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한민국 경제의 윤활유 '소·부·장'

[머니S리포트 - 넘버원 코리아… 도약의 20세기, 비상의 21세기] ③ 공급망 위기에 자립화 가속도

이한듬 기자VIEW 4,3072023.10.12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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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제는 언제나 시련과 마주했지만 절대 쓰러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를 극복하고 한국전쟁 폐허를 견디는 동안 선대 기업 경영인들이 일군 탄탄한 경제 성장의 초석은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됐고 이를 이어 받은 후대 경영인들은 한 발 더 나아가 글로벌 무대를 경제 영토로 확장시켰다. 전 세계의 도움 속에 도약의 땀을 흘렸던 과거를 딛고 이제 지구촌의 리더로 우뚝 서 '오뚝이 대한민국'의 DNA를 만방에 뽐내고 있다. 21세기 더 높은 비상을 꿈꾸는 대한민국은 오늘도 미래를 향해 성큼 전진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월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소재 부품 장비 경쟁력강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배훈식 기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월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소재 부품 장비 경쟁력강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배훈식 기자
▶기사 게재 순서

①모두가 부러워하는… 70년 만에 '선진국'되다

②뭐든지 척척… 세계 속의 대한민국

③대한민국 경제의 윤활유 '소·부·장'

④아직 부족한 한국 경제의 체력… 부족한 1% 채우려면

글로벌 공급망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소재·부품·장비(소·부·장)'의 국산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사태로 공급망 병목 현상이 심화되면서 소·부·장의 안정적인 수급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제한과 지난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등 국제분쟁을 계기로 자원 부국을 중심으로 주요 자원을 무기화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짐에 따라 소·부·장의 국산화 및 내재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조건이 됐다. 주요 기업들은 소·부·장 국산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정부 역시 소·부·장의 국산화를 위한 대대적인 지원에 나서며 자립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소·부·장 국산화, 선택 아닌 필수
한국이 소·부·장 국산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계기는 2019년 일본이 한국에 반도체 주요 소재의 수출을 제한하면서다. 앞서 일본은 2019년 7월4일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을 제한했다. 수출규제 명분으로 국가안보상의 이유를 들었지만 일제 강제징용 배상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였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당시 한국의 일본산 포토레지스트 수입 비중은 93.3%에 달했으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불화수소 역시 각각 92.5%, 42.6%로 대일 수입 비중이 높았다. 일본 정부는 이를 규제함으로써 양국 관계의 우위를 점하려는 시도로 해석됐다. 이후 정권이 교체되면서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개선되고 수출 제한 조치도 풀렸지만 국내 기업들과 정부는 경각심을 유지한 채 소·부·장 자립화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예를 들어 불화수소의 경우 지난해 일본 의존도가 7.7%로 대폭 줄었다.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도 소·부·장 자립을 지속 추진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깨우치는 계기가 됐다. 국경 폐쇄로 수출길이 막힘은 물론 자원을 무기화하려는 움직임이 번지면서 상대적으로 매장 자원이 빈약한 한국의 피해가 커질 것이란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7월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 미래에너지 및 소재·부품·장비 산업전(CoMPEX KOREA 2023)에서 각종 소재·부품·장비가 전시·소개되고 있다. / 사진=뉴시스 김선웅 기자
지난 7월2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 미래에너지 및 소재·부품·장비 산업전(CoMPEX KOREA 2023)에서 각종 소재·부품·장비가 전시·소개되고 있다. / 사진=뉴시스 김선웅 기자
한국이 전적으로 교역을 의존하고 있는 중국 시장의 불안정한 상황 역시 소·부·장 국산화의 거름이 됐다. 한국은 정치·외교·경제 등 다양한 방면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가치사슬(GVC)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전략에 속도가 붙으면서 탈중국의 필요성이 커졌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산업용으로 사용되는 주요 원자재 수입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주요 품목별 중국 수입 의존도는 ▲망간제품 99% ▲알루미늄케이블 97.4% ▲마그네슘괴 및 스크랩 94.5% ▲아연도강판 93.8% ▲흑연 87.7% ▲전기강판 82.0% ▲개별 소자 반도체 부품 76.9% 등이다. 한국의 이차전지 핵심광물 8대 품목에 대한 중국 수입 의존도는 2020년 기준 58.7%로 전 세계 1위다. 2010년 35.6%에서 2020년까지 10년 새 23.1%포인트 상승하며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다.

여기에 더해 미국과 유럽이 각각 역내 채굴된 자원이나 자국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국가에서 생산된 자원을 활용한 제품에 보조금을 주는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면서 한국이 소·부·장 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기업 끌고 정부 밀고… 소·부·장 강화 합심
한국이 본격적인 대응에 나선 이후 성과도 잇따르고 있다. SKC는 반도체용 하이엔드급 블랭크마스크를, 솔브레인은 최고 수준인 액체 불화수소(순도 99.9999999999%)를 개발하며 일본 소재를 대체하는 데 성공했다. 한화솔루션은 고부가가치 화학 소재인 고순도 자일릴렌 디이소시아네이트(XDI)를 국산화했다. 이외에도 코스모신소재, LS그룹, LG화학 등을 중심으로 이차전지 소재 중 하나인 전구체를 직접 생산화 내재화하려는 움직임이 번지고 있다.

소·부·장 국산화는 기업의 실적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정부가 국내 소·부·장 기업의 매출 증가, 시장가치 상승 등 성장도를 측정한 결과 '소·부·장 으뜸기업'에 선정된 기업들의 평균 시총은 2019년 11조4220억원에서 2022년 23조4117억원으로 105% 급등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소·부·장 분야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할 방침이다. 공급망과 관련한 세계 각국의 움직임이 그만큼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데 따른 조치다. 예를 들어 일본은 지난 7월부터 노광장비, 세정·검사장비 등 23개 반도체 관련 품목 수출규제를 진행하고 있고 중국은 '수출 금지·제한 기술목록' 개정안에 희토류 영구자석 제조 기술을 비롯한 주요 기술을 추가하는 등 전략 무기화 방침을 노골화하고 있다.

SKC 하이엔드급 블랭크 마스크. / 사진=SKC
SKC 하이엔드급 블랭크 마스크. / 사진=SKC
정부는 2020년 4월 시행된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을 올해부터 상시화해 기업들의 소·부·장 국산화 제도적 지원 기반을 마련했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로 국내 경제가 휘둘리기보다는 기술 독립을 통해 외풍에 흔들림 없는 산업기반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소·부·장 핵심전략기술을 기존 150대 기술에서 200대 기술로 확대했고 분야 역시 반도체 등 7대 분야에서 우주·방산·수소 등 미래기술을 포함해 10대로 확대했다.

강감찬 산업부 무역안보정책관은 "일본의 수출 규제에도 우리의 소재, 부품, 장비 등 100대 품목의 대일 의존도가 낮아졌고 국내 생산차질이 빚어지지 않았다"면서도 "국제 경제나 안보의 관점에서 봤을 때 공급망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소·부·장 자립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선 더욱 대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소·부·장 산업이 국내 산업의 생산과 수출 전반을 이끄는 주력이란 점과 미래산업 경쟁력 결정의 주요 요인이란 점, 국가 간 산업패권 경쟁의 핵심이란 점 등을 고려해 지속적인 경쟁력 강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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