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포커S] 조선업계, 수주가뭄 벗어나니 '일감가뭄'


수주가뭄에 신음하던 국내 조선업계에 다시 수주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해양플랜트사업이 재개되고 유조선 발주가 늘어나는 등 업황이 나아지며 기술력을 갖춘 국내 조선소에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하지만 연이은 수주 낭보에도 조선소들은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의 수주가뭄 여파로 당장 소화할 일감이 없어 도크 가동이 멈춘 상황이어서다. 특히 일감 부족이 고스란히 협력업체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며 조선업의 경쟁력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 연이은 수주낭보 “목표달성 이상 무”

최근 국내 조선기업들이 잇따라 수주를 따내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2일 초대형 해양플랜트인 모잠비크 코랄(Coral) FLNG(부유식 LNG 생산설비) 프로젝트의 건조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삼성중공업이 수주한 FLNG는 올해 국내 조선사가 수주한 단일 프로젝트 중 최대규모다. 삼성중공업은 이번 프로젝트에 프랑스 테크닙, 일본 JGC와 함께 컨소시엄으로 참여했는데 삼성중공업이 담당하는 공사금액만 2조8534억원(약 25억달러) 규모다.


이번 수주로 삼성중공업은 올해 수주목표(65억달러)를 초과달성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졌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선박10척과 해양플랜트 3척(유조선 8척, LNG선 2척, LNG-FSRU 1척, FLNG 1척, FPU 1척) 등 모두 13척 48억달러(약 5조3000억원) 어치를 수주해 연간 목표의 74%를 달성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2015년 이후 국내 조선사 중 유일하게 해양플랜트 수주를 이어가고 있다”며 “향후 일감 확보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델핀사가 최근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승인을 취득하고 4건의 FLNG 발주를 계획하고 있다”며 “FLNG 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삼성중공업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랄 FLNG 계약식에서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오른쪽)이 서명하고 있다.
코랄 FLNG 계약식에서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오른쪽)이 서명하고 있다.



현대중공업도 조선에서 꾸준한 수주에 성공해 5월까지 연간 목표액의 절반이 넘는 수주를 기록했다.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3사는 올 들어 5월까지 총 62척, 38억달러(4조2000억원)를 수주했다고 밝혔다. 연간목표치(75억달러)의 51% 수준이며 지난해 같은 기간(12척) 대비 5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김홍균 동부증권 연구원은 “대형벌크선과 LNG선 수주가 하반기에 수주량 증대에 기여할 전망”이라며 “추가로 대형 LPG선과 자동차운반선 그리고 특수선분야 수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도 5월까지 7억7000만달러를 수주해 전년 동기 대비 6배에 달하는 수주를 올렸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우리나라 조선 빅3는 VLCC(30만~32만DWT급 초대형유조선) 부문에서 뚜렷한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 한진중공업이 올해 발주된 VLCC 29척 중 28척을 수주했을 정도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저가수주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선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 수주해도 일감은 없어… 협력업체 줄도산 우려

잇단 수주에도 불구하고 현장 분위기는 좋지 않다. 조선산업의 특성상 현재 수주한 선박의 건조가 시작되는 시점은 통상 1년 뒤라서 당장 조선업계 경기가 좋아지긴 어려워서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은 올 상반기 수많은 수주를 따냈지만 당장 건조할 수 있는 일감이 없어 군산조선소 가동중단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향후 수주 상황에 따라 조선소를 재가동할 가능성이 있지만 문제는 1~2년 동안 일감이 없는 상황을 견딜 재간이 없는 협력업체다.

군산 조선소 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대기업 조선소 협력업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15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수주절벽’ 충격으로 협력업체들의 도산 우려가 커져만 가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 들어 지난 2년여보다 많은 수주가 이뤄졌지만 막상 조선소의 일감은 가장 메마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해 수주한 물량의 작업이 개시되는 시점까지 일감이 없는 수많은 협력업체들이 도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감이 줄어들기 시작한 지난 1년여간 수많은 조선사 사내협력사가 도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월 출범한 조선5사 사내협력사연합회에 따르면 출범 당시 712개에 달했던 연합회 소속 회원사는 지난달 말 579개사로 감소했다.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133개의 회원사가 도산한 것. 연합회가 자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 연말까지 회원사는 444개로 줄어들 전망이다.

협력사들은 머리를 맞대고 일감가뭄을 버텨낼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활로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조선사가 인원을 감축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협력사의 도산을 막는 것이 쉽지 않다”며 “많은 기술인력들이 유출되는 상황인데 이대로라면 향후 조선업황이 개선됐을 때 우리나라 조선업은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