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중국과 미국)는 우리나라가 고속 성장하는 과정에서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사드보복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겪으면서 우리 경제의 취약성이 확인됐다. G2에만 의존해서는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은 바로 그러한 대외적인 경제환경 변화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파트너로 주목받는 아세안의 현재와 미래상을 집중 조명했다.<편집자주>


한-아세안 미래공동체 구상 발표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뉴시스 전진환 기자
한-아세안 미래공동체 구상 발표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뉴시스 전진환 기자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의 교류∙협력관계를 4대국(미국∙중국∙일본∙러시아)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발전시키겠다.” 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월9일 한국-인도네시아 비즈니스포럼에서 신남방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세안과의 협력을 확대해 G2(미국·중국) 중심의 외교를 탈피하는 균형외교를 본격화한다는 구상이다. G2 리스크 대안으로 아세안 시장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거세지는 G2 통상 압박 공세

G2(미국·중국)의 통상 압력이 거세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신보호무역과 자국우선주의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이로 인한 통상 압박이 2017년 들어 더욱 심화됐다. 최근에는 미국이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권고안을 발표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를 반영한 통상 압박은 세탁기에 머무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탁기 세이프가드 권고안에 이어 한국산 폴리에스터 섬유에 반덤핑 관세 예비결정도 내렸다.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조치는 점차 완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불씨를 안고 있다. 중국 정부는 부품소재 산업 육성책의 일환으로 중국에서 완제품 생산 시 자국산 자재를 사용하도록 하는 ‘차이나 인사이드’ 정책을 확대하는 양상이다.


우리 기업이 중국과의 기술 차별화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북핵 리스크도 불안요인으로 작용한다. 북핵 리스크에 보호무역 기조의 G2, 부정적 대외 여건까지 더해지면 한국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트럼프정부의 미국우선주의를 비롯해 사드 문제로 촉발된 중국 리스크를 낮추고 중국시장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시장다변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아세안(ASEAN)시장이 부각되고 있다.


◆아세안과의 파트너십 격상 로드맵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G2 수출 비중은 2016년 38.5%에서 2017년 36%(1∼10월 누계)로 2.5% 줄어든 반면 아세안 국가 수출 비중은 15%에서 16.5%로 증가했다.


아세안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약칭으로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태국·필리핀·베트남·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브루나이 등 10개 회원국으로 구성됐다. 아세안은 2016년 기준 인구 6억5000만명, 국내총생산(GDP) 2조5000억달러, 연평균 5~6%의 경제성장률을 구가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의 생산과 소비를 주도할 35세 이하 젊은 인구층이 두터워 중국을 대체할 만한 ‘넥스트 차이나’로 각광받는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에 박원순 서울시장을 특사로 파견하며 아세안과의 교류·협력을 미·중·일·러 4강 수준으로 격상시키겠다고 천명했다. 아울러 ‘더불어 잘 사는 평화 공동체(3P)’를 만든다는 철학과 함께 2019년까지 한·아세안 협력기금을 1400만달러로 확대한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교역규모는 2021년까지 중국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다.

2017년 9월 발표한 유라시아 협력 확대를 표방한 ‘신(新)북방 정책’에 이어 2020년까지 아세안과의 교역량을 2000억달러 수준으로 확대하는 ‘신(新)남방 정책’으로 새로운 ‘번영의 축’을 구축한 것이다.

◆“아세안 소비자 패턴 따른 전략 필요”

특히 아세안 10개국 중 베트남은 정부가 추진하는 신남방정책의 핵심 국가로 꼽힌다. 지난 12월22일 수교 25돌을 기점으로 한국과 베트남은 경제를 비롯해 모든 분야에 걸쳐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13억 인구의 인도와 중남미 시장도 유망한 시장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미국과 중국에 쏠린 무역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며 “기업들도 중장기적으로 인도와 동남아·중남미 국가에 사업을 확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CLM’(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도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캄보디아는 외국인 투자 규제가 적고 화장품과 음료 같은 소비재시장이 유망하다. 라오스는 관광과 농업, 자동차부품, 미얀마는 자동차와 건설 등이 꼽힌다.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인구·총생산·면적의 40%를 점유하는 거점국가로 2016년 기준 우리나라의 제3위 투자국이자 제4위 교역대상국이다. 문 대통령이 ‘신남방정책’을 키워드로 내세운 이유다.

전문가들도 아세안을 통해 미국과 중국에 쏠린 무역의존도를 다변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아세안 방문에 따른 한-아세안 협력 강화에 기대가 높다"면서 "아세안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소비패턴 변화를 심층 분석한 맞춤형 진출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디지털시대가 도래하면서 재화와 서비스를 협업 소비하는 공유경제가 아세안에서도 급성장 중"이라며 "한-아세안 협력을 위해 쌍방향적, 수평적 관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20호(2017년 12월27일~2018년 1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