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한국기업들이 반도체 관련 소재 국산화에 나서 상당부분 성과를 보였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딜라이트 홍보관. /사진=뉴스1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한국기업들이 반도체 관련 소재 국산화에 나서 상당부분 성과를 보였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딜라이트 홍보관. /사진=뉴스1
당초 23일 0시로 예정됐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가 양국의 극적인 타협으로 일단 연기된 가운데 그동안 한국기업들이 일궈낸 반도체 관련 소재 국산화가 주목받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가 한국기업에는 새로운 기회로 작용한 것이다. 기존 수급처를 인접국가로 다변화하는 동시에, 기술력 있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소재 국산화를 추진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 등 주요기업들이 소재·부품 국산화 공정을 앞당기고 있다. 국내 업체의 소재 국산화 배경에는 일본정부의 수출규제가 뒤따랐다.

지난 7월 일본정부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리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등 핵심 3대 소재에 대한 한국 수출을 규제하며 압박을 가했다.


당시 3대 핵심소재는 전세계에서 일본이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불소처리 공정을 거친 폴리이미드(PI)의 경우 카네카, 우베, 히타치 등 일본기업들이 시장의 90%를 점유했고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수적인 리지스트도 일본 신에츠화학, JSP, 스미토모가 90% 이상의 비중을 차지했다.

국내에서 고순도 불화수소로 불리는 '에칭가스' 역시 일본기업들이 70% 이상의 점유율을 유지할 만큼 독과점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특히 에칭가스의 경우 반도체 회로의 패턴을 형성하는 식각과 세정에 사용돼 제조공정에 필수적인 소재로 알려졌다.


위기에 직면한 국내 기업들은 수출규제를 단행한 일본은 물론 해외 각지에서 소재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2~3개월 분량의 소재를 확보한 상황에서 일본에 의존했던 수급처를 다변화 하는 사이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소재 국산화를 시작했다. 글로벌시장에서 맹위를 떨치는 반도체·디스플레이분야의 경쟁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자체 생존능력을 일깨운 사례로 평가받는다.

지난 7월 말 한 중소기업의 액체 불화수소 공급설이 제기된 후 소재 국산화 연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반도체 공정보다 순도가 낮은 제품을 사용하는 디스플레이분야에선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가 각 공정에 쓰이는 불화수소를 국산화해 생산공정에 투입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액체 불화수소 등 국산화된 핵심 소재를 생산라인에 투입하며 대체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국내 기업들의 소재 국산화 소식이 전해진 후 일부 부품에 대한 수출을 허용하면서 압박 수위를 다소 낮추는 모습이다.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는 일본정부의 결정에 안심하면서도 앞으로 있을지 모를 보복 등에 대비해 소재 국산화 속도를 높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MEMC 코리아의 반도체 실리콘웨이퍼 제2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일본 수출규제후 4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소재의 국산화가 진전된 것에 대해 큰 만족감과 고마움을 표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개월간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부품 장비산업의 국산화 노력에 박차를 가해왔다”며 “액체불화수소 국내 생산능력은 두배로 늘었고 불화수소와 불화폴리이미드의 경우 연내 완공을 목표로 신규공장을 짓는다. 우리 반도체 산업경쟁력에 소재·부품·장비 공급이 안정적으로 뒷받침되면 제조강국인 한국을 아무도 흔들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