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빌라왕 아니라 '빌라사기꾼'
신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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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사기꾼'(속칭 '빌라왕') 사망 사건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한 사람 명의로 1000채가 넘는 빌라를 소유할 수 있는 비정상적인 구조에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번 사건으로 발생한 피해금액만 2000억원 이상으로 드러났다. 전세제도의 허점이 드러나면서 비난의 화살은 정부에 쏠렸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문제는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공적 장치가 쓸모 없었다는 점이다. 확정일자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보험 등 세입자가 전세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치른 사회적 비용들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빌라사기꾼 김씨는 조직적인 '무자본 갭투자'를 일삼던 사람이다. 하지만 정부당국은 김씨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이러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김씨에게는 62억5000만원의 체납 세금도 있었지만 이에 대한 의심도 없었다.
일부 피해자는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전셋집이 경매로 넘어가 엄동설한에 밖으로 내쫓긴 실정이다. 지난해 12월 기자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발생한 전세사기 사건의 현장을 찾았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빌라사기꾼'이 있다면 미추홀구에는 이른바 '건축사기꾼'인 건축업자가 있었다. 미추홀구는 화곡동과 함께 전세사기 대표 지역으로 꼽힌다.
기자는 이곳에서 만난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 상상도 못할 이야기들을 들었다. 전세보증금이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20·30대 젊은 세입자들에게 피해 상황을 묻고 다시 상기시킨다는 자체가 조심스러웠다. 반려견과 산책을 하던 30대 남성은 "전재산이던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막막하다"며 "집이 언제 경매로 넘어갈지 몰라서 항상 마음을 졸이며 산다"고 말했다.
'빌라사기꾼'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방관하던 정부는 부랴부랴 세입자들의 보증금 찾기에 나섰고 수사에 손놓고 있던 경찰과 검찰은 전세사기꾼들을 잡으러 나섰다. 이미 빌라사기는 수십 년 전부터 발생했다. 피해자들은 적게는 몇 천, 많으면 몇 억까지 사기를 당한다.
2017년 서울 강서·양천구 일대에서 대규모 빌라 전세사기 사건이 터졌다. 당시 전세사기꾼 '강 모 씨'는 갭투자 방식으로 빌라 700채를 사들인 뒤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5년여가 흐른 현재 숨어있던 강모씨는 정부의 대대적인 전세사기 단속에 결국 잡히고 말았다. 당시에도 이 사건은 문제가 돼 국회에서도 논의가 됐지만 지역구 의원실 관계자는 "형사 사건이 아닌 민사사건이어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해 세입자들을 두 번 울렸다.
사회가 이들을 '빌라왕'이라고 명명한 기저에 부동산을 숭배하는 천민자본주의 의식이 느껴진다. 전세사기 피해자에게는 인격 살해자나 다름없는 이들을 '빌라신' '건축왕' 등으로 부르는 것이 정상일까. '왕'에 대한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명사로는 우리가 모두 아는 "군자 국가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우두머리"라고 나온다. 또 다른 뜻으로는 "일정한 분야나 범위 안에서 으뜸이 되는 사람이나 동물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군주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삶을 이롭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세입자 눈에 피눈물을 나게 한 빌라사기꾼에게 '왕'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앞으로 이들을 왕 대신 사기꾼이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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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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