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황소상. /사진=뉴스1 여주연 기자
한국거래소 황소상. /사진=뉴스1 여주연 기자
문재인정부 ‘혁신성장’의 핵심은 대기업 주도의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혁신 기업을 키워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험이다. 기업은 대체로 성장 단계부터 자금부족으로 경영난을 겪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시장의 발전은 혁신성장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자본시장의 활로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큰 틀에서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찾아보고 업계 및 전문가들에게서 규제개혁 및 금융투자업계 발전을 위한 조언을 들어봤다.

◆문턱 낮추기 vs 투자자보호 딜레마



우선 정부가 추진하는 코스닥활성화는 ‘투자자보호’ 문제로 딜레마에 빠져있다. 코스닥활성화를 위해 상장 문턱을 낮췄지만 투자자 피해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이와 함께 상대적으로 코넥스시장이 쪼그라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혁신 중소기업 육성과 투자자 보호가 상충되는 면이 있다”면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한 육성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당장 규제를 완화하거나 강화하기보다는 관련 정책을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해 적절한 방안을 도출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코넥스시장에 대해서는 “코스닥활성화로 인해 코넥스 상장사가 코스닥으로 이전상장하면서 코넥스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 같다”면서 “시장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기업의 창업생태계가 먼저 조성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증권업 양극화… 중기특화 실효성 ‘글쎄’


증권업계는 대형사 중심 판세가 고착화돼 위탁거래 의존도가 높았던 중소형사의 생존 자체가 불투명해졌다는 위기감이 고조된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증권업계 수익구조가 위탁매매 수수료에서 IB(투자은행)와 자산관리(WM) 등으로 바뀌면서 대형증권사는 자기자본 확충을 기반 삼아 수익성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만 중소형사는 신규 사업 확대가 어려운 면이 있다 보니 업계 격차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중소형사의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전문분야 개척과 사업 다각화를 꼽았다. 그는 “특화된 자신만의 분야와 영업전략을 통해 전문증권사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이어 “국내 증권사의 차별화된 서비스나 네트워크 등 장기적 역량 축적을 위한 투자 부재는 CEO의 짧은 재임기간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차별화된 역량구축은 장기간에 걸쳐 일관성 있는 경영전략이 추진될 때 가능하기에 2년 또는 3년마다 CEO를 교체하는 관행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선 정부의 ‘중소기업 특화 증권사’ 구성에 대한 볼멘소리도 나온다. 중소형증권사 관계자는 “대형사는 초대형 IB, 중소형사는 중기특화증권사로 각각 인센티브를 부여해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중기특화 증권사 지정 후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혜택은 미미하다”며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찾아내는 것 자체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데 2년 주기로 재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다”고 토로했다.

‘한국형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던 정부의 초대형 IB육성책도 답보 상태다. 현재 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미래에셋대우‧KB증권‧삼성증권 등 5개 증권사가 초대형IB 인가를 받은 상태다. 이처럼 초대형IB로 지정받는 것은 자기자본 등 요건만 갖추면 되지만 ‘발행어음 인가’ 심사가 까다로워 업계의 체감효과는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자본시장법 등 제도 정비 필요”

[환골탈태 증권업계] 자본시장 발전을 위한 조건

국내 자본시장 과세체계에 대한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증권거래세 중심에서 자본이득세 중심 세제로 전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증권거래세는 양도차익에 부과하는 양도세와 달리 주식거래에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단타 위주로 자주 주식거래를 하는 개인투자자에게 부담이 크다. 특히 주식거래로 손해를 보더라도 이와 상관 없이 거래세를 내야 해 투자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현재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수익에 관계없이 주식 매도자를 대상으로 매도대금의 0.3%를 거래세로 걷는다. 100만원어치 주식을 매수‧매도하면 매번 3000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이다.

이에 지난달 국회에서는 증권거래세를 인하하는 내용을 담은 ‘증권거래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현재 0.3~0.5%로 규정된 증권거래세율을 단계적으로 0.1%까지 인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자본시장 활성화 측면에서 현행 금융투자상품 과세체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자본이득세의 경우 증권거래세에 비해 담세능력에 따라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대명제에 부합, 소득재분배 효과를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조세형평성 차원과 과도한 투기방지 측면에선 증권거래세를 완전히 폐지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시장 활성화와 세무행정 관점이 상충되는 면이 있어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전보다는 개선됐지만 여전히 자본시장 활성화를 가로막는 크고 작은 규제들이 남아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김태준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자본시장은 무늬만 ‘포괄주의’일 뿐 실상은 모든 것을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열거주의’를 시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형증권사의 경우 글로벌 강자로 도약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중소형증권사는 대형사와의 경쟁 압박감을 덜고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0호(2018년 5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