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종합건설업체들을 각각 회원사와 조합원으로 두고 있는 대한건설협회와 건설공제조합 간 갈등이 최고조다. 주도권 싸움이다. 건설협회는 그동안 협회장의 당연직 운영위원을 앞세워 사실상 공제조합의 경영에 간섭해 왔다. 과거 추대를 통해 공제조합 운영위원장이 된 건설협회장은 심지어 공제조합의 운영비용 사용처에도 개입했다. 통상 주무관청인 국토교통부 고위직이나 정부로부터 낙점받아 낙하산으로 내려온 공제조합 이사장 역시 이 같은 건설협회장의 경영 간섭에 제대로 반발하지 못한 채 허수아비 노릇을 했다. 하지만 변화가 생겼다. 소위 '박덕흠 골프장 투자' 사건을 계기로 국토부는 지난해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을 고쳐 건설협회장의 공제조합 당연직 운영위원을 금지시켰다. 건설협회가 공제조합을 장악하지 못하게 된 것. 현 김상수 건설협회장이 꺼내든 카드는 '조합원 이사장제'다. '공제조합의 방만 경영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조합원인 건설업체가 이사장을 맡도록 한다는 의도다.
(1) 공제조합 운영위원 겸직 막히자 '이사장직' 노리는 건설협회?
(2) 주인이 주인 노릇 하겠다니… "건설협회 경영간섭 선넘었다"
![]() 최근 국토교통부와 건설협회가 '조합원 이사장제'를 추진하며 공제조합엔 비상이 걸렸다. 건설회관 전경.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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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토교통부와 건설협회가 '조합원 이사장제'를 추진하며 공제조합엔 비상이 걸렸다. 국토부와 건설협회는 공제조합의 주인(출자사)인 조합원이 의사결정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경우 건설업체 대표가 금융회사 대표를 맡는 격이어서 2020년 시행된 건설협회와 공제조합의 분리경영 취지가 훼손될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조합원 이사장제가 시행되면 건설협회가 무소불위의 경영권을 휘두를 것이라고 공제조합 측은 우려하고 있다. 협회장의 공제조합 당연직 운영위원을 금지시켰더니 아예 이사장을 하겠다는 것이어서 '제2의 당연직 운영위원'이란 게 공제조합 노조의 주장이다.
조합원 이사장제는 '제2의 당연직 운영위원' 두 건설단체는 자본 출자자가 대체로 겹치는 구조이지만 서로 독립된 경영을 하고 있다. 발단은 2020년 이른바 '박덕흠 골프장 투자' 사건으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이던 박덕흠 의원(국민의힘·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군)은 과거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과 전문건설공제조합 당연직 운영위원장을 겸직하며 충북 음성의 한 골프장에 수백억원대 투자를 임의로 결정했다. 이같은 투자가 전문건설협회에 경영 손실을 발생시킨 결과를 가져와 2020년 국정감사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토부는 건설단체의 협회장이 공제조합 운영위원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현재 건설공제조합, 전문건설공제조합뿐 아니라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도 협회와의 분리 경영이 강화됐다.
그동안 공제조합 이사장은 정치권이나 정부의 퇴직 공무원이 낙하산 인사로 낙점돼 낡은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다가 올 초 처음으로 외부 공모를 실시했다. 새로 취임한 박영빈 공제조합 이사장은 우리금융그룹을 거쳐 경남은행장 출신 금융맨으로, 경남 중소건설업체 한림건설 대표인 김상수 현 협회장과의 인연이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실무에 정통한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협회와 조합 모두 건설업계 권익을 위한다는 목적을 가졌지만 협회의 문제점을 보면 회원사 전체 이익보다 협회장 본인이 소속된 지역 중소건설업체 이익만을 보호하는 정책을 추진한다는 비판을 받아 온 게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금융회사인 조합은 독립성 훼손을 경계해야 한다"며 "자본금보다 수십 배 많은 보증 잔액의 사유화와 부실화 리스크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공제조합은 조합원이 출자한 건설업체에 각종 대출과 보험 성격의 보증 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금융회사와 유사한 업무구조를 갖는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도 "건설업체 대표를 금융이나 보증 분야의 전문가로 볼 수 없는 만큼 자본금 건전성과 조합원 손실, 주주 피해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두 단체와 비슷한 구조로 운영되는 대한전문건설협회와 전문건설공제조합 역시 협회장의 조합 당연직 운영위원이 금지됐지만 이사장 후보 자격에 임직원 등 비조합원 제한을 두지는 않았다.
"공제조합 개혁 아니라 권한 침해" 김상수 건설협회장은 지난 6월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협회 임시총회에서 "임기 중 공제조합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발언을 해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이에 공제조합 노조 관계자는 "공제조합은 경영권이 독립돼 건설협회와는 별개 조직임에도 (김 회장이) 선을 넘는 발언을 했다"고 비판했다.
건설협회의 지나친 '경영 간섭'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임인 최영묵 전 공제조합 이사장은 김상수 회장과 공제조합 신입사원 채용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다가 이사장직을 사퇴했다.
국토부와 건설협회는 공제조합 경영 효율화를 이유로 영업점 축소 등을 주요 과제로 선정했지만 이 역시 조합원 이사장제 시행을 위한 명분 쌓기가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한 대형건설업체 관계자는 "고액 연봉 등 방만 경영으로 문제가 된 공제조합이 구조조정 차원으로 오프라인 영업점을 축소하는 것은 일반 금융권의 변화와도 유사하지만 사실상 경영 효율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조합원 이사장제를 정당화하려는 속셈이 너무 뻔히 보인다"고 말했다.
공제조합 노조는 연간 약 2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고 절반에 가까운 900억원가량을 조합원에 배당하는 등의 성과에도 방만 경영을 이유로 금융회사를 건설업체의 사금고화해선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대형건설업체 관계자는 "논란이 된 방만 경영의 이유 중 하나가 예산·인사 의사결정권이 운영위원인 협회장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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