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록] 북아현2구역, 공사비 갈등 극적 봉합… 성당 보상 문제 '캄캄'
정영희 기자
11,906
공유하기
편집자주
[정비록]은 '도시정비사업 기록'의 줄임말입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해당 조합과 지역 주민들은 물론, 건설업계에도 중요한 이슈입니다. 도시정비계획은 신규 분양을 위한 사업 투자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장을 직접 찾아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꿔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
|
도심과의 뛰어난 접근성에 수천가구에 달하는 대단지. 북아현뉴타운은 서울 강북권 정비사업을 대표하는 사업지다. 조합원들의 기대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사업 추진에 목메는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북아현2구역 재개발은 멈춰서 있다. 공사비 인상을 둘러싼 시공사와의 갈등에 성당·교회의 보상 문제도 좀처럼 해결 기미가 안 보인다.
지난 9월18일 찾은 북아현2구역 재정비촉진구역. 심한 경사 탓에 걷는 내내 땀을 흘렸다. 빈집이란 표시는 없었지만 군데군데 사람이 살지 않은 지 한참 돼 보이는 집들이 눈에 띄었다. 포장이 다 벗겨져 콘크리트로 대충 덧댄 도로도 여럿 있었다. 녹슬어 외벽 색이 다 바랜 저층 주택 사이사이 쨍한 가을볕을 피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간혹 보였다. 대문이나 창틀도 심하게 낡아 치안에도 문제가 있을 듯 했다.
북아현2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하 '조합')은 북아현동 520번지 일대 12만55㎡ 규모의 부지에 모두 28개동, 최고 29층 높이로 2320가구의 대단지를 지을 계획이다. 이 지역은 지하철 2·5호선 충정로역과 2호선 아현역을 낀 '트리플 역세권'으로 광화문역은 10분, 2호선 강남역은 25분이면 닿는다. 마포구와 인접한 생활권으로 인프라가 뛰어나 사업성이 높다는 평가다.
|
재개발 추진은 벌써 15년을 훌쩍 넘겼다. 2008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돼 이듬해 조합설립과 사업시행계획인가를 연달아 받으며 속도가 붙나 했지만 조합 내홍으로 제동이 걸렸다. 조합설립 추진 당시 집행부가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조합원 숫자에서 제외시켜 동의율을 높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10년 1심 재판부가 조합설립인가 취소 판결을 내리며 사업은 장기화 수순을 밟게 됐다. 이미 2008년 조합설립인가 당시 시공사도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DL이앤씨 시공사업단(이하 '시공단')으로 정해진 상태여서 조합원들의 걱정은 더 컸다.
답보 상태가 해소된 건 그로부터 1년 후 서울고등법원이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정지됐던 조합집행부의 업무정지가 풀리면서부터다. 지난 2020년 서울시가 북아현2구역을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 창의적 설계를 적용한 건축 시 건폐율과 용적률 등 규제를 완화해주기로 하며 본격적으로 물꼬를 텄다. 재개발 '8부 능선'으로 불리는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앞두고 이번엔 공사비 증액에 발목을 잡혔다.
'공사비 증액' 시공단과의 대립… 사업 지연 위기 넘겨
조합은 시공단과 공사비 협상에 난항을 겪다 지난 9월20일 극적으로 합의를 타결했다. 최초 계약 당시 공사비는 3.3㎡(평)당 358만4000원이었으나 이후 지난해 490만원으로 올랐다. 시공단은 올 초 조합에 3.3㎡당 공사비를 610만원으로 증액한다고 통보한 데 이어 5월엔 조합원 특화품목을 반영해 859만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일반 마감을 하더라도 3.3㎡당 공사비는 749만원이어야 한다는 게 시공단의 주장이었다.조합은 다른 재개발 사업장 수십 곳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 시공단이 제시한 금액이 과도하다고 판단, 공사비 20% 인하와 함께 산출자료내역을 요청했다. 하지만 시공단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공단은 일반 마감재 기준 3.3㎡당 공사비를 종전보다 30만원 낮춘 719만원에 협의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조합은 지난 9월12일 공사비 관련 설명회를 열어줄 것을 요청했지만 시공단이 불참 의사를 전했다. 조합이 제시한 최종 협상 금액은 사업비와 금융비용을 포함해 740만원이다.
|
시공단인 삼성물산 관계자는 "공사비 산정은 현장과 지역 특성별로 다르다"며 "북아현2구역의 경우 경사가 높고 단지가 3개 구역으로 분할된 설계를 적용해 공사비 인상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설명회는 공사비 내역 적정성을 확인한 다음 진행하는 것이 맞는 순서라고 판단해 거절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조합 측은 "지난해 3월 이후 본계약을 위한 공사비 협상을 계속 해왔다"며 "시공단이 제안한 공사비에 사업비와 이자 등을 합하면 900만원대가 되는데 (시공단은) 이마저도 최종 금액이 아니며 공사비 검증 후 다시 협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협의가 어려웠다"고 했다. 이어 "임시총회(23일)까지 현실적인 금액으로의 협상 타진을 기다리겠다는 뜻을 전했고 지난 21일 시공단으로부터 최종 공문이 왔다"고 덧붙였다.
조합과 시공단은 3.3㎡당 공사비를 748만원으로 확정하는 안에 상호 동의했다. 시공단 도급계약 해지가 안건으로 올라 있는 임시총회 개최를 이틀 남기고 내린 결정이다. 조합의 최초 제시안의 95%가량이 반영된 가격이다. 마루나 주방 등에 쓰이는 일부 마감재 자재를 변경해 예산을 줄인 결과다.
이광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적정 공사비 산정·지급과 관련한 문제는 현행 제도상 한계나 단가 산정의 한계점 등 각종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이를 종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컨트롤타워 마련이 논의돼야 할 시점"이라며 "공사비 선정은 사업 계획부터 설계, 입·낙찰 및 계약, 시공 등 전 단계에 걸친 사안인 만큼 국토교통부는 물론 다른 정부 기관과 발주처의 노력까지 수반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
설계 바꾸라는 성당, 보상금 주겠단 조합… 협의도 '첩첩산중'
조합은 사업지 내 종교기관과도 크고 작은 갈등을 겪고 있다. 아현동성당은 지난 4월 현 정비계획안에 따라 재개발이 진행될 경우 성당 일조권과 조망권이 침해된다고 주장했다. 지난 8월 법원의 감정 결과 대성전은 100%, 사재관은 80%만큼의 일조권 침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대토보상 아닌 존치를 선택한 성당 측은 지난해 말부터 꾸준히 조합에 이 같은 문제를 제기했으나 협의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아 법원에 사업시행계획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일조권 침해에 따른 인가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일부 동의 층수를 낮추는 방식으로의 설계변경과 180여억원을 투입한 건물 신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조합 측은 현 설계안대로 사업을 진행하면 성당의 기본권 침해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들의 요청을 모두 받아들일 순 없다는 입장이다. 성당 일조권을 아예 침해하지 않는 선까지 설계도를 바꾸면 일부 동은 3층까지만 지을 수 있게 돼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는 것.
|
조합 관계자는 "성당의 가처분 신청은 대법원에서 기각됐고 취소소송은 22일 변론을 마쳤다"며 "성당 측의 신축 요구는 조합원 의결을 거쳐야 결정할 수 있는 문제여서 현재 임원들은 이에 대해 불가하다는 뜻을 계속해서 피력하고 있으며 우선은 구청 중재에 따라 최대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대토보상을 요구한 구세군아현교회는 보상액을 두고 조합과 협의 중이다. 북아현2구역에 있는 6개의 종교시설 중 4곳은 의견이 합치됐으며 남은 2곳의 협의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사업 지연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될 전망이다.
현재로선 조합과 종교시설 간 분쟁 해결 방법으론 합의가 최선이다. 정비사업 대상지 내 종교시설 보상기준이 명시된 별도의 법령이 없어서다. 입법 필요성 제기가 전무했던 건 아니지만 종교의 자유는 최고 상위법인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권리이기에 현실적으로 불가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협의가 안 되면 명도소송을 제기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조정을 거치거나 끝까지 가서 강제집행 판결을 받기도 한다"며 "강제집행 판결을 받아도 매우 드물게 장위10구역의 사랑제일교회처럼 무작정 안 나가고 버틴다면 사실상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도자료 및 기사 제보 ( [email protected] )>
-
정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