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에 선출된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당선인사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에 선출된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당선인사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영원한 의회주의자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에 선출됐다. 문 의장은 당선 소감에서 "국회는 민주주의의 꽃이고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다. 국회가 펄펄 살아있을 때 민주주의도 살고 정치도 산다. 국회가 해산됐을 때, 힘을 못 쓸 때 민주주주의는 죽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모든 나랏일은 국회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과 “국회의원은 국회 안에서 싸우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면서 의회주의자인 두 대통령의 가르침이 변함없는 진리임을 강조했다.


이처럼 의회주의를 강조하는 문 의장의 정치 철학은 김대중 전 대통령(DJ)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DJ를 따라 정계에 입문한 그는 국회의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DJ에게 배운 정치를 해왔다.

1945년생 해방둥이인 문 의장은 경기도 의정부에서 태어나 경복고와 서울대 법대에서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행정고시에 합격했지만 한일회담 반대 시위 전력 때문에 임용에서 떨어졌다. 이후 1980년 ‘서울의 봄’ 때 DJ의 동교동계에 합류하면서 정치무대에 발을 들였다.


그는 1987년 DJ가 중심이 된 평민당의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고 같은해 당 외곽 청년조직인 민주연합청년동지휘(연청) 초대회장에 취임하며 정계의 주목을 받았다. 1992년에는 14대 국회의원으로 처음 여의도에 입성한 뒤 16대부터 내리 5선을 했다.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대 국회 본회의에서 하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부의장 선출과 관련해 의사진행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대 국회 본회의에서 하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부의장 선출과 관련해 의사진행을 하고 있다./사진=뉴스1

문 의장은 ‘겉은 장비(張飛), 속은 조조(曹操)’로 불린다. 후덕하고 강렬한 외모 뒤로 빠른 두뇌 회전과 정국 현안에 대한 뛰어난 분석력을 갖춰서다. 이에 뛰어난 정국 분석을 들으려고 문 의장을 찾는 정계인사와 정치부 기자가 많았다.

그는 민주당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해결사로 나섰다. 민주당이 내분을 겪고 정권을 뺏겼을 때는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을 이끌었다. 결국 정권교체도 이뤄냈다.

나아가 민주당이 배출한 대통령들에게는 '복심'이자 '멘토'였다. 김대중정부 시절엔 청와대 정무수석과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을 지냈다. 노무현정부에서는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노무현의 '복심'으로 불리며 당 내 입지를 다진 후 2005년 4·2전당대회에서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선출됐다. 2008년에는 18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도 참여정부 시절부터 이어졌다. 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국정 철학을 공유했다. 현재도 문 의장이 친문 좌장으로 분류되며 '문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곤 한다.

당과 계파를 뛰어넘어 국회 안팎의 신망도 두텁다. 적이 없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소통이 탁월해 여야 갈등을 조율할 적임자라는 평가가 국회 안팎에서 나온다.


문 의장은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총 득표수 275표 중 259표를 얻어 당선됐다. 그는 "대화와 타협, 협치를 통한 국정 운영은 20대 국회의 숙명"이라며 협치가 최우선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눈높이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야당의 입장, 소수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바라보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문 의장은 서울대 국악과 출신이자 2006년 미스코리아 진인 이하늬의 외삼촌으로 유명하다. 부인 김양수씨와 사이에 1남2녀를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