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 '리니지M'(위)과 웹젠 'R2M' 사용자환경(UI) 이미지. /사진=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 '리니지M'(위)과 웹젠 'R2M' 사용자환경(UI) 이미지. /사진=엔씨소프트


◆기사 게재 순서
① 소송으로 몸살 앓는 게임업계… 저작권 분쟁 확산
② 이래도 되나… 근절되지 않는 'IP 베끼기' 게임업계 취약한 이유
③ 표절로 얼룩진 K-게임, 세계 시장 주도권 잡으려면



게임업계에 법적 문제를 넘어 도의적인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원작자가 있는 지식재산권(IP)을 베끼거나 빼내려는 시도가 성행하고 있다. 새롭게 IP를 개발하는 것보다 기존에 검증된 IP를 확보하는 편이 실적 침체 국면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는 듯하다. 최근 엔씨소프트(엔씨)와 웹젠의 소송으로 IP 표절에 경종이 울린 가운데 게임업계의 만연했던 IP 베끼기가 사그라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IP 베끼기, 명분보다 실속이 우선… 불경기에 최선의 선택

아이언메이스 '다크앤다커' 이미지. /사진=아이언메이스
아이언메이스 '다크앤다커' 이미지. /사진=아이언메이스


크래프톤이나 엔씨소프트 등은 배틀그라운드와 리니지 IP로 대성공을 거두면서 국내 굴지의 게임사로 성장했다. 장기간 이를 대체할 IP가 나오지 않았어도 효자 IP 덕분에 여전히 게임업계에서 위상이 굳건하다. 지금처럼 게임업계가 부진에 빠진 상황에선 우수한 IP 하나가 중요하다.

IP 모방은 게임업계서 확산하고 있었다. 리니지 라이크(리니지와 유사한 게임)가 하나의 장르로 대두될 정도다. 게임을 연구할 인력이 적어도 손쉽게 개발이 가능하고 IP가 이미 확보한 유저층이 탄탄해 사업 전망이 좋은 편이다. 검증된 IP를 확보하면 개발비도 줄일 수 있어 신작이 부재한 상황에선 최적의 대안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크래프톤은 최근 게임 개발사 아이언메이스와 PC 온라인 던전크롤러 게임 다크앤다커 IP에 대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으로 크래프톤은 다크앤다커 IP의 모바일 게임에 대한 글로벌 라이선스를 독점할 수 있게 됐다. 다크앤다커 IP는 아이언메이스를 설립한 전 넥슨 직원 최모씨 등이 넥슨에서 개발이 중단된 데이터를 무단으로 이용해 제작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넥슨은 자사 데이터를 무단으로 유출했다는 이유로 아이언메이스와 소송전을 시작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는지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크래프톤은 법적 판단 이전에 다크앤다커 IP를 확보한 셈이다. 크래프톤 관계자는 "향후 나올 사법적 판단을 제삼자로서 지켜보고 존중할 것"이라면서 "해외시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원작 지식재산의 생명력이 이어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소송전 시작돼도 서비스 장기간 운영 가능… 엔씨-웹젠 소송으로 달라지나

크래프톤 '배틀그라운드' 이미지. /사진=크래프톤
크래프톤 '배틀그라운드' 이미지. /사진=크래프톤


성급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지만 실적 반등이 절실한 크래프톤의 입장에선 사업상 활용도가 높은 다크앤다커를 선점하는 일이 우선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가 크게 성공했지만 하나의 IP에 의존하는 사업 구조가 고착화 돼 새로운 IP 발굴이 요구됐다. 다양한 IP를 확보하기 위해 개별 스튜디오(제작사)에 투자하는 '스케일업 더 크리에이티브'라는 전략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리를 위해 명분을 저버렸다는 논란이 일지만 크래프톤은 국산 게임으로서 글로벌 시장에서 보여준 다크앤다커의 잠재력만을 봤다. 다크앤다커가 법적 분쟁으로 흔들리면 IP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수 IP가 동력을 잃지 않게 하려는 고육지책이었다는 얘기도 듣는다.

크래프톤은 다크앤다커와 유사한 콘셉트의 게임이 해외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국산 IP의 산업적 가치를 보호하고,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


넥슨과 아이언메이스 간 소송은 몇 년을 이어갈 수 있는데 그 과정에 허점이 있다. 통상 1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만큼 서둘러 서비스를 출시해 이익을 얻고 법적 분쟁에서 패하면 서비스를 종료하면 그만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5년 정도 서비스하고 본전 뽑으면 된다는 생각에 이러한 행태가 만연하다"고 말했다.

엔씨소프트와 웹젠의 IP 표절 관련 1심 판결로 분위기가 달라진 점은 위안으로 삼을 만하다. 웹젠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서비스 종료와 손해배상 압박이 가중돼 IP 베끼기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 양측의 항소로 최종 판단까진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게임사들은 유사성을 검증하는 작업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저작권 관련 판결이 이제 걸음마 단계이고 법적 문제를 피하는 작업만 거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또 다른 게임업계 관계자는 "웹젠이 이번에 엔씨소프트에 졌지만 항소에 나서고 게임 서비스는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며 "3심까지 가서 법적 판단을 받더라도 법적 위반 사유만 없게끔 서비스를 개선해 다시 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