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포함한 상법 개정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는 가운데 국제적 흐름에 역행하는 규제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그래픽은 집중투표제 관련 주요국 입법례. /그래픽=김은옥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포함한 상법 개정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 가운데 집중투표제는 국제적 흐름에 역행하는 규제라는 여론이 거세다. 집중투표제를 담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경영 안정성이 훼손되고 글로벌 자본시장에서도 외면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이른바 '3%룰'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1차 상법 개정안을 지난 3일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데 이어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조항을 추가로 포함한 2차 상법 개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민주당은 7월 임시국회 종료일인 오는 8월4일 이전에 두 조항을 모두 법제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소액주주들의 기대와 달리 상법 개정안에 대한 경영계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가 이사 선임 과정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는 보유 주식 수 × 선임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이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다. 예컨대 3명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1주당 3표를 행사할 수 있으며 이를 한 후보에게 집중해 투표할 수 있다.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높이기 위함이지만 이 제도가 의무화될 경우 소수지분을 가진 외부 세력이 연합해 경영권을 흔드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이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국가는 국제적으로도 사라지는 추세다. 현재 G7 국가 중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국가는 단 한 곳도 없다.

미국, 일본, 캐나다만이 개별 기업이 집중투표제 도입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의 경우 1940년대까지만 해도 22개 주에서 집중투표제를 법적으로 강제했으나 현재는 대부분의 주가 폐지했고 애리조나, 네브래스카,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웨스트버지니아 등 기업 활동이 눈에 띄지 않는 5개 주에서만 유지되고 있다.


미국 교원연금기금(TIAA/CRFF)은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기업에 대해서는 경영 효율성 저하를 이유로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소액주주의 권익을 대변할 수도 있지만 기업의 경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기업들에게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이나 신규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도 1950년 집중투표제를 상법에 의무화했으나 소액주주 이익 보호라는 제도의 취지가 실현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이어지자 1974년 상법 개정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전면 배제할 수 있도록 했다.
대부분 국가들은 집중투표제와 함께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 놓았다. 사진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상법 개정안 관련 공청회에서 김용민 법안심사제1소위원장이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 진술을 들으며 자료를 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G7 외 국가 중에서도 러시아, 멕시코, 칠레, 중국 등 4개국만이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들은 집중투표제와 함께 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 놓았다. 대표적으로 ▲외국인 투자 제한 ▲황금주(정부나 특정 주주에게 일종의 '거부권' 부여) ▲차등의결권(창업자나 대주주에게 보통주보다 많은 의결권 부여) ▲포이즌필(적대적 M&A 방어 수단) 등이다.

한국은 이렇다 할 경영권 방어 수단이 마련돼 있지 않다.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현실화될 경우 주요국 대비 가장 취약한 경영권 방어 환경을 가진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현행 상법 개정 방향이 자칫 '역주행 입법'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는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면서도 이에 상응하는 경영권 방어 장치를 도입하지 않는다면 기업에 불리한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며 "한국만 집중투표제를 경영권 방어 수단 없이 의무화하는 것은 글로벌 기준에 맞지 않고 기업 자율성 훼손으로 주주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