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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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어떻게 식민지배와 6·25전쟁으로 인한 자산파괴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세계 10대 경제대국과 민주화를 달성했을까. 삼성전자는 어떻게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세계 1위가 됐고 방탄소년단은 어떻게 빌보드차트 1위에 올라 K-Pop 열풍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을까.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것으로 당연시됐던 일이 기적처럼 현실이 되는 배경엔 무엇이 있을까. ‘홍찬선의 패치워크 인문학’에선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우리의 인문학적 바탕을 찾아본다. -편집자-


두 사람이 4×7이 27인지 28인지를 놓고 말싸움을 벌였다. 몇 시간이 흐르도록 승패가 나지 않자 두 사람은 판결 잘 하기로 유명한 고을원님에게 갔다. 원님은 4×7이 28이라고 한 사람의 볼기를 10대 치라고 판결했다. 볼기를 맞은 이가 억울해서 “4×7이 27이라고 우기는 이의 볼기를 쳐야지 어찌 내 볼기를 치냐”고 따졌다. 그러자 원님은 “4×7이 28인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고 27이 틀렸다는 건 유치원생도 아는데 그런 싸움을 벌인 당신이 잘못이니 볼기를 맞아 마땅하다”고 답했다.


웃자고 만들어 냈을 이 얘기는 요즘 시대 상황을 제대로 꼽집는다.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논쟁, 청와대 특별감찰반에서 일하던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를 둘러싼 공방, 한때 극단적 시도를 할 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낳은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청와대 압력 논란, 수많은 정치인들의 말실수 등이 그것이다.

◆삼인성호 vs 공혈래풍


문제는 ‘내가 옳고 너는 틀리다’는 공방만 있고 ‘네가 옳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겸양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계속 꼬여간다. 정작 해결해야 할 국민의 살림살이는 뒷전으로 밀려나 표류한다. 갈수록 먹고 살기 힘들고 ‘제2의 IMF 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해 12월3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말을 꺼냈다. 저자(시장)에 호랑이가 없는데도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이 계속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도 믿게 된다는 고사성어다.


조 수석은 삼인성호라는 말로 김태우 수사관이 폭로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이 있다. 한문으로는 공혈래풍(空穴來風)이라고 한다. 텅 빈 굴이 있어야 바람이 불어온다는 뜻으로 100%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믿게 만드는 그럴듯한 꼬투리가 있을 때 쓰인다.

그래서 오해할 일은 하지 말라는 격언이 뒤따른다. 참외밭에서는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 끈을 건드리지 말라는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 그것이다.


많은 사람의 눈과 귀가 쏠린 공직자는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증자(증삼)가 “열 눈이 보고 열 손가락이 가리키니 군자는 엄히 혼자 있을 때 삼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처럼 말이다.

◆‘글로벌 아노미’에 대응하자

해결 없는 공방이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다. 미국은 연방정부 일부가 문을 닫는 셧다운이 장기화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남미에서 들어오는 이주민을 막기 위해 미-멕시코 국경의 장벽 설치 예산을 요구하자 야당이자 하원 다수당인 민주당에서 반대하면서 비롯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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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연일 눈길을 끄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지난 2일 “대만 독립 세력과 양안(중국과 대만) 통일을 방해하는 외부 세력에 대해 군사력 사용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5일에는 “세계는 한 세기 동안 전혀 볼 수 없었던 중대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며 “군은 전쟁과 위기, 위험에 대한 전투준비에 결연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대만을 자극하는 발언들이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이에 대해 다음날 “대만이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도록 서방 세계가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지지율 추락에 고심 중인 아베신조 일본 총리는 한국을 걸고넘어졌다. 그는 “한국 대법원이 일제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배상하라고 한 판결은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미·중·일의 이런 상황을 보면 군사력을 앞세워 자국 이익중심주의를 우선시했던 19세기 중반~20세기 중반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다. 우리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글로벌 가치의 붕괴(아노미)에 대해 적극 대응해야 할 때라는 말이다.

◆‘글로벌 가치 기준’을 만들자

팽팽하게 맞선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이해 당사자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판단기준’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든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라’고 하는 게 그것이다. <성경>에서는 이를 황금률이라 했고 <대학>에서는 혈구지도(絜矩之道)라고 불렀다.

삼성전자는 ‘회사가 망할 것’이라는 ‘눈물의 전망’을 이겨내고 반도체 최고 기업에 등극했다. 방탄소년단(BTS)은 난공불락이라 여겨지던 빌보드차트 1위를 달성했다. 이들이 그런 ‘기적’을 이룬 것은 소모적 공방을 넘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새로운 표준을 만들겠다는 굳센 의지가 있었고 흔들리지 않고 실천한 덕분이었다.

올해 정부예산은 470조원이다. 이 가운데 0.01%인 470억원 정도만 없는 셈치고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수긍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글로벌 가치 기준’을 만드는데 쓰는 건 어떨까. 신이 죽고 이데올로기까지 죽은 21세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 그런 사상 말이다.

우리는 그동안 앞선 외국의 사상과 과학기술을 받아들이는 데만 급급한 수동적 자세에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세계는 지금 가치 아노미에 빠졌다. 모든 나라가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야 하는 출발점에 서있다.

관건은 그런 비전을 함께 갖고 힘을 모아 노력할 수 있도록 이끄는 지도력이다. 5000년 역사 가운데 처음으로 세계에 앞설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무얼 꾸물대야 할까. 정·산·학(政産學) 책임자가 매일 모여 합의를 볼 때까지 끝장토론을 벌여볼 때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75호(2019년 1월15~2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