중요한 곳이다. 2020년 인도·중국 국경분쟁으로 현지에서 3년간 발목이 붙잡혀 있다가 작년 5월 '배틀그라운드(배그) 모바일 인도'서비스를 재개한 만큼 이번 악재가 뼈아프다는 분석이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규제 환경 변화에 따른 유연한 전략 수립이 절실한 시점이다. 크래프톤이 외부에서 차출한 김 부회장을 통해 대관 커뮤니케이션과 법무 전략을 동시에 강화하는 그림을 그린다는 평가다. 넥슨과의 민감한 소송과 관련한 법적 전략을 설계하거나 규제 당국과의 원활한 소통을 조언할 것으로 보인다.

미등기 임원인 만큼 주주총회 의결 없이 경영자의 판단으로 회사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우아한형제들에서도 부회장 직급이지만 비상근 고문 역할을 맡고 있다.

전직 게임업계 관계자는 "김 부회장의 합류는 크래프톤이 리스크 대응 능력을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한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컴플라이언스 역량 강화에 본격 돌입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