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부산시장/사진=부산시
박형준 부산시장이 내년 지방선거와 관련해 좋지 않은 여론을 돌려놓기 위해 정면 돌파에 나섰다.

차기 시장 가상대결에서 야권 후보에게 오차범위 밖의 열세를 보이는 등 민심 이반이 현실화하자 대통령 공약 파기 문제를 고리로 중앙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위기 국면을 반전시키려는 정치적 승부수를 띄웠다.


흔들리는 민심: 잇단 여론조사로 확인된 '박형준 위기론'

최근 부산 지역 언론사들이 잇따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박형준 위기론'을 뒷받침한다. 부산일보, KBS부산에 이어 가장 최근 발표된 부산언론인연합회 조사까지 박 시장은 유력 경쟁자인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오차범위 안팎에서 뒤지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았다.

특히 부산언론인연합회가 이너텍시스템즈에 의뢰해 실시한 가상대결에서는 전 장관이 46.6%의 지지율로 38.4%에 그친 박 시장을 8.2%포인트 차이로 따돌리며 오차범위 밖의 뚜렷한 우위를 점했다. 현직 시장이 보수세가 강한 부산에서 야권 후보에게 오차범위 밖의 열세를 보인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결과로 민심 이반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KBS부산 조사에서도 박 시장의 시정에 대한 부정 평가는 49%에 달했으며 6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부정 평가가 높아 비판 여론이 폭넓게 형성되어 있음을 시사했다.


'투자은행'에서 '전국 공사'로…두 번 우롱당한 부산 민심

논란의 핵심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단계적으로 후퇴하며 그 의미가 완전히 퇴색된 데 있다. '산업은행 이전'의 대체재로 약속됐던 '동남권 투자은행'이 '투자공사'로 격하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마저도 부산만을 위한 특별한 약속이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지방시대위원회가 동남권뿐만 아니라 충청권 등 전국 권역마다 지역투자공사를 설립하는 국가 균형성장 전략을 발표하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 계획에 따르면 '동남권 투자공사'는 부산·울산·경남에 대한 특별한 금융 지원책이 아니라 전국 여러 지역투자공사 중 하나를 먼저 추진하는 '시범 운영'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에 박형준 시장은 "명백한 대통령 공약 파기이자 부산시민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 시장은 전국에 유사한 투자공사를 설립하는 것은 동남권에 특화된 금융 허브를 만들겠다는 당초의 취지를 완전히 희석시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부산에 대한 특별한 약속이 전 지역에 나눠주는 '선심성 정책'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고래(산업은행)를 주고 참치(투자은행)도 못 받을 판에 멸치(투자공사)마저 전국에 뿌리겠다는 것"이라는 지역 정치권의 냉소 섞인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권 논란 확산…與野 대리전 양상

이 문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력 후보 간의 정면충돌로 비화하고 있다. 박 시장의 강력한 경쟁자로 꼽히는 전재수 장관은 '투자공사' 설립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맞서고 있다. 전 장관은 "은행을 만들면 금융당국의 촘촘한 감독과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을 맞춰야 해 함부로 대출도 못 한다"며 공사 형태가 신속하고 안정적인 재원 마련에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린다. 국민의힘은 정부의 이번 결정이 '이재명식 포퓰리즘'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부산에서 현장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산업은행 이전을 재차 언급하며 "부산 발전에 모든 당력을 쏟겠다"고 밝히는 등 야당의 공세가 거세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투자공사의 효율성을 강조하며 논란 진화에 나섰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동남권 투자공사가 산업은행 이전보다 투자·고용 효과가 클 수 있다"며 부산시민들을 설득하려 했지만, 지역의 반발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재선 가도의 '시한폭탄'…박형준의 선택은?

'동남권 투자공사' 논란은 박형준 시장에게 양날의 검이다. 정부와 강하게 대립각을 세우면서 '부산의 이익을 지키는 시장'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정치적 고립과 함께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결국 이 문제의 향방이 박 시장의 재선 여부를 결정지을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최근의 불리한 여론 지형을 뒤집기 위해서는 정부를 설득해 '투자은행' 설립 약속을 관철하거나 최소한 그에 준하는 실질적인 대안을 시민들에게 제시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 선거까지 남은 8개월 '공약 파기' 논란이라는 시한폭탄을 박 시장이 어떻게 처리할지 부산 시민과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