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가 GA(독립법인대리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생명보험업계 1위 삼성생명이 자회사형 GA인 ‘삼성생명금융서비스보험대리점’을 출범시켰다. 리그 최고의 선수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삼성생명금융서비스보험대리점이 GA 판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삼성생명은 자회사형 GA 설립에 대한 명분으로 ‘상품판매채널 다변화’를 내세웠다. 다른 보험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올 하반기에 도입될 독립투자자문업(IFA)과 정부가 추진하는 보험설계사의 산재보험 가입 의무화에 미리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진=뉴스1 박세연 기자
/사진=뉴스1 박세연 기자

◆비용절감·IFA 대비 차원

지난달 17일 삼성생명은 자본금 400억원을 들여 자회사형 GA인 ‘삼성생명금융서비스보험대리점’을 오픈했다. 전국 10개지점에 설계사는 총 500명이다. 본사인력 중 신청한 임직원 40여명이 이동했고 초대 대표이사는 반기봉 전 삼성생명 개인영업본부 상무가 맡았다.

삼성생명 GA는 삼성생명 전속대리점과 마찬가지로 생보사 중에서는 삼성생명 상품만 취급한다. 삼성생명 전속설계사들은 이에 반발해 지난 5월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 반면 손보사 중에서는 삼성화재 등 7개사의 보험상품을 판매한다.


앞서 업계 2위 한화생명이 올해 초 10개 지점, 300명 규모의 GA ‘한화금융에셋‘을 출범하는 등 최근 1년 새 많은 보험사가 자회사형 GA를 설립했다. 생보사 중에서는 라이나생명·미래에셋생명·한화생명 등이, 손보사 중에서는 메리츠화재·동부화재가 자회사형 GA를 보유 중이다.

보험사의 자회사형 GA를 보는 시각은 분분하다. GA로 이동하려는 설계사를 잡아두기 위한 보험사의 고육지책이란 시각과 GA 트렌드의 흐름을 타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으로 갈린다.


삼성생명은 ‘상품판매채널 다변화’ 차원이라고 밝혔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삼성생명금융서비스보험대리점은 GA라기보다는 자회사형 GA 설립을 위한 포석으로 봐야 한다”며 “운영하면서 성과에 따라 규모를 키우거나 줄이는 식으로 조정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GA는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기 때문에 보험사 입장에서는 고객을 유치하기가 수월하다. 하지만 보험사들이 GA를 설립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비용절감에 있다. 자체 대리점의 설계사를 관리하는 것보다 GA로 분리하는 게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설계사 구조조정의 방편으로도 이용할 수 있어서다.


또 연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독립투자자문업(IFA)과 국회에 계류 중인 보험설계사의 산재보험 가입 의무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비책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 2013년부터 논의된 IFA 제도가 올 하반기 법제화될 전망이다. IFA는 특정 금융사에 속하지 않고 소비자에게 상품을 추천해준 대가로 자문료를 받는 업체다. IFA를 통하면 소비자는 보험사나 증권사 등을 거치지 않고 금융상품을 고를 수 있다.

그러나 보험업계는 IFA 도입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IFA가 도입되면 상품은 보험사가 만들고 판매의 주도권은 IFA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보험사가 자체 판매조직이 있음에도 자회사형 GA를 설립하는 이유다. 자회사형 GA로 기존 GA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장기적으로는 IFA 도입 후까지 방어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에서 추진 중인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특수형태고용근로종사자’에 대한 산재보험 의무화를 담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삼성생명 본사 앞에 모인 대리점주들. /사진=뉴스1 박세연 기자
삼성생명 본사 앞에 모인 대리점주들. /사진=뉴스1 박세연 기자

보험설계사는 사용자와의 지배종속 관계가 명확하지만 보험사와 위촉관계를 맺고 영업을 한다. 개인사업자와 근로자의 중간형태로 분류되는 특수형태고용근로종사자다. 전체 특수형태고용근로종사자 중 설계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80%가 넘는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생명 소속 보험설계사는 “설계사들은 보험사의 입맛에 맞는 상품을 판매하도록 엄청난 압박을 받는다”며 “따라서 설계사도 근로자로 인정받아 산재보험을 적용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야 이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삼성생명이 자사형 GA를 설립한 것은 이에 대한 회피통로로 활용하려는 꼼수”라며 “자사형 GA로 옮겨도 계약이관이 가능해 회사에 남아 있으려는 전속설계사 조직을 약화시킨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설계사는 보험사와 판매계약만 맺었을 뿐 스스로 일정을 조절하고 실적에 따라 본인의 수입이 결정돼 애매하지만 개인사업자 특성이 더 강하다”며 “그런데 설계사에 대해 보험사 직원처럼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등을 적용하면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이 자회사형 GA로 전속설계사를 이동시켜 자사상품에 대한 일정 판매망을 확보하되 비용부담은 덜어내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소비자에 득일까 실일까

자회사형 GA 설립이 소비자에 유리하지 않다는 회의론도 등장했다. 전속채널과 차별성이 없고 오히려 소비자에게 혼란만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보험대리점협회 관계자는 “자회사형 GA의 경우 주로 해당 보험사 상품을 권할 가능성이 높아 전속설계사가 판매하는 방식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며 “대부분의 자회사형 GA는 보험사 퇴직자를 중심으로 꾸려져 퇴직자가 모회사의 물건을 따오는 형태라 순수한 독립채널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꼬집었다.

보험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푸르덴셜생명은 지난 2004년 지브롤터마케팅컴퍼니, 2009년 푸르앤파트너스라는 자회사형 GA을 설립했지만 두회사 모두 곧 철수했다. 푸르덴셜생명 전속설계사의 반발과 기존채널과의 차별화 실패, 과도한 자회사 판매 비중으로 인한 전속화가 원인이었다.

한편 금융당국은 대형화로 영향력이 커진 GA의 불완전판매와 불공정행위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최근 제도정비에 나섰다. 당국은 GA가 불공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보험사와 GA 간 표준위탁계약서를 도입할 계획이다. 불완전판매에 대한 GA의 책임도 강화한다. GA에서 불완전판매가 발생할 경우 보험사 소속 보험설계사에게 부과하는 강도의 징계를 내리도록 지도할 방침이다.

하지만 대부분 자율협약형식이어서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당국의 개선안이 업계의 자정노력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9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