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외봉사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권기정 소장. /사진=머니투데이 임성균 기자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권기정 소장. /사진=머니투데이 임성균 기자


 

시체가 널려 있고, AK소총과 바주카포를 쏘아대고, 전염병이 도처에서 창궐하고…. 블록버스터 영화라면 손에 땀을 쥐고 보겠지만 현실이라면 눈앞이 깜깜해진다. 이런 곳에선 잠깐이라도 머물기 싫은 게 인지상정인데 10여년째 아프리카 빈민 구호활동에 매진한 이가 있다. 권기정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남수단국가사무소장(38)은 지난 2001년부터 아이티, 아프가니스탄, 르완다 등에서 전쟁과 질병, 빈곤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아동을 위해 긴급구호활동을 펼쳐왔다.
 
"지난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고 한달이 채 안돼 아프가니스탄 공습이 뒤따랐죠. 그때 미디어를 통해 전해진 그곳의 비참함이 저를 구호의 길로 이끌었어요."
 
어린시절부터 슈바이처를 존경했던 그는 무작정 인터넷에서 국제구호기구를 검색하고 100곳 가까이 이력서를 넣었다. 하지만 경영학 전공으로 구호경험이 전무했던 그에게 연락을 주는 곳은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굿네이버스(당시 한국이웃사랑회)에서 인터뷰 제안이 왔고 간절함으로 그 기회를 잡았다.
 
"군대에서 보급병을 했다는 점을 어필했어요. 재난 시 물자보급보다 어려운 것이 예비군에 물자를 줬다 회수하는 것이라죠. 면접관들이 웃으시더군요."
 
실제 기아나 전쟁 등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물자를 나눠주는 일은 군사작전을 방불케한다. 굶주린 이들로 인해 대단한 소요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 항상 군대나 경찰과 함께 움직이며 고도의 전략으로 물자를 보급해야 한다.
 
"보급병 경력 외에도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회계학을 배웠기에 물자를 나눠주고 정산하는 데 유리했어요."
 
아프가니스탄 구호활동 이후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잇따라 르완다, 에티오피아, 이집트, 아이티까지 아프리카를 종횡무진 누비며 구호책임자로 성장했다.

 

권기정 소장은 신생국 남수단에서 2011년부터 구호활동을 펼쳐왔다.
권기정 소장은 신생국 남수단에서 2011년부터 구호활동을 펼쳐왔다.

 
◆해외원조 받던 한국, 강력한 'NGO' 유전자 보유

그가 <울지마 톤즈>로 널리 알려진 남수단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11년. "당시 수단에서 막 분리독립해 걸음마를 뗀 남수단에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서 사무소를 낸다고 했을 때 달려갔습니다. 신생국이고 세계에서 제일 어려운 나라(GDP 1000달러 미만)라고 하니까요."

'뿌듯한' 고생을 자처한 셈이다. 구호 현장엔 늘 위험이 도사린다. 지난해 12월 야간에 사무소로 무장강도가 들이닥쳤다. 다행히 한국부대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했다. 이는 전화위복이 되기도 했다.
 
"이 사건이 터지고 직원들이 한국으로 일시 출국했는데 바로 다음달 내전이 일어났어요. 저는 혼자 사무소에 남아있었지만 다행이다 싶었어요. 사흘동안 밤낮으로 총성이 울려퍼졌죠."
 
내전 이후에도 홀로 사무소를 지키며 죽음의 두려움을 느꼈을 법한데 그는 사뭇 여유롭다.
 
"과거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는 아이티에 갔었는데 지역민 대부분이 갱단이었어요. 사무소나 거리에는 시체가 도처에 널려 있었죠. 하지만 그들도 우리가 도움을 주기 위해 왔고 지역사회에 보탬이 된다는 걸 알기에 오히려 보호해줬습니다."
 
그는 내년 봄 아빠가 된다. 2005년 결혼해 10년 만에 귀한 아이를 얻는 것. 아이가 태어나면 위험한 지역에서의 활동이 위축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는 벌써부터 세 식구가 함께 하는 구호활동을 꿈꾼다.
 
"르완다 구호 현장에서 아내를 만났어요. 아내도 출산 후 100일만 지나면 구호 현장으로 가겠다고 합니다. 깨끗한 물로 아이를 씻길 수 있고 하루의 절반 정도만 전기가 들어와도 좋겠습니다. 우간다, 르완다 정도만 돼도 훌륭하죠."
 
이따금 주변에선 "왜 아프리카 아이냐?"고 묻는다.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도 어려운 아이가 많은데 말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도움을 받던 수여국에서 도움을 주는 공여국이 된 유일무이한 나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6.25전쟁 후 해외원조를 받던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해 해외지원에 나서고 있습니다. 왜 제3세계 아이들이냐고 묻는데 당연히 (어린이재단 등에서) 우리나라의 어려운 아이들도 지원합니다. 전세계 공동체라는 인식으로 함께 삶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권 소장은 지난 5일 KOICA의 '제9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그는 "한국사람은 가장 더운 곳에서도 추운 곳에서도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며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면 NGO 분야에서 가장 앞선 나라가 돼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못 사는 나라를 지원한다면 흔히 빵 보급부터 생각하는데 남수단만 해도 음식보다 교육에 대한 열망이 더 높은 편입니다. 국제구호는 매우 전문적인 분야입니다. 국제구호 분야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활동가가 늘어나고 일반인도 관심을 갖고 모니터하며 지원하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습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6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