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마지막 알토란 부지로 꼽히는 서초구 양재동 화물터미널 터에 전국 최대 복합유통센터를 짓는 '파이시티' 사업에 뛰어든 곳은 모두 상처투성이다. 사업 인허가 지연과 시공사의 유동성은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며 사업의 향방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8월 중순 대주단이 최후의 승부수를 던졌다. 기존 시행사 파이시티를 법정관리에 넘기고 새롭게 사업구도를 재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의 주도 하에 다른 대주단도 순응하고 있다. 우선 과제는 시공사 교체. 물론 그 이후에도 산적한 과제는 수두룩하다.

알토란 부지, 지연된 인허가
 
양재동 복합터미널 개발사업은 서울 양재동 화물터미널 용지 9만6017㎡에 오피스, 백화점, 할인점, 쇼핑몰, 물류창고, 화물터미널 등 복합유통센터를 신축해 분양ㆍ임대하는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다.

2000년대 초반 지대작업을 시작으로 진행된 이 사업이 좌초 직전에 이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사업 인허가 지연이다. 2005년 토지 매입을 완료하고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인허가는 그 두배인 4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해 11월 인허가를 받아냈다.
 
인허가 과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인허가를 완료하고 착공 시기로 잡고 있던 2007년 'MB 특검' 리스트에 이 사업장이 오르면서 그냥 1년이 지나갔다. 이후 2008년 중순부터 진행된 인허가 작업은 주무 관청의 변화(서울시→서초구청)로 1년 정도를 더 허비하게 됐다. 게다가 시설물에 대한 법령 해석 문제로 몇개월이 추가로 소요됐다.
 
사업성에 대한 의문도 계속 제기됐다. 대중교통과의 연결성이 부족해 상업시설 입지로서 부족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동인구의 부족은 오피스 경쟁력을 떨어뜨렸고 주위 코스트코와 양재 하나로마트·하이브랜드 등 유사 쇼핑몰이 많다는 점도 약점으로 꼽혔다.
양재동 파이시티, 건설사 무덤? 기사회생?

건설사 무덤으로 전락
 
예상보다 2년이 넘게 인허가가 지연되면서 금융비용은 불어났다. 브릿지론으로 차입한 8620억원은 몇번의 만기 연장에 이어 올해 2월, 6개월 연장으로 불씨를 살렸다. 하지만 그 사이 원리금 합계는 거의 1조원에 육박하게 됐다.
 
이 부담은 고스란히 시공사 대우자동차판매와 성우종합건설로 전가됐다. 지지부진하면서 수익성이 극도로 악화된 양재동 사업장은 이 두건설사의 워크아웃 결정타가 됐다.

대우자판이 먼저였다. 자동차 판매 부진 속에 송도사업과 양재동사업이 지연되면서 지난 4월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한달 간격을 두고 성우종합건설 역시 모회사 현대시멘트와 동반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문제는 시공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추가 자금 조달 길이 막히게 됐다는 것이다. 건설사 보증 없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어떤 금융권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결국 시공사 교체 작업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주채권 우리은행, "사업 계속 진행하겠다"
 
극적인 상황은 8월에 또 찾아왔다. 지난 2월 간신히 6개월 만기 연장에 성공한 자금의 만기가 또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시공사가 사실상 없는 PF여서 더욱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대주단이 만기 연장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가운데 지난 8월12일 3900억원 규모의 하나UBS부동산펀드 수익자총회 결과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 펀드가 만기 연장되는지, 된다면 어느 정도 되는지 그 결과에 따라 다른 대주단들이 거취를 결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1년 만기 연장. 사업 수행을 위한 최고의 조건이었다. 이 펀드의 만기 연장과 더불어 다른 대주단은 투자 자금을 회수하지 않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강한 입김을 작용한 것은 양재동사업에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자한 우리은행. 하나UBS펀드를 통해 2300억원과 PF 대출로 1800억원, 총 4100억원을 투자했다. 우리은행의 사업 진행 의지는 강하다. 정상적으로 사업을 계속 진행해 개발 이익을 내겠다는 것이다.
 
하나UBS펀드의 절반 이상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은행이 6개월이 아닌 1년 만기 연장을 강하게 주장했던 점은 사업 진행 의지를 확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시공사 교체를 서두르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현재 GS건설과 대우건설 등 우량 건설사와 시 공권 매각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시행사 법정관리 신청은 사업을 원만히 이끌고 가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산적한 과제…시공사 교체 최우선
 
사업 의지가 강하다고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가장 시급한 것은 기존 대우자판과 성우종합건설을 대신할 시공사다. 시공사 교체가 안된다면 사업을 아예 접어야 한다. 시공사 교체가 이뤄질 경우 기존 투입 자금의 만기 연장과 더불어 추가 자금 지원의 바탕이 될 수 있다.
 
시공사가 교체된다고 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PF를 일으키기 위한 보증 문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현재 시공권 매입에 관심 있는 대형건설사들이 PF 지급 보증을 하지 않는 조건부 응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즉 책임준공은 하겠지만 PF 우발채무 부담은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대주단 스스로 보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게다가 사업비용 등을 감안할 경우 본 PF 규모가 1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추가 자금 지원분에 대한 리스크도 떠안아야 한다. 대주단 어느 한곳에서라도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경우 전체 대주단이 흔들릴 수 있다.
 
때문에 대주단은 사업 진행과 더불어 사업 부지 매각안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 최악의 경우 담보 토지를 팔아 자금 조기 회수에 나설 수도 있다는 뜻이다.
 
대주단 한 관계자는 "시공사 교체를 통해 사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방안과 시행사 파산을 통해 토지를 매각해 자금 회수를 하는 두가지 방안을 동시에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럴 경우 대주단의 자금 회수율은 현저히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전체 PF 규모가 8600억원 규모인데 담보 토지의 감정가액은 7700억원 정도다. 그리고 최근 부동산 경기 상황을 감안하면 이 정도 규모의 토지를 단번에 사들일 곳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찰이 될 경우 가격 하락은 불보듯 뻔하다.
 
대주단 관계자는 "시공사 교체를 통해 본 PF가 성공하기까지 아직 많은 고비가  남았다"며 "이번 하나UBS펀드 만기 연장은 그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