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우려물질’ 의약품 관리 책임 떠미는 정부·제약업계
한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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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티딘’ 위장약 관련 성분 검체 샘플. /사진=뉴시스 추상철 기자 |
현재 국내외 보건당국은 라니티딘 화학구조상 체내 대사 중 발암우려물질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NDMA는 세계보건기구(WHO) 국제 암연구소가 지정한 인체발암 추정물질(2A)이다. 2A 등급은 동물실험에선 발암성이 확인됐으나 인간에게 같은 영향을 주는지는 확인되지 않은 물질을 지칭한다.
이에 국내외 보건당국은 모든 의약품에서 발암우려물질 등 불순물을 검출되는지 검사하고 관리하겠다는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환자 건강을 최우선’한다는 목표는 같지만 정책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FDA “환자·제약사 주도”
미국식품의약국(FDA)는 안전정보·유해사건 보고 프로그램 ‘메드워치’(Med Watch)를 강화하겠다는 목표다. 메드워치는 FDA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로 환자가 직접 의약품 부작용 사례를 접수하면 전문가 검토 후 게재된다. 제약사도 제품출시 후 문제가 발생한다면 사이트에 보고하도록 돼있다. FDA의 이 같은 발표는 제품 개발과정에서 나타나지 않은 예기치 못한 부작용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하고 유해 사건을 종합해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FDA 관계자는 “메드워치를 통해 보고되는 의약품 부작용 사례는 매년 약 200만건”이라며 “환자와 제약사가 주도적으로 의약품 부작용 사례를 보고하고 FDA소속 전문 인력들이 불순물 등 위험을 평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의약품청(EMA)은 FDA보다 비교적 더 체계적인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제약사가 자체적으로 점검하는 게 주요 골자다. 제약사가 판매하는 모든 의약품에서 NDMA를 비롯한 ‘N-니트로사민’ 계열 불순물이 검출되는지 확인하겠단 의도다.
다만 의약품 종류가 많다는 것을 감안해 일일최대복용량, 처방횟수, 환자수 등 다양한 기준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두고 검사하도록 지시했다. 제약사는 내년 9월까지 의약품의 발암우려물질 검출 여부, 원인 규명, 해결까지 전 과정을 마무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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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김영옥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안전국장이 ‘라니티딘’ 위장약 잠정 제조 수입 및 판매 중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추상철 기자 |
◆식약처 “자체 검사해라”
국내는 어떤 방식으로 의약품 안전관리를 강화할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EMA의 방식인 ‘스스로 검사하기’ 정책을 선택했다. 식약처가 발표한 ‘의약품의 품목허가·신고·심사 규정’ 일부개정고시에 따르면 내년 9월부터 제약사가 의약품의 허가를 신청할 때 유전 독성 또는 발암불순물, 금속불순물 등 안전성 입증자료 제출을 의무화한다.
기존에는 의약품 허가 기준에 제시된 유해물질에 대해서만 안전성 여부를 검증하는 자료를 제출했으나 이제 기준에 없어도 제약사가 자율적으로 유해물질에 대한 안전관리 점검을 실시하고 안전성 검증이 완료된 의약품만 허가하겠다는 것이다. 제약사들은 내년 9월부터 제약사 자체적으로 발생 가능한 유해물질을 선제적으로 점검하고 안전성을 입증해야만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또 식약처는 제약사의 자체 검사 외에도 근본적인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발사르탄과 라니티딘에 NDMA가 검출되며 새로운 안전관리 기준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식약처도 불순물 안전관리 대책을 곧 발표한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제약사 “여력 없다”
국내 제약업계는 식약처 정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어떤 불순물이 언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수히 많은 의약품을 확인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업체가 불순물 검사에 나서더라도 이를 분석할 장비와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규모가 큰 중견제약사의 경우 NDMA 자체 검사가 가능하지만 규모가 작은 제약사가 입는 타격은 크다는 것이다. 보령제약에 이어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자체 조사를 시작했다. 보령제약 관계자는 “라니티딘에 대한 안전성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의료현장과 환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자체 시험을 진행한 결과 NDMA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정부 지침에 제약업계는 보건당국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과연 정부의 조치가 적절했는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제약사가 자체적으로 검사한 자료가 공신력이 있을지 의문스럽다”며 “제3의 불순물 검출 사태를 막기 위해선 ‘컨트롤타워’ 등 지원 기구가 필요한 데 책임을 무작정 제약사에 미루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제약업계는 발암우려물질 등 불순물 기준과 시험법을 재정립하고 사태 발생 시 유기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 유럽 등 규제당국과 불순물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논의하고 회수대상 의약품의 신속한 유통정보 제공, 제약사의 의약품 안전관리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컨트롤타워는 라니티딘과 유사한 화학구조를 가진 약물부터, 의약품 유효기간 갱신 시즌마다 순차적으로 검사하면 된다”며 “컨트롤타워가 생기면 정부와 제약사 간 의약품 판매중지, 회수비용 등 구상금 등 책임 분배도 적절히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9호(2019년 11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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