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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감축법, 위기냐 기회냐… K-배터리 기로에

[머니S리포트 - '양날의 검' 인플레이션 감축법] ② 미국 투자 수혜 기대 속 중국산 원료 감축 과제

이한듬 기자VIEW 31,5892022.08.29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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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당장 내년부터 중국산 전기차 대신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친환경 에너지 투자를 늘리는 내용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키로 하면서 한국 산업계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 내 전기차 생산기반이 없는 국내 자동차 업계가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돼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중국산 원료 의존도가 높은 배터리 업계도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 한국 재생에너지가 수혜를 누릴 것이란 전망이 있지만 이 마저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 외에도 주요 산업의 공급망 주도권 선점과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잇따라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울며겨자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기로에 놓인 한국의 현 상황을 살펴봤다.
SK온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중인 배터리 공장. / 사진제공=SK온
SK온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중인 배터리 공장. / 사진제공=SK온
▶기사 게재 순서

①드라이브 걸린 '미국 우선주의'… 한국 '냉가슴'

②인플레 감축법, 위기냐 기회냐… K-배터리 기로에

③한국 태양광·풍력, '아메리칸 드림' 기회 열리나

④보조금 끊긴 한국 전기차… 현대·기아차 '비상'

⑤장벽 쌓는 강대국… 샌드위치 신세 한국 해법은?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발효하면서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미국은 법안에 따라 북미 생산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할 방침이다. 그동안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세계 시장 점유율을 공격적으로 늘려온 중국 기업은 이번 조치로 사업 확대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반면 대규모 미국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한국 배터리 업계는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국산 원료 비중을 단기간 내에 감축해야 하는 등 선행과제도 만만치 않아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중국 '날벼락' vs 한국 '반사이익'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당장 내년부터 북미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사용하거나 북미에서 조립이 완료된 전기차를 대상에 1대당 7500달러(신차 기준)의 보조금을 세액공제 방식으로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중국산 배터리를 쓴 전기차는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도 담겼다.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조치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상반기 누적 기준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CATL은 34.8%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BYD·CALB·궈시안 등 다른 중국 업체들과 합산 점유율은 56.4%로 전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이 중국이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한국 3사의 점유율 합계는 25.8%로 중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내수를 기반으로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한 중국 업체들은 미국과 유럽으로 영역을 넓일 계획이었지만 이번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인해 해외사업에 차질이 예상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위기냐 기회냐… K-배터리 기로에
한국 기업들은 수혜가 예상된다. 북미에 대규모 생산시설 투자를 단행하고 있어서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경쟁사의 북미지역 투자 위축 가능성, 국내 업체들이 미국 완성차 업체와의 합작 또는 단독투자를 통해 미국 생산기반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중장기적으로는 국내 배터리와 소재 산업의 수혜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미국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법인 '얼티엄 셀즈'를 통해 미국 오하이오주와 테네시주·미시간주에 3개의 합작공장을 짓고 있다. 최근엔 제 4공장 설립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단독 투자로 애리조나에 원통형 배터리 공장을 신설하는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 캐나다에 들어설 스텔란티스 합작 공장까지 완공되면 전체 생산능력은 지난해 말 기준 140기가와트시(GWh)에서 2025년 520GWh(북미 생산 200GWh 이상)로 급증할 전망이다.

SK온은 최근 포드와의 합작법인 '블루오벌SK'를 출범하고 미국 테네시주 1곳, 켄터키주 2곳 등 모두 3곳의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3개 공장의 생산능력은 129GWh다. 여기에 현재 건설 중인 조지아 제1공장(9.8GWh) 제2공장(11.7GWh) 등을 합하면 북미에서만 총 150GWh 규모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삼성SDI도 스텔란티스와 합작으로 2025년 가동을 목표로 북미 인디애나주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연간 생산능력은 23GWh이며 이후 33GWh까지 증설할 예정이다.

중국산 광물 비중 축소는 과제
하지만 과제도 만만치 않다. 배터리에 원료로 사용되는 광물 중 중국산 비중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내년부터 배터리 주원료가 되는 광물의 40%가 북미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나라에서 생산돼야 한다고 규정한다. 2027년에는 80%에 도달해야 한다. 부품은 내년부터 북미에서 생산된 것을 50% 이상 사용해야 하고 오는 2029년에는 100%로 맞춰야 한다.

한국은 배터리 주요 원료를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들어 7월까지 이차전지 핵심 소재인 수산화리튬(산화리튬 포함) 수입액 17억4829만달러 가운데 중국에서 수입한 액수는 14억7637만달러로 84.4%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대(對)중국 코발트 수입액은 1억2744만달러로 전체 수입액(1억5740만달러)의 81.0%에 달했다. 천연 흑연은 전체 수입액 7195만달러 중 89.6%인 6445만달러가 중국산이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위기냐 기회냐… K-배터리 기로에
인플레이션 감축법, 위기냐 기회냐… K-배터리 기로에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음극제(85.3%) 반제품(78.2%) 양극재(72.5%) 분리막(54.8%) 등의 중국 의존도는 절반을 상회하고 있다. 특히 배터리 전구체의 90% 이상은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한 배터리 제조사 관계자는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중국산 광물 사용 비중이 높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의존도를 줄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결코 한국 배터리 업계에 수혜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를 주로 한국·일본 업체로부터 조달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의존도가 높은 광물과 배터리 소재 관련 공급망은 해외 경쟁사도 유사한 상황"이라며 "보조금 지급 조건 변화가 국내 배터리 및 소재 업체의 사업경쟁력에 미치는 단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미국에 배터리 부품 요건 완화를 요청하고 나섰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FTA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등 통상규범 위배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미국측에 전달하고 '북미 내'로 규정된 전기차 최종 조립과 배터리 부품 요건을 완화해 줄 것을 미 통상 당국에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용어설명

기가와트시(GWh) : 1GWh는 100만 kWh이며 보급형 전기차 1만6667대, 고급형은 1만1111대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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