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대표적 화가인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는 자신의 삶의 희로애락을 캔버스에 그려냈다. 그녀가 남긴 작품 200점의 대부분이 자화상인데, 충격적일 정도로 솔직한 이미지와 내용을 캔버스에 표현했다.

프리다 칼로는 1907년 멕시코 '코요아칸'에서 독일인 아버지와 멕시코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6살에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불편했지만, 의사를 꿈꾸며 멕시코 최초의 교육기관인 에스쿠엘라 국립 예비학교에서 공부했다. 18세가 되던 1925년에 프리다 칼로는 그녀의 일생을 바꿔놓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할 정도의 사고로 그녀는 치명상을 입어 9개월 동안 침대에만 누워있어야만 했다. 사고는 이전까지 의사를 꿈꿔왔던 그녀를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으며 그러한 고통은 곧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을 관찰하고 스스로 모습을 그려내게 했다.

1929년 22세의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 대표 화가였던 21살 연상의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했다. '코끼리와 비둘기의 결합'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이들은 운명적 사랑, 영혼의 반쪽이라고 여기며 함께 사회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디에고 리베라의 자유 분방한 생활은 점차 그녀를 상실감에 빠지게 했다. 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유산과 불임, 그에 따른 고독은 그녀를 작품 활동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나는 희망의 끈 / <두명의 프라다>

1939년에 그려진 <두 명의 프리다>는 그녀의 애증 어린 결혼 생활을 끝낸 후의 심정을 담고 있다. 결혼 생활 동안 질투와 배신감에 고통 받았지만, 평생 동안 그의 곁에 머무르고 싶었던 그녀의 바람이 무너지고 나서의 처참함을 멕시코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자화상을 통해 표현했다. 언제나 깊은 고독 속에 잠겨 있던 그녀는 자신의 내면 속에 또 다른 프리다를 만들어 늘 그와 함께 했다.

그림 속의 하얀 옷을 입고 피를 흘리고 있는 그녀는 또 다른 자신과 손을 잡고 있다. 이는 자신의 고통을 표현함과 동시에 미약하지만 여전히 타오르고 있는 삶의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1940년대 말부터 건강이 악화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지내야 할 정도로 그녀의 건강은 악화되어 갔지만, 자신의 삶과 그림에 대한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세계적 초현실주의 작가로 위상을 쌓아가던 프리다는 1954년 7월 47세의 짧은 생애를 마쳤다. 그녀의 삶과 작품은 이후 페미니스트들에 의해서 재조명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