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의약품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신약 개발에 뛰어드는 기업이 늘고 있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선 시장성 높은 신약후보 물질을 많이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제약바이오 기업은 '적응증'(약물로 치료 효과가 기대되는 병) 확대 전략을 적극 구사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MSD의 면역항암제(면역세포를 통해 암세포를 제거하는 약물) 키트루다처럼 하나의 물질에서 다양한 치료제로 개발할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신약후보 물질이 키트루다가 될 수는 없다. 하나의 적응증으로도 제대로 성과를 내지도 못한 채 무분별하게 적응증 확대에 나서면 오히려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적응증 확대 전략이 어떤 의미를 갖는 지와 폐해를 살펴보고 전문가들로부터 제언을 들어봤다.
![]() 바이오 투자시장이 침체되면서 바이오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동안 확보한 투자금으로 연구개발 활로를 넓혔으나 투자시장 축소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그래픽=임종철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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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수년째 성과없이 변죽만 울리는 신약개발… 적응증 확대의 현주소
②당뇨약이었는데… 알고 보니 다이어트약?
③신약후보 물질의 무제한 적응증 확장… 시장 신뢰 잃는 자충수
"개발에 전략 없이 시간을 끄는 것은 바이오 산업 시장 전체의 신뢰와 직결됩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
"바이오 벤처 투자 시장 위축이 6~7개월 이상 지속되면 지난 10년 간 만들어진 생태계가 붕괴할 수 있습니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
바이오 투자 시장이 빙하기다. 벤처캐피탈(VC)협회에 따르면 2022년 3분기까지 누적 바이오·의료 투자금은 8787억원으로 전년 대비 27.0% 감소했다. 바이오·의료는 2022년 1분기 4051억원의 투자금을 확보했으나 2분기 들어선 2707억원으로 전분기보다 33.2% 줄었다. 3분기 투자금은 2029억원으로 1분기와 비교해 반토막 났다. VC의 투자 선택지에서도 벗어나는 분위기다. VC의 바이오·의료에 대한 3분기 투자 비중은 16.3%로 같은 해 상반기(16.9%)보다 0.6%포인트(p) 하락했다. 바이오·의료 투자 호황기를 맞았던 2020년(27.8%)에 비해선 11.5%p 급감했다. VC의 바이오·의료 투자 비중은 최근 5년 새 최저 수준이다.
바이오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인력뿐 아니라 신약후보 물질(파이프라인)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22년 공시 기준 파이프라인의 임상 중단·철회한 바이오 기업은 21곳이다. 기업들은 한정된 자원에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개발 효용성을 높이겠다고 설명하지만 일각에선 적극적으로 내세운 파이프라인의 '적응증 확대 전략'(신약의 쓰임새 확대를 위해 다양한 질환 임상을 통해 탐색해보는 전략)의 폐해로 본다. 무엇보다 임상 결과가 나오기 전 자체적으로 취하했다는 점은 투자금으로 불필요한 개발에 나섰다는 의혹을 부추긴다. 머니S는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과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를 통해 최근 바이오 기업들의 적응증 확대 전략을 짚어봤다.
파이프라인의 적응증이 뭐길래 파이프라인의 적응증 확대 전략은 전 세계 바이오 기업들에 통용된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임상시험 수는 1만1008건이다. 같은 기간 6452개의 파이프라인이 임상(1·2·3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오 기업들이 파이프라인 1개당 평균 1.7건씩 적응증 확대를 위한 추가 임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일례로 글로벌 제약사 MSD는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의 적응증 확대를 목표로 다양한 임상을 진행했다. 키트루다가 확보한 적응증은 18개 암종, 38개에 달한다.
바이오 기업의 대표적 먹거리는 파이프라인이다. 파이프라인의 적응증 확대는 약의 쓰임새를 넓혀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을 확장하고 궁극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자는 취지다. 이 대표는 "보통 약물은 특정 작용방식에 의해 효과가 나타난다"며 "작용방식이 여러 질환에 나타나는 경우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약의 쓰임새를 확대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이오 기업은 파이프라인의 약효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질환을 초기 적응증으로 선택해 임상의 성공 가능성을 높인 후 시장 규모가 크거나 도전적인 질환에 대해 추가 임상을 시도한다"고 설명했다.
![]()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왼쪽)과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가 바이오 업계의 상황을 짚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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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바이오 기업이 무리한 적응증 확대로 볼 수 없는 이유는 규제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의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라며 "결국 이 같은 논란을 잠재우려면 적절한 규제기관의 심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적응증 확대 전략을 펼치는 일부 제약바이오 기업들을 대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유행에 따라 개발하려는 기업들이 있고 파이프라인의 비즈니스 모델을 10~15년 이상 끌고 가는 기업도 존재한다"며 "성과 없이 임상만 진행하는 기업의 경우 자칫 시장 전체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 역시 "10년 이상 개발단계에 있는 약들은 특허 장벽이 없어져 상업적 가치가 없다"며 "파이프라인이 임상에 성공하더라도 특허유효기간이 만료돼 시장에 나오는 즉시 복제약 혹은 바이오시밀러의 도전에 직면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통상 의약품의 상업적 독점권을 인정해주는 물질 특허 기간은 20년이다. 임상 3상 완료 후 시장에 나오면 4년의 추가 기간이 부여된다. 즉 파이프라인의 상업화까지 20년이 걸린다면 시장에 나오더라도 약의 독점권이 보호될 수 있는 기간은 4년뿐이다.
![]() 바이오 업계 전문가들은 바이오 생태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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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바이오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투자자들에게 파이프라인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을 나타냈다. 이 대표는 "주기적으로 많은 정보를 공개하는 회사들이 생각보다 극소수"라며 "주가나 기술이전 성과라는 결과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근거 자료와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 바이오벤처들의 문제점은 내부 임상기능이 매우 약한 상태에서 과도하게 임상 CRO(임상시험수탁기관)에만 의존해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큰 문제이자 해결과제"라고 꼬집었다.
위기를 타계하려면 기업 간 협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기업끼리의 전략적 제휴가 필요하다"며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FI(재무적투자자)보다 SI(전략적 투자자)를 섭외하고 국내·외에 꾸준히 노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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