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보험 팔던 직원이 금융정의 앞장선 사연은?
[피플]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 "금융소비자 편에서 금융공공성 위해 힘쓸 것"
안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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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에도 과연 정의가 있을까'하는 막연한 의구심을 품고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시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금융전문 시민단체라는 초심을 잃지 않고 '금융 공공성'을 지키는 데 앞장서고 싶습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54)가 밝힌 포부다. 금융정의연대는 시민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금융전문 시민단체로 2013년 설립됐다. 내년이면 출범 10주년을 맞이하는 금융정의연대는 스스로 '소비자들의 권리가 소중하게 보호받고 금융 공공성이 실현되도록 당국과 금융회사를 감시하는 단체'라고 소개한다.
흥국생명서 정리해고… 금융소비자 보호에 앞장
김 대표는 1996년 흥국생명에 입사해 금융업계 첫발을 뗐다. 그는 5년간 대출 상담을 담당했으며 3년은 보험설계사 교육, 2년은 노조 활동에 참여하면서 약 10년 동안 흥국생명에 몸을 담았다. 이후 투기자본감시센터, 론스타공동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 활동을 이어온 뒤 2013년 이광철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와 공동으로 금융정의연대를 출범시켰다.
흥국생명에서 한때 잘 나가는 우수사원이었던 그는 지난 2005년 징계해고를 당했다. 당시 노동조합 부위원장의 신분이었다. 김 대표가 해고됐던 이유는 이른바 '백수 보험'으로 불리던 상품 때문이다. 백수 보험은 1980년부터 1985년까지 흥국생명을 포함한 6개 생명보험사가 공동으로 판매한 장기저축성 상품이다. 계약만기가 되면 보험금과 함께 확정배당금을 별도로 지급한다며 고객들을 끌어모았다.
김 대표는 "과거 백수 보험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던 연금보험을 열심히 팔았는데 IMF 등으로 경기가 급속도로 나빠지자 고객들에게 상품 해약을 권유하라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왔다"며 "역마진(매매 차손이 나게 돼 있는 상태) 우려 때문이었는데 고객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고 금리가 더 낮은 상품으로 전환하도록 회유했다"고 말했다.
이어 "죄책감이 컸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나를 포함한 직원 대부분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소비자를 속이는 선택을 하게 됐다"며 "다만 그 뒤로 사측에 대해 구조조정, 정리해고 등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다가 정리해고를 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금융소비자에 대한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김 대표는 주로 금융사고 피해자 구제와 관련된 활동을 맡아왔다.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당한 뒤 금융의 공공성을 살리기 위한 활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금융소비자운동에 참가하게 된 셈이다. 그는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사모펀드 사태를 포함해 저축은행 사태, 채용 비리 사태 등 피해자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는 2018년 채용 비리 사태를 꼽았다. 현재까지 진행됐던 은행권 채용 비리 혐의와 관련해 대법원 유죄 판결이 난 곳은 우리은행, 대구은행, 부산은행, 광주은행, 국민은행 등이다. 대부분의 은행에서 그룹 회장 혹은 은행장의 결단으로 채용 비리에 연루된 부정 입사자 전원을 퇴사 조치했지만 여전히 몇몇 은행에서는 부정 입사자들이 버젓이 근무 중이다.
김 대표는 "지난 2018년 우리은행으로부터 최종 예비합격자 통보를 받았지만 탈락한 한 청년의 사연을 듣고 처음 이 사태에 처음 뛰어들었는데 이후로 은행권 채용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며 "당시 그 청년은 자신이 채용 비리 피해자인지만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찾아왔는데 결국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해 3월 부정 채용자들은 전원 퇴사 처리해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중장기적 목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집단소송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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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우리은행, 새마을금고 등 금융시장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횡령 사고에 대해서는 '바들 도둑이 소도둑 되는 걸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회삿돈 약 61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우리은행 직원이 재판에 넘겨진 데 이어 최근에는 새마을금고 직원도 10년 넘게 회삿돈 40억원가량을 빼돌린 혐의가 드러나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이달 들어선 100억 가량의 회삿돈을 6년간 몰래 빼돌린 혐의로 KB저축은행 직원도 구속된 상태다.
김 대표는 "최근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사고들의 유형을 살펴보면 대부분 몇 년간에 걸쳐서 돈을 횡령하는 방식인데 이는 상시 감시 체계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거나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라며 "이상 거래 징후가 발생했을 때 상시 감시시스템을 통해 직원의 횡령을 단기간에 적발하고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반드시 걸리게 돼 있다는 것을 알면 직원들의 경각심은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정의연대의 중장기적 목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지난해 9월부터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이 시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 두 가지가 빠지면서 아직까지는 반쪽짜리 제도란 이유에서다.
김 대표는 "금소법이 10년 만에 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금융시민단체가 법안의 필요성을 계속해서 요구해온 결과"라며 "물론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가 빠졌기 때문에 아직은 반쪽짜리지만 사모펀드 사태가 일파만파 확장되면서 금소법이 제정됐고 이는 제정 자체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는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마지막으로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아직 제대로 구제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많아 최근까지도 피해 구제에 힘쓰고 있다"며 "금융시장에서 여전히 금융사의 공공 의식은 낮은데 앞으로도 금융소비자 편에서 금융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열심히 싸워나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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