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자동차와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 사진=뉴스1 오장환 기자
경기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자동차와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 사진=뉴스1 오장환 기자
원/달러 환율이 바닥 모를 하락을 거듭하면서 수출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원화 강세로 외국에 상품을 수출해 받는 달러의 환전 수입이 줄어들고 수출 제품 가격 상승에 따른 가격 경쟁력 악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 환율 하락은 수출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높을 수밖에 없다. 올해 글로벌 경제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속에서 겨우 회복세를 찾은 한국의 수출이 환율 하락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장애물을 만난 셈이다. 반면 수입기업은 조용한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달러 가치 추락에 따른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원가 부담이 줄어서다.


환율 1년 새 7.7% 폭락


지난 8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085.4원이다. 지난해 12월 월평균 원/달러 환율이 1175.7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년 새 7.7%나 하락한 셈이다. 지난달 월평균 환율(1115.67원)에 비해서도 한 달 만에 2.7%나 주저앉았다.

급격한 환율 하락에 대해 강성은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 연구원은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의 당선으로 불확실성이 줄었고 코로나19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안전자산 선호가 하락했다”며 “이에 따라 기축통화인 달러 수요가 줄어들면서 환율이 하락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환율이 1% 하락할 경우 국내 총수출은 0.51% 하락한다. 올 11월 한국의 총수출이 458억800만달러(49조6742억원)였던 점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으로 환율 1% 하락 시 2533억원가량의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곳은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 업계다.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는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국내 완성차 5사 매출이 4200억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수요 위축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환율 하락이 더 큰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급격한 원화절상에 업체는 단기적으로 현지 판매 가격을 조정하지 않고 마진을 감소시킴으로써 흡수하는 전략을 사용해 수익성이 악화될 우려가 있다”며 “원화절상이 장기간 계속되는 경우 업체는 현지 가격을 상승시킬 수밖에 없어 가격경쟁력이 약화돼 수출물량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수출 비중이 높은 반도체 역시 환율 하락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 지난 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올 10월 원화 기준 반도체 수출 물가지수는 69.61로 관련 통계가 생긴 1985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세계적 수요 둔화와 함께 원화 강세 영향을 받았다는 게 한국은행 설명이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환율이 하락하면 기업은 수출상품의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수출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유지하려면 환율 절상률만큼 달러 표시 수출 가격을 인상하지는 못한다”며 “이 때문에 환율 전가율이 낮을 수밖에 없어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를 가져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그래픽=김은옥 기자

수입기업 수혜… 방심은 금물


환율 하락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게 치명적이다. 대기업은 외환 관리부서가 체계화되고 오랜 기간 전문성을 갖춰왔지만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외환관리에 취약해서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달 발표한 수출 전망 및 환율 계획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의 손익분기점 환율은 각각 1133원과 1135원으로 대기업(1126원)보다 10원가량 높게 나타났다.

김태환 중소기업중앙회 국제통상부장은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코로나19로 글로벌 마케팅과 물류 애로가 심각한 상황에서 환율 하락으로 인해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됐다”며 “수출 애로 해소를 비롯해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책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수입기업은 수혜가 예상된다. 원화 강세는 원화 기준 원자재 수입 단가를 낮추는 효과가 있어 수입량이 많은 업종의 채산성 개선 효과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특히 원료 수입 비중이 높은 철강업계에선 환율 하락이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내 철강업체는 원재료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고로 업체는 철광석과 원료탄의 100%, 전기로 업체는 철스크랩의 30% 정도를 수입을 통해 조달한다.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철강재 생산 원가에서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80% 이상이어서 환율 10% 하락 시 국내 철강업체의 영업이익은 2%가량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정유업계도 호재가 예상된다. 원유를 달러로 구매하는 만큼 환율 하락에 따른 환차익이 발생해서다. 항공업 역시 비행기 운항에 필요한 항공유를 달러로 결제하는 데다 외화부채에 대한 이자비용까지 감소해 수혜를 입는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올해 3분기 영업외 부문에서 환율 하락으로 인해 1342억원의 외화환산이익을 거뒀다.

다만 환율 하락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원가가 하락하면 수요업체의 가격 인하 요구가 이어질 수 있다”며 “특히 환율 하락이 장기화될 경우 제품 수출 단가도 하락할 수 있고 철강재 수요가 높은 자동차와 조선산업이 타격을 입게 돼 철강수요가 위축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