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네요.” - 국내 완성차업체 관계자

국내 완성차업계가 수출부진의 늪에 빠졌다. 내수 판매는 지난 1월 이후 회복세를 찾았지만 수출은 올 들어 3월을 제외한 모든 달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국내 완성차 5개사의 지난 5월 판매 실적은 내수 12만1497대, 해외 59만3361대 등 총 71만6885대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 대비 내수는 0.2% 증가했고 해외 판매는 5.0% 감소했다. 전체 판매량은 4.2% 하락했다.

완성차업계는 유로화 약세를 비롯한 신흥시장 경기 침체, 경쟁 심화 등 잇따른 악재로 인해 해외시장에서 거듭 발목을 잡히고 있다. 주요 수출시장 중 하나인 러시아, 중남미, 중동 등 신흥시장의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데다 엔화와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며 일본과 유럽의 자동차회사들에 대한 가격대응이 힘에 부친다.

 
/사진=뉴스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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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신흥시장 침체에 고전

러시아의 경우 루블화 가치 하락과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있어 수출을 해봤자 오히려 손실이 나는 구조다. 이는 모든 글로벌 업체가 겪는 상황이지만 러시아 시장에서 재미를 봤던 현대·기아차와 쌍용차는 타격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미국 등 선진시장 역시 수출 여건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일본업체들이 엔저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고 있고 유럽업체는 유로화 약세에 힘입어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지난 2012년만 해도 1500원을 넘나들던 엔화 가치는 지속적으로 떨어져 현재는 900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유로화도 마찬가지다. 등락폭이 있지만 지난해부터 지속적인 하락을 보이다가 지난 4월에는 1100원대까지 떨어졌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환율 악재는 이미 개별 기업이 감내할 만한 수준을 넘어섰다고 평가한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현대·기아차다. 지난 5월 실적이 발표된 직후 현대·기아차와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 3인방의 주가는 요동쳤다. 특히 현대차의 주가는 실적 발표 다음날인 2일 4년9개월 만에 13만원대로 떨어졌다. 단 하루 만에 10%(1만6000원)가 급락한 것이다. 현대모비스와 기아차도 큰 폭의 하락을 겪었다.

현대차 측은 담담한 분위기다. 현대차 측은 하반기 볼륨모델들의 신차가 나오면서 하락세인 수출량이 반등할 것으로 기대한다. 사실 현대차의 판매 부진은 엔화와 신흥시장 경기 침체뿐 아니라 ‘차종의 노후화’라는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RV가 인기를 끄는 미국시장에서 세단을 고수하는 등 라인업 전략이 빗나갔다는 평가도 있어 지역별 전략모델이 출시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 1월 티볼리를 발표한 뒤 내수에서 연일 상승세를 탄 쌍용차도 수출에서는 ‘티볼리 효과’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티볼리의 첫 선적을 실시했으나 5월 수출량은 4월에 비해 감소했다.

하지만 쌍용차 측은 티볼리 수출에 희망을 걸고 있다. 쌍용차 관계자는 “티볼리가 글로벌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하며 수출량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다만 티볼리를 제외한 전 차종이 내수와 수출에서 동반부진을 겪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불안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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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생산’ 르노·지엠 선방했지만…

지난달 국내업체들의 실적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부분은 단연 르노삼성과 한국지엠의 수출이다. 현대·기아·쌍용차의 수출이 부진하던 시기에 르노삼성과 한국지엠은 수출을 대폭 개선한 것이다.

그 비결은 바로 ‘위탁생산’이다. 현대·기아차와 쌍용차가 좀처럼 해외시장 부진을 타개하지 못하는 가운데 르노삼성과 한국지엠은 자사 브랜드가 아닌 해외 모기업의 힘으로 위기를 버텨내고 있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닛산 로그와 제너럴모터스(GM) 계열사인 오펠의 칼을 위탁생산 방식으로 공급해 수출량을 늘린 것.

지난달 르노삼성의 해외 판매는 전년대비 1만2332대로 101%나 증가했다. 이는 닛산으로부터 위탁 생산하는 로그 차량 9900대를 수출했기 때문이다.

한국지엠도 마찬가지다. 한국지엠은 지난달 4만2474대를 수출해 전년대비 수출량이 5.2% 증가했다. 지난 2013년 쉐보레 유럽이 철수한 이후 급격히 줄었던 수출 물량을 만회한 것이다. 이는 지난 3월 말 위탁생산을 시작한 오펠 칼의 수출에 힘입은 결과다. 한국지엠 측은 “정확한 수치는 밝힐 수 없지만 칼은 지난달 5000대, 3월 말부터 현재까지는 약 1만대를 수출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루블화 사태로 국내 완성차업계가 큰 시련을 겪은 반면 한국지엠은 오히려 반사이익을 본 셈이다. 오펠의 소형차는 GM의 러시아공장에서 생산됐지만 러시아 경기침체로 GM은 러시아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올해안에 폐쇄키로 했다. 이번 오펠 칼의 생산을 맡게 된 것도 이 연장선상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앞으로 쉐보레 크루즈 등의 생산을 도맡을 가능성도 있어 수출량을 늘릴 수도 있다.

다만 르노삼성과 한국지엠 모두 본사 위탁생산 물량을 제외하면 수출과 내수 실적은 모두 감소하는 추세라는 점에서 우려는 존재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장 철수우려가 존재하던 르노삼성과 한국지엠이 오히려 본사의 위탁생산 물량 덕에 실적을 개선하고 있다”면서도 “내수시장의 실적이 악화되는 것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8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