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부동산

[정비록] SH와 갈등 깊은 천호1구역… 소송에 속타는 조합

정영희 기자VIEW 3,9242023.10.3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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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록]은 '도시정비사업 기록'의 줄임말입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해당 조합과 지역 주민들은 물론, 건설업계에도 중요한 이슈입니다. 도시정비계획은 신규 분양을 위한 사업 투자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장을 직접 찾아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꿔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
서울 강동 천호동 강동밀레니얼중흥S-클래스(천호1 도시환경정비사업) 공사현장 모습.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공동시행이다./사진=정영희 기자
서울 강동 천호동 강동밀레니얼중흥S-클래스(천호1 도시환경정비사업) 공사현장 모습.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공동시행이다./사진=정영희 기자
서울지하철 5·8호선 천호역에서 나와 식당이 즐비한 좁은 골목 여럿을 지나면 공사가 한창인 주상복합 건설현장이 있다. 내년 9월 준공을 앞둔 '강동밀레니얼 중흥S-클래스'다. 40층 건물 4개가 들어서 한 눈에 보기에도 꽤 높은 건물이 콘크리트 타설을 마친 채 서있다. 길 건너 로데오거리를 메운 낮은 상가 건물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뒤쪽으론 천호3구역 재건축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천호동 일대의 개발 열기가 느껴진다.

천호1도시환경정비사업은 서울 강동 천호동 423-200번지 일대 연면적 3만8508㎡ 부지에 지하 5층~지상 40층 규모의 주상복합 빌딩 4개동을 건축한다. 시공사는 중흥건설이다. 지하와 1~2층 상가엔 판매시설이 들어서고 아파트는 3개동, 나머지 1개동은 오피스텔과 업무시설이다. 아파트는 총 999가구(임대 105가구)로 구성되며 오피스텔은 264실이다.

이른바 '텍사스촌'이란 별칭을 달고 영등포, 미아리와 함께 서울 3대 성매매 집창촌이 위치한 곳이다. 근처에 천호 재래시장과 동서울시장 등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았기에 통행에 불편을 느낀 주민들의 골칫덩이로 꼽히곤 했다.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도 별도로 구획돼 있을 정도다.

처음 재개발 얘기가 나온 건 2003년 천호뉴타운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개발이 더딘 노후주택 밀집지역을 새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한다는 정책 취지는 좋았으나 이에 수반되는 투기 방지책은 없었던 탓에 가격에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더욱이 천호뉴타운은 인근에 전통시장 4개와 이를 둘러싸고 우후죽순 생겨난 유흥주점과 집창촌이 마구 얽혀 있어 토지 등 소유자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사업 관계자만 800여명이 넘어설 때도 있었다.

강동밀레니얼중흥S-클래스 신축현장 맞은편에 위치한 천호1 도시환경정비사업 사무실./사진=정영희 기자
강동밀레니얼중흥S-클래스 신축현장 맞은편에 위치한 천호1 도시환경정비사업 사무실./사진=정영희 기자
2006년 정비사업 추진위원회가 생긴 이후에도 지지부진하던 사업은 2012년 조합 설립을 기점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2014년 말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와 공동시행 합의에 나선 것. 민간 정비사업의 공동시행자로 SH공사가 나선 건 천호1구역이 처음이었다. 주민 요청에 사업성 등을 검토해 참여를 결정했단 설명이다.

조합은 전체적인 사업을 총괄하고 SH공사는 설계나 인·허가 기술지원, 공사 중 사업관리 등 건설사업관리(CM) 업무를 담당한다는 게 초반 시나리오였다. 조합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제안이었다. 공기업인 SH공사의 이미지를 믿고 일반분양에 뛰어들 수요자들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SH공사는 정비사업 공동시행자 역할을 통해 관련 업역을 넓히고자 했다.

이후 사업은 순탄히 흘러가 2018년 시공사 선정과 2019년 관리처분계획인가를 거쳐 2020년 이주와 철거를 마치고 공사에 착수했다. 문제는 착공 전 터졌다. 2020년 조합은 공사관리·기성·준공검사 등을 위한 담당 직원 파견을 요청했으나 SH공사는 인력이 부족하고 사업지와 공사 사무실이 멀지 않으니 필요할 때마다 방문하거나 원격 지원으로 갈음하겠다고 답변했다.

주 1회 열리는 협력업체 회의에도 SH공사는 종종 참여하지 않았다. 설계검토에서 하자가 발생한 탓에 사업시행계획을 변경해야 할 때도 자금 지급 검토에 오랜 시간을 사용, 사업이 지연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2020년 분양 시에 공동시행자 명단에 SH공사를 넣지 말라고도 했다. 조합은 사업 진행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던 SH공사가 준공이 가까워지자 갑작스레 공동시행자 지위를 보전하려 하는 것은 사업 종료 시 지급하기로 했던 100억원 상당의 수수료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2021년 5월 개최된 정기총회에서 SH공사와의 공동시행약정 해지의 건이 의결됐다. 전체 조합원 131명 가운데 87%(114명)가 찬성 의견을 표했다. 지난해 10월 강동구청은 사업시행자에서 SH공사를 빼버리는 내용의 사업시행계획변경을 인가했다. SH공사는 공동시행자 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말 서울동부지방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서울 강남 개포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본사의 모습./사진=뉴시스
서울 강남 개포동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본사의 모습./사진=뉴시스
판결은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1심 판결을 취소하고 SH공사 손을 들어준 것. 재판부는 SH공사가 일부 약정을 이행하지 않은 점은 인정되나 이를 해지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약정서 내 해지사유로 규정된 '사업의 계속적인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까진 아닌 데다 사업이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주된 근거로 작용했다.

조합은 현재 상고를 결정한 상태다. SH공사 측은 "직원파견의 경우 약정서에 '파견해야 한다'가 아닌 '파견할 수 있다'고 기재돼 있으므로 미파견이 계약해지 사유는 아니다"라며 "감리 인력이 부족해 (SH공사가) 별도로 (감리 용역을) 발주한 뒤 해당 비용은 지급받을 수수료에서 차감하기로 했는데 이런 경우 SH공사 직원이 상주하지 않더라도 조합엔 더 유리한 것 아니냐"며 해명했다.

이어 "분양계약서에서 SH공사 이름을 뺀 건 분양자들로 하여금 SH공사가 CM 외 분양업무까지 담당한다는 오해를 막기 위한 행동"이라며 "공사 직원이 시공단 회의에 몇 번 빠지거나 시간을 미룬 적은 있지만 업무에 큰 지장이 가진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공기업과의 공동시행은 공공성을 띠기보단 민간계약 형태이므로 SH공사의 업무태만 등이 있다면 계약에 따라 위약금 등을 물 순 있을 것"이라며 "다만 천호1구역 사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당시에 활발히 진행됐으므로 관리감독의 어려움이 일정 부분 감안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동 천호동 강동밀레니얼중흥S-클래스(천호1 도시환경정비사업) 신축현장 공사개요 표지판./사진=정영희 기자
강동 천호동 강동밀레니얼중흥S-클래스(천호1 도시환경정비사업) 신축현장 공사개요 표지판./사진=정영희 기자
공공참여 정비사업, 사업비 조달 쉽지만 전문성 떨어져
당초 공공기관의 정비사업 시행자 참여가 시공사 역할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예측이 우세했다. 재개발·재건축에서 공사비나 조합원 대여금 등 사업에 필요한 각종 비용은 금융기관과 시공사를 통해 조달된다. 천호1구역의 경우 사업 초기 SH공사가 150억원가량의 자금을 대여해주기로 했기에 중흥건설은 말 그대로 아파트를 짓기만 하면 돼 공사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일기도 했다. 실제론 공동시행자인 SH공사의 영향이 시공 과정에선 미미했다.

중흥건설 관계자는 "SH공사 대여금은 초기 자본뿐이어서 이후 필요 자금들은 중흥 측에서 조합에 대출해줬기에 사업관리 비용 절감을 통해 아낀 공사비는 거의 없다"며 "조합과 SH공사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의 분양보증을 받는 과정에서 애로사항이 있긴 했지만 준공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SH공사뿐 아니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기주택도시공사(GH) 등 주택사업을 전담하는 공기업들이 정비사업을 보완하는 형태의 도시재생사업을 진행 중이다. 사업성이 낮거나 갈등으로 인해 진행률이 더딘 사업지의 공공시행자로 참여한다. 공적지원을 받아 정체된 정비사업을 정상화하고 낙후지의 주거환경을 개선해 도심 내 주택공급을 확대한다는 취지다.

용적률과 층수에서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고 공기업과의 밀접한 진행 상황 공유를 통해 사업기간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낮은 사업성과 조합의 행정처리 문제 등으로 정비사업이 15년 이상 표류했던 관악 신림동 '힐스테이트 뉴포레'(강남아파트 재건축)는 2016년 SH공사와의 공동사업약정 체결 이후 입주까지 빠르게 진행됐다. 지난해에는 정비구역 지정 후 14년째 사업에 진전이 없었던 영등포 양평13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이 SH공사와 공동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공기업은 정비사업 공동자로서의 전문성이 부족하고 관련 인력이 부족해 사업 지연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주기적인 인사로 인해 담당자가 자주 교체되며 이전에 유사한 업무를 했음에도 기록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발전이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부연구위원은 "정부는 공공참여 정비사업을 통해 공급량을 늘리려는 목적이지만 실제로 LH, SH 등 공기업이 단기간에 목표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지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공참여 재개발·재건축사업에서 제공되는 인센티브 중 상당수는 민간 정비사업에도 적용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불합리한 제도 개선을 통해 민간재개발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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