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접했을 때 번듯하게 시작하고 싶다.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서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다. 멋진 결혼식을 올리고 그림 같은 신혼집에서 알콩달콩 살고 싶다. 꿈에도 그리던 내 사업을 시작하고 싶다.



하지만 이 모든 꿈들이 경기 불황의 그늘 아래 묻히고 있다. 열정적으로 일해야 할 사회 초년생들이 허드렛일로 시간을 때우고 있고, 일생 중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보내야 할 예비 신랑신부들은 경제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가 파혼을 맞는다. 창업의 꿈은 채 시작도 해보기도 전에 그 기회조차 빼앗기고 만다.



불황에 꺾인 결혼꿈
한마디로 진흙탕 속으로 사회의 첫 발을 내딛는 것이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아무리 어렵고 안타까운 현실이라도 마냥 좌절만 할 수는 없다. 비록 경기불황으로 어려운 출발을 맞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한다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기회가 없어 보이지만 반대로 모든 사람들이 어려워할 때가 기회일 수도 있다.



경기 불황에 눈물 머금고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들, 예비 부부, 예비 창업자들이 웃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불황에 출발하는 사람들의 현실과 위기 극복 노하우를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5월에 결혼을 앞둔 직장인 A씨(31ㆍ여). 인생에서 가장 빛나야 할 시기인데도 우울하기만 하다.



4살 차이가 나는 예비신랑과 결혼할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레지만, 산적해 있는 숙제가 너무나 많다.



최근 친정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망하면서 자신이 번 돈은 모두 아버지 빚을 갚는데 들어가고 있다.



남자 쪽 집안에서는 예물을 하라고 시골서 남 밭일 하면서 평생 모은 금 75g(20돈)을 주고, 예비신랑은 그동안 들었던 적금을 깨고 대출도 받아서 6000만원짜리 전세집까지 마련했다.



문제는 A씨네 집안이다. 없는 형편에도 금이며 전셋집까지 마련해준 신랑 집에 최소한 예단으로 500만원 정도는 주어야 할 것 같은데 돈이 한푼 없기 때문이다. 친정에 손을 벌릴 입장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돈 한푼 없는 현실이 슬프기만 하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신용불량자가 된 상황이어서 대출도 안 되고, 손 벌릴 데가 없다.



남편 될 사람과 시댁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존심도 상한다. 차라리 결혼을 없는 것으로 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불황에 꺾인 결혼꿈
결혼식 날짜는 다가오고, 자금은 마련할 길이 없고 걱정이 태산 같다. 그냥 결혼식을 올리지 말고 아이 낳고 살다가 나중에 여유 생길 때 결혼을 하는 게 나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평생에 한번하는 결혼인데, 남들 하는 것처럼 한살이라도 젊을 때 하고 싶기도 하다.



예비신랑은 "예단이고 뭐고 안 해도 되니 신경 쓰지 말라"고 위로해주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현실이 비참하게만 느껴진다.



#올 가을에 결혼식하려고 상견례까지 끝마친 자영업자 B씨(33ㆍ남). 3년을 쫓아다녀서 어렵게 여자친구로부터 결혼 허락을 받은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을 시작했는데, 최근 경기불황으로 경제적인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 여자친구 몰래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겨우 겨우 빚으로 연명하고 있는 상태다.



겉으로는 번드르하게 사장이라고 명함을 내밀지만, 속으로는 돈 걱정에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다.



여자친구와 함께 살 집을 얻으러 갔다. 그녀는 일반 주택은 겨울에 외풍도 심하고, 방음이나 보안이 잘 안된다며 아파트에 살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자신이 혼수를 줄여서라도 절반 가까이 돈을 댈 테니 반드시 아파트가 아니면 안된다고 계속 우겼다.



하지만 값싼 아파트 전세라도 최소한 1억원 이상 나가기 때문에 아무리 여자친구가 돈을 보태준다고 해도 대출을 끼지 않으면 어림도 없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여자친구에게 말하자니 구차한 것 같고 자존심도 상한다. "돈이 없어 도저히 아파트는 안 된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다.



여자친구는 "어떤 친구는 결혼하면서 다이아몬드 몇부를 받았다더라, 예물을 몇세트를 받았다더라"는 말을 하면서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다.



내 현실과는 다른 장밋빛 기대를 하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조금 짜증이 나서 화를 냈더니 여자친구는 "벌써부터 마음이 변한 거냐"고 따진다.



결혼은 현실이라고, 막상 부딪히니 여자친구에게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해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없이 미워진다.



◆불황으로 파혼ㆍ동거 는다



예전에는 결혼하기 전 남녀가 혼수 문제로 다투거나, 혹은 막연히 결혼에 대한 부담감으로 파혼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최근엔 불황 때문에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파혼하거나 혹은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함께 사는 경우가 늘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그동안 800쌍 넘게 결혼을 시켰다는 짠돌이 카페 웨딩플래너 유요한씨는 "최근 결혼할 때 드는 목돈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커서 동거를 먼저 하고 결혼식을 하는 부부가 전체의 20% 가량이나 된다"고 말했다.



또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마찰을 일으켜 결혼에 실패한 커플도 과거보다 부쩍 늘어났다고 전했다.



일생 중에 가장 기뻐해야 할 결혼이라는 대소사가 짊어지기 버거운 짐이 되어버린 부부들이 많아진 셈이다.



최근 결혼한 한 부부는 "경기 불황으로 결혼식을 준비하는 내내 애를 먹었다"며 "마음을 비우고 줄일 건 과감하게 줄이자고 협의해서 겨우 결혼식을 하긴 했지만 여러 모로 마음이 불편했다"고 털어놨다.



◆환율 급등으로 바뀐 결혼 풍속도



한때 결혼식을 하면 무조건 해외로 여행을 나가던 풍속도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신혼여행은 평생에 한번인데" 하며 무리를 해서라도 동남아나 유럽 등으로 갔던 과거와는 딴 판이다.



경기가 유례없는 불황을 맞이한 데다 최근 원/달러 환율까지 급등하면서 제주도와 같은 국내 여행으로 발길을 돌리는 신혼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한항공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부산~제주 간 수송 승객을 집계한 결과 총 33만168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 증가했다.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의 경우는 같은 기간 14만1115명을 수송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26%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달리 신혼여행객이 많이 포함된 해외 주말 출국 승객 수는 크게 줄어들었다. 대한항공의 경우 22%가량, 아시아나항공은 15%가량 각각 감소했다.



뿐만 아니다. 결혼식을 할 때 으레 형식적으로 했던 예물세트 예단 등의 절차도 많이 가벼워지고 있는 추세다.



특히 금값이나 다이아몬드 가격이 폭등하면서 예물세트를 간소화하거나, 간단한 커플링으로 대체하는 신혼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번거롭고 자칫 서로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였던 예단 절차를 과감히 생략하는 부부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웨딩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평생에 단 한 번이라고 무리해가면서도 치렀던 결혼식이 경기불황이라는 그늘 아래 거추장스러운 행사가 되어버린 모습이다. 사랑도 결혼도 '돈' 없는 사람에겐 그림의 떡이 되어 버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